2022년 12월 6일 화요일

의식의 흐름 #11

 - 도핑을 반대하는 논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물론 이 시리즈를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알겠지만 말이다.


- 소위 ‘안티-도핑’, 그리고 도핑 테스트는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약화시키는 것 같지 않나?


- 어째서냐고? 스포츠에서 약물을 제거하는 순간,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는 ‘노력’의 중요성이 스포츠에서 더 낮아지게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약물의 완전한 사용을 허가하는 것이 ‘노력’이 더 빛나게 한다.


- 우선, 머릿속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의 망상과는 다르게, 아무리 철저한 도핑 테스트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약물을 스포츠에서 완전히 없앨 수 없다.


- 사고실험을 해보자: 만약, 정말로 완벽한 도핑 테스트 방법을 만들어 모든 스포츠에 도입한다고 하자(예산은 고려하지 말자). 그리고 테스트가 적발되는 사례마다, 공급처를 발본색원해 스포츠 참가자들에 대한 약물 공급을 거의 완전히 차단할 수 있게 된다고 해보자.


- 이로 인해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 바로 안티-도핑을 기치로 하여 도핑 테스트를 주관하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다. 


- 관료제의 속성을 상기하라. 안티-도핑 기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내에 항상 일정 수의 약물 사용자가 있어야만 한다. 관료제 기구는 필연적으로 유지를 위한 절차를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 어째서 몇몇 도핑 테스트들은 테스토스테론 양 자체를 검사하지 않고 T/E 비율을 검사하는가? 어째서 몇몇 에스터들만을 검사하는 식으로 도핑 테스트가 되어 있는가? 규정부터 적당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 몇몇은 위의 사고실험에 이렇게 반박할 수 있겠다: 도핑을 완전히 차단하고, 이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기관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지 않냐고.


- 그 경우에도 관료제 하에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유혹해오던 고전적 악마가 있다: 뇌물말이다.


- 약간의 뇌물을 받고 샘플 검사를 하지 않거나 미루면 되지 않나?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부를 생각해보라. 


- 너무 악의적 생각 아니냐고? 이미 현실에 만연해왔던 일이다. 2020년 ‘McLaren Report’ 스캔들을 기억하는가? (https://iwf.sport/wp-content/uploads/downloads/2020/08/CORRECTED-300720-FULL-REPORT-MASTER-FINAL-FOR-PUBLICATION-v2.pdf)


-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었다만, 다시 이어가자면,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스포츠에서 약물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도핑 테스트는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더 약화시킨다.


- 이를 테면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국가 A와 B에서 각각 역도 선수 a와 b를 출전 시킨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이 둘의 역도 관련 재능이 비슷하다고 가정하자.


- 그런데 국가 A는 엄격한 도핑 테스트를 진행하고, 여러 3rd party가 이를 감시한다고 하자. 아울러 선수 a도 우리가 흔히 생각할 만한 자유주의 국가 국민의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 반면 국가 B의 경우 권위주의적 정부가 선수 b의 생활은 물론, 도핑 테스트 주관 단체를 통제할 수 있다고 하자.


- 이런 경우 우리 모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선수 a가 아무리 얼마나 노력했든, 결코 선수 b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선수 b는 당연하게도 약물을 사용할 것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 이전에 적은 바, 약물 사용은 어렵다. 각 스포츠의 특성 및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코스 계획이 필요하며, 이것이 스포츠 훈련 계획에서 진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 그리고, 약물을 통해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도 ‘노력’을 통해 상위권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된다.


- Dorian Yates와 Nasser El Sonbaty를 생각해보라. 물론 El Sonbaty는 Mr. Olympia 무대에서 Yates를 단 한번도 꺾지 못 했지만, 만약 둘 다 ‘내추럴’이었다면 El Sonbary는 Yates 근처에도 가지 못 했을 것이다.


- Yates에 비해 압도적인 양의 약물을 사용함으로서, El Sonbary는 2위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El Sonbaty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냐고? 그렇다. 그런데 이건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은 것뿐 아닌가? 그는 그 선택 덕에 그는 심지어 2020년대 동북아 지역에서 이런 되도 않는 글줄을 쓰는 사람마저 아는 유명인이 되었단 말이다.


- 타인들이 왈가왈부할 만한 문제인가? 합리적 개인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선택은 가능한 한 존중 받아야 하지 않는가?


- 물론 약물 사용을 반대하는 쪽에서 또 하나의 근거 중 하나는 약물 사용이 타인의 이익에 해를 준다는 것이다.


- 이를 테면 약물 사용을 하는 이들 때문에 약물 사용을 안 한 사람들이 스포츠에서의 결과에서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나쁜 것이며, 이는 옳지 않는 것이 된다.


- 다른 모든 조건들을 배제하고 본다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 적용은 불가능하다.


- 우선 위에 적은 것처럼, 약물이라는 것은 이미 쓰이기 시작한 순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상기하라.


- 그리고 현실에 적용되는 실천 윤리학적 명제로서 ‘약물 사용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라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 당연히 이는 입증이 불가능하다. 왜냐고? 스포츠에서 약물을 사용해 혜택을 보는 이들이 손해를 보는 이들보다 훨씬 많으니까!


- 대체 누가 내추럴 보디빌딩을 보고 싶겠는가? 그리고 보디빌딩이 약물을 사용해서 남성 동성애자들을 위한 미인 대회에서 드디어 벗어났을 때,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나 생각해본 적 있나?


- Mark Mcgwire나 Barry Bonds의 홈런 덕에 관련자들이 번 돈을 생각해본 적 있나? 이것의 경제적 효과는?


- 멍청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못 하는 몇몇이 지는 것으로, 수없이 많은 가계가 행복해진다.


-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쉬쉬하는 것이 문제라고?


- 전적으로 동의한다. 스포츠에서 약물을 전적으로 허용하자. 그러면 더 이상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


- 사족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또 흥미롭게도 건강보험 관련해서 약물 사용자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 이런 사람들은 논리적 일관성을 위해 저소득층 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 고도비만으로 성인병 위험이 높은 사람들 역시 건강보험에 기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하.


-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약물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선수들의 건강을 위해서야!’


- 정말? 정말로?


- 펩타이드 계열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는 재활 코스를 생각해본 적 있나? 비효율의 극치 아닌가? 누군가의 인생이 걸려 있다! 똑바로 좀 하길 바란다.


- 그리고 애초에 스포츠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것 자체가 건강에 좋은 짓이 아니다. 약물이 있든 없든 말이다.


- 오히려 약물 사용법의 발달로 선수 수명이 길어졌으면 길어졌지 않았을까?


- 이제 누군가는 약물 과용을 이야기할 것이다.


- 그렇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이미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무수히 본다. 스포츠에서의 약물 과용을 걱정해 약물 전면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모든 위험자산에의 투자도 반대하는가?


- 물론 이 글은 약물 사용을 권장하는 글은 아니다. 우선 필자부터가 무능한 ‘내추럴’이니까. 다만 스포츠에서의 약물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논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이를 기술한 것뿐이다.


- 아무래도 쇠질충은 약물 사용 자체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댓글 5개:

  1.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도핑이 부분적으로라도 합법화되서 가슴뛰는 프릭쇼를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네추럴 보디빌딩이라는 마케팅이 과거에도 있었나요? 또 있었다면 왜 최근들어서야 네추럴 보디빌딩 파이가 이렇게 커진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그땐 진짜 남자들이 살던 시대라 그런걸까요 궁금합니다

    답글삭제
    답글
    1. 1) 제가 이 시리즈에서도 지적한 바, ‘내추럴 보디빌딩’은 그저 약을 안 쓰는 (혹은 안 쓴다고 주장하는) 보디빌딩일 뿐입니다. 설령 ‘약’이라는 말을 테스토스테론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국한해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이 합성 된 후 상업적으로 판매 가능하게 된 해가 1940년입니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 프로피오네이트에 대한 언급이 이미 30~40년대 Strenth and Health 지의 레터에서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Dr. Paul De Kruif의 The Maler Hormone 이라는 책은 194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40년대에도 의지와 자원이 있다면 충분히 사용 가능했다는 뜻입니다.

      2) ‘네추럴 보디빌딩 파이’가 커지는 것은 보디빌딩, 나아가 피트니스 산업의 파이가 커지면서 생기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매번 시장이 커질 때마다 ‘내추럴’ 마케팅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소위 ‘내추럴 보디빌딩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Chester Yorton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Yorton은 1966년 NABBA 하의 아마추어 대회에서 Schwarzenegger를 이기기까지 한 보디빌더입니다만, 60~70년대 보디빌딩 시장이 커질 때에 주류 보디빌딩과 구별되는 ‘내추럴 보디빌딩’을 본격적으로 주장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합니다.

      3) 요즘 ‘네추럴 보디빌딩 파이’가 커지는 것은 결국 여러 소셜 미디어를 플랫폼으로 하여 피트니스 인플루언서 시장이 커지기에, 인플루언서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틈새 시장 중 하나라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이미 영어권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파워리프팅 유행 때 Jonnie Candito와 IPF 관련 내추럴 무장비 유행이 있었고, 최근에는 근비대 관련해서 내추럴 팔이 유행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끼는 점은 이러한 유행이 5년? 정도 주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내추럴 팔이를 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내추럴이다보니) 기록이든 몸이든 성장이 끝날 때 이러한 유행도 사그라지는 것이라 저는 추정합니다. 내추럴 인플루언서의 인기가 사그라들면, 팔로워들 상당수는 결국 비슷한 영역에서 약물을 사용하는 인플루언서든, 소위 ‘렉카’든… 이런 쪽으로 가게 되겠죠.

      삭제
    2. 5년 주기라면 곧 네추럴 유행의 끝을 볼 수 있겠네요. 그 후엔 꽂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할지 아니면 걸리지 않게 잘 쓸지 궁금하네요.

      아 그런데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는데 약물 사용이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인식처럼 독극물에 가까운 정도로 위험한건가요?

      물론 약물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식적인 인간이라는 가정하에 말이에요.

      얼마전에 bigger, stronger, faster 를 보고나니 흠,, 술 담배가 훨씬 위험한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루이 시몬스 옹도 디볼을 매일 복용했다고 아는데 꽤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고 간 것 같아서 이게인슐린 같은 것 정도 꽂지 않는 이상 생명에 타격을 주긴하나?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어 여쭤봅니다..!

      삭제
    3. 1) 약물은 그것이 어떤 약물이든지 당연히 몸에 안 좋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감기약 등도 안 좋은 부작용이 없진 않고, 다만 매우 적어, 약물이 목표로 하는 작용의 효용과의 비교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2) 인간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나 성장호르몬도 과용하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두 호르몬을 매우 많이 사용한다고 가정해보면, 적혈구 양이 늘고, 이로 인해 심장 비대가 일어나서, 심장병 위험이 높아지는 나이에 바로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당연히 올라가겠죠. 아니면 암과 관련된 가족력이 있는 경우라면, 성장호르몬 고용량 사용은 바로 암 발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하물며,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 아닌, 화학적 성격을 변화시킨 스테로이드의 경우에는 부작용이 더 심하겠죠. 여러 약물들이 각기 다른 부작용을 가지고 있겠습니다. 혹시 장기간의 아나볼릭-안드로제닉 스테로이드 사용이 뇌 기능과 인지 기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PMID: 23253252; PMID: 25986964)?

      4) 하지만, 다시 1)로 돌아와서, 부작용으로 인한 악영향보다 약물 사용으로 얻는 효용이 더 큰 경우가 언제나 있을 것이고, 사실 대부분의 돈의 걸린 스포츠는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극단적으로 많은 양을 오래 사용하는 보디빌딩과 같은 스포츠가 아닌 이상, 그리고 애초에 자원이 풍부하거나 약물 사용을 통해 어느 정도 부를 확보할 수 있는 이상,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최소 용량을 사용하면 될 테니까요.

      5) 물론, 대부분의, 취미로 쇠질을 하는 분이라면 딱히 약물을 사용할 이유가 없긴 하겠죠. 말 그대로 ‘취미’니까요. 영원히 보디빌더처럼 보일 수도, 파워리프터다운 중량을 들 수도 없겠지만, ‘취미’잖아요?

      삭제
    4. 그렇군요. 들으면 들을수록 보디빌딩은 약물이 있어야 비로소 프로페셔널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선생님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