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최근 들은 음악들 단평 (6) – ‘Arghoslent-like’ 밴드들 몇 개

  Arghoslent는 미국 버지니아 주 출신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로,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 행보로 악명이 높다. 이들의 “인종차별주의 행보”에 대해 여기에 상세히 적지는 않겠지만, 궁금한 이라면 이들이 쓴 곡들의 가사들을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그리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굳이 글로 남기는 바, 나는 이들의 인종차별적 의견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 땅에 살며 방구석에서나 음악을 듣는 나조차 알게 될 정도로 이들의 음악이 나름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니고 있고, 이에 따라 나름 추종까지 받는다는 점이다. 멜로딕 데스 메탈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밴드들이 그렇듯, 이들 역시 헤비 메탈이나 스피드 메탈, 때론 스래시 메탈처럼 들리는 리프들을 중심으로 곡을 쓰되, 프로덕션과 보컬 톤에 있어 데스 메탈의 그것들을 사용하는 식의 음악을 한다. 다만 이들이 다른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들(고텐버그 쪽 밴드들이라든지)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이는데, 1) 이들이 사용하는 멜로디 중 제법 여럿이 포크 음악의 영향 하에 있다는 것과, 2) 리프 스타일과 곡 구성에 있어 다른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보다 ‘올드스쿨’ 메탈 밴드들에 가까운 접근을 한다는 점이다. 거창하게 썼지만, 쉽게 이야기하자면 ‘트루’ 메탈이니 ‘폴스’ 메탈이니 구별하는 이들이 ‘트루’로 인정하고 용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멜로딕 데스 메탈을 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그러니까, Dissection은 싫어하지만 Sacramentum은 참고 들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멜로딕 데스 메탈로 이해하면 된다, 하하).

 사실, 이들의 스타일이 매우 독창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위에 적은 두 가지 지점 중 첫 번째 지점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인종차별에 미친 남부 백인들답게, 이들이 종종 사용하는 포크 음악적인 멜로디라는 것은 사실 컨트리 음악에서 나온 것처럼 들린다.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 한 내용이다만) 지나가면서 본 유튜브 댓글에는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 나름 유명한 밴조 연주자이기도 하다는 내용마저 있었다. 결국, 이들 음악의 매력은 독특한 멜로디를 메탈 외골수들이 좋아할 만한 리프들에 잘 결합시킨 것에 있다 하겠다. 사실 하기의 밴드들이 Arghoslent의 영향을 받아 이들의 작법을 상당 부분 베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조의 맛을 살리지 못 하는 것 같은 부분도 있을 정도이니, 음악적으로 실로 흥미로운 밴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1980년대 이후 메탈에서 새로운 장르, 또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밴드들 중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사례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은, 메탈이 사실 그냥 집합적으로 문제 있는 문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노르웨이 쪽에서 시작한 세컨드 웨이브 블랙메탈 전반은 말할 것도 없고, 멜로딕 데스 메탈의 경우에도 위에 언급한 Arghoslent가 있으며, 멜로딕 블랙 메탈 같은 경우에도 Dissection 같은 밴드는 네오 나치와 관련이 있었다. 가만 따져보다 보면 결국 정치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적은 씬으로 뉴욕 데스 메탈 씬 정도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Suffocation만 남는 건가?


1. House of Atreus

 House of Atreus는 인터넷에서 Arghoslent와 비슷한 밴드를 원한다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답변에 등장하는 밴드이다. 그리고 이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면 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다. 듣는 내내 무언가 Arghoslent가 썼을 법한 리프, 무언가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들이 튀어 나온다. 물론 Arghoslent보다 훨씬 ‘모던’한 밴드이며, 중간중간 적당히 블랙 메탈 같은 부분들도 있고 그렇다. 잘 하는 밴드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언가 원조의 정수를 완전히 베끼는 데엔 실패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밴드이기도 한 느낌이다. 재미있는 점은, 백인들로 가득한 주 출신 밴드가, 백인우월주의에 미친 밴드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음악을 하며, 무려 그리스 비극만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다. PC를 지지한다면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 Grenadier

 

 Grenadier 역시 위에 적은 House of Atreus처럼 Arghoslent로부터 받은 영향을 숨기지 않는 밴드이다. 아니, 오히려 House of Atreus보다 재현도가 높을 정도라 하겠다. 애초에 이들의 밴드명부터 Arghoslent의 Hornets of the Pogrom 앨범의 마지막 곡에서 따왔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 2022년 첫 풀렝쓰도 Arghoslent가 앨범들을 내었던 Drakkar Productions에서 내었다. 다만 Grenadier는 Arghoslent에서 전쟁과 관련된 테마만을 따온 것처럼 보이며, 이 덕에 사상적인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로워 보인다. 전쟁에 대한 묘사는 메탈 장르 전반을 볼 때에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흔한 주제이니 말이다. 곡들도 전반적으로 호방한 느낌으로, 좋게 들린다. 아마 이들의 2022년도 첫 앨범이 Arghoslent의 이름 아래 나왔다면, 인터넷 메탈 관련 포럼의 백인우월주의자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찬양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Arghoslent의 2023년 앨범은 *매우* 별로였다).


3. Bogside Sniper Squadron

 이 밴드는 2023년에 데모 하나 낸 밴드이지만, 어떻게 보면 위 두 밴드들보다 Arghoslent를 더 잘 재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이유는 없고, 데모 하나만 있다 보니, 프로덕션이 좀 더 안 좋아 무언가 더 밑바닥 느낌이 나게 들리기에 그렇다. 음악 자체는 포크스러운 멜로디를 제법 많이 쓰기에 매우 Arghoslent처럼 들린다. 다만 트레몰로 리프를 굉장히 많이 쓴다는 차이 정도가 있지 않나 싶고, 그래서 그런지 Metal Archives에서도 블랙/데스 메탈로 분류해놓았다. 곡 주제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관련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가사가 공개된 것이 없어 잘 모르겠다. 그것보다 유일한 멤버인 Friancis Kano는 이력을 보니 블랙 메탈+펑크 쪽 밴드만 했었고, 무려 그 Integrity의 라이브 앨범에 참가한 이력이 있다. 다른 밴드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전념하길 희망해 본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