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일 일요일

세 가지 최초의 200kg 오버헤드 리프트들과 세 명의 리프터들 - 색슨, 쉬만스키, 블라소브


0. 서론

이 글은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붙일 만한 세 개의 오버헤드 리프트들과, 이를 수행한 세 명의 리프터들의 훈련법과 성향을 살펴보는 글이다.
첫 번째는 아서 색슨의 203kg 투 핸즈 애니하우이다. 이는 인류 역사 상 200kg 이상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최초의 사례이다.
두 번째는 노버트 쉬만스키의 200kg 컨티넨탈 저크이다. 이는 아서 색슨 이후 두 번째로 200kg 이상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사례이며, 최초로 200kg 이상의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것이다.
세 번째는 유리 블라소브의 202.5kg 클린 앤 저크이다. 이는 올림픽 역도 사상 최초의 200kg 이상 클린 앤 저크였다.
위의 세 가지 리프트를 수행한 리프터들의 사례를 통해 독자들이 나름의 영감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1. 아서 색슨의 448lb (203kg) 투 핸즈 애니하우


가장 오래 된, 200kg가 넘는 오버헤드 리프트 중 하나는 아서 색슨의 448lb (203kg) 투 핸즈 애니하우이다. 색슨은 한 손으로 336lb (152kg) 바벨을 벤트 프레스로 들고, 다른 손으로 112lb (51kg)의 케틀벨을 들어올려 해당 기록을 달성했다 (Saxon). 투 핸즈 애니하우는 두 개의 분리된 중량물을 양손으로 각각 하나씩 어떠한 방법이든(애니하우Anyhow) 동원하여 들어올리는 종목을 말한다. 색슨의 해당 기록은 1904~1906년 전후하여 발행된 색슨 본인의 책자에 실려있는 것으로, 20세기 초, 스테로이드는커녕 제대로 된 영양제나 보충제조차 없을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더불어 색슨은 약 200~210lb (90~95kg) 정도의 체중으로, 이 글에서 다루는 세 명 중 가장 가벼운 사람이다(ibid, Klein). 색슨의 기록은 어떤 면에서 이후 다룰 다른 둘의 기록보다 더욱 놀라운 기록인 것이다.
색슨은 도대체 어떤 훈련으로 이런 비인간적인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는가? 스테로이드 이전 시절 올드타이머로서 저빈도, 저볼륨, 고강도로 훈련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왜냐하면 색슨은 매일 하루 종일 훈련과 공연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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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슨 형제는 고강도 훈련을 신봉했으며, 매우 많이 훈련했다.

설령 매우 고되고 어려운 근력 공연을 하룻밤에 두 번씩 선보이면서도, 색슨 형제는 오전에 두세시간씩 훈련하였으며,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 결과 색슨 형제는 당시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얻었다 매일 고된 훈련을 하는 방법이 현재의 이 챔피언들을 있게끔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 있어 색슨 형제는 매우 독보적이었다. 다른 이들은 가능한 한 적은 훈련만 했으며, 리프팅 관련 일반적인 기준이 당시에는 매우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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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색슨은 자신의 장기인 벤트 프레스를 매일 훈련했다(Gaudr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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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팔 벤트 프레스는 매일 수행되었다. 해당 리프트의 수행 방법에 대해서는 필자의 해석을 옮기는 것보다는 색슨 본인의 설명을 듣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리프트를 항상 연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맞는 방법으로 시작하기 위한 핵심은 바벨을 중심에 두어 바벨 자체가 손 안에서 균형이 맞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벤트 프레스의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몸을 반쯤 옆으로 그리고 앞으로 굽히면서 여러분의 왼쪽 전완(만약 여러분이 중량을 오른손으로 드는 경우에)을 여러분의 왼쪽 허벅다리 위에 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리프터들이 몸을 너무 아래까지 굽히며, 이 때문에 그들은 균형을 잃어 중량을 앞으로 떨어뜨리게 됩니다. 중량을 드는 팔은 언제나 약간 뒤쪽에 위치해야 합니다. 이제 리프트의 가장 쉬운 부분입니다: 중량을 드는 팔로 계속 밀어내며 팔이 완전히 펴질 때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어려운 것은 적절히 어깨를 잠그는 것입니다. 이는 인내심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어깨가 잠기었을 때 중량을 그 포지션에서 오랫동안 지탱하며 중심을 잡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저희는 매 트레이닝 세션마다 30회의 시도를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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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잘하고자 하는 종목을 위해 보조 운동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색슨이 벤트 프레스 향상을 위해 추천한 보조 운동 두 개는 각각 특정 구간 강화(일어나는 구간에서의 근육 강화)를 위한 훈련과 최대치를 초과하는 중량을 들고 버티는 훈련이라는 것이다(Saxon, op.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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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 프레스에 사용되는 근육들을 강화하는 것에 좋은 연습 종목 중 하나는 벤트 프레스를 수행한 뒤 중량을 들지 않은 쪽 팔로 링 웨이트나 작은 덤벨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우선 추가적인 중량을 어깨까지 올린 뒤 프레스하라. 이를 수행하는 동안 수행자의 시선은 언제나 오른쪽 손(역주: 벤트 프레스를 수행한 쪽 손)을 향해야 한다. 또 다른 연습 종목은 바벨에 벤트 프레스는 불가능하나 어깨에 올려 지탱하는 것은 가능한 정도의 무게를 건 후, 바벨을 어깨에 올리고 몸을 틀어 벤트 프레스의 시작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 자세에서 중량을 1~2초 정도 지탱한 후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면 된다. 만약 어떤 수행자가 150 파운드를 한 팔로 프레스 할 수 있는 경우에 이 연습 종목에서 224 파운드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그 수행자가 다시 150 파운드를 시도한다면, 수행자는 프레스 수행에 있어 전에 없던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이 수행자는 과거 224 파운드라는 중량에 대해서 상상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실제 그 무게가 어떤 것인지 느껴보았고, 이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보다 높은 무게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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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바, 색슨의 비법은 고빈도, 고강도의 훈련, 특히 자신이 기록을 내려는 종목을 항상 훈련하고,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과 중량 적응 훈련을 섞어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색슨은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던 무게를 머리 위로 들 수 있었던 것이다.
훈련법과는 별도로, 색슨의 개인적 성향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개인적으로 리프팅에서의 성과(세계 기록이나 세계 대회 우승과 같은 객관적 성과뿐 아니라, 본인이 타고난 재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주관적 성과)는 리프터 개인의 성향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특히 본인 스스로 리프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서 색슨의 성향에 대해 이미 짐작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매일 다른 사람이 꿈도 못 꿀 중량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힘 자랑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조용하고 겸손하며 재미없는 사람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색슨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즐겼던 사람임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음주와 관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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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서는 분명히 술고래였다. 언젠가 Red Lion에서 Fulham의 관객들이 아서가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까지 취하게 만들어보자고 농담을 걸었고, 아서는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50 잔 정도의 맥주를 마셨다. 그는 그 날 Granville에서 공연을 하지 않았다.

아서가 사람들이 의도한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을 때, 그는 크게 웃고는 이 음모를 꾸민 사람들에게 자신이 맥주에 젖었다고 얘기했다. (Inch, op.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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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색슨이 유진 샌도우Eugen Sandow에게 도전해 이겨버린 일화이다. 당시 샌도우는 최고의 스트롱맨으로 이름을 날리던 중이었고, 색슨은 겨우 만 19~20세였다. 물론 색슨이 샌도우에게 거둔 승리는 이후 샌도우가 법원 판결을 통해 무효로 만들어 버렸으나, 이를 통해 색슨이 당대 최고의 스트롱맨에게 도전할 정도로 자신감과 도전 정신이 넘쳤으며, 실제 승부에서 이길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Vl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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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도우가 색슨보다 나이가 많았고(샌도우는 30 정도, 색슨은 19세나 20세였다), 당시 가장 성공적인 공연자였기 때문에, 샌도우는 색슨의 주장(역주: 자신이 샌도우보다 강하다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1898226일 영국 Sheffield에서, 색슨 트리오가 공연을 하고 있을 때에, 색슨이 도전을 하자, 샌도우는 무대에 뛰어들어 도전을 받아들였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각각의 스트롱맨은 리프트 하나를 정해 서로 시기를 주고 받았으며, 상대의 장기인 리프트 중 하나에서 상대를 이긴 사람이 승자로 인정 받았다. 우선, 색슨이 110파운드(50kg) 케틀벨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려 새끼손가락으로 이를 지탱하고, 160파운드(72.5kg)가 나가는 사람이 색슨의 어깨로 기어올라가 케틀벨 위에 앉았다. 그리고 색슨은 케틀벨과 사람 모두를 벤트 프레스로 들어올렸다 샌도우는 이를 시도하는 것조차 거부했으며, 내 할아버지의 말로는, “스트롱맨 공연의 암묵적인 규칙을 깨버렸다.” 색슨은 이에 더해, 손을 모두 사용하여, 180파운드(81.5kg) 케틀벨과 188파운드(85kg)가 나가는 Oscar Hilgenfelt(원래 색슨 트리오의 멤버)를 같은 방식으로 벤트 프레스 했으나, 완전히 일어난 자세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 역시, 샌도우는 시도조차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색슨은 264파운드(120kg)의 바벨을 벤트 프레스했고, 두 번째 시도에 성공했다. 샌도우는, 이 시점까지 다른 모든 시기를 회피해 힘이 넘치는 상태로, 벤트 프레스를 시도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내 기억에 우리 할아버지는 샌도우가 도전을 받아주기 전에 의도적으로 색슨을 지치게 하려고 계략을 꾸민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 같다. 이런 계략에도 불구하고, 샌도우는 중량을 락아웃하는 데에만 5번의 시기를 필요로 했으며, 그나마도 중량을 들고 일어선 자세를 취하지도 못했다. 색슨은 승리를 선언했으며, 내 의견에 따르면, 응당 그럴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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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화 하나는 당대 최고의 운동선수라고 할 수 있는 도널드 디니Donald Dinnie와의 일화이다. 디니가 색슨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색슨은 직접 디니를 찾아가 자신이 실제로 강하는 것을 보여주었다(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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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전설적인 Highland Games 선수인 도널드 디니(디니의 caber toss 기록은 40년 동안을 깨지지 않고 남아있었다)와 관련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디니는 색슨에 대해 듣고는, 색슨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190410월에, 색슨은 디니를 직접 방문하여, 디니의 장비를 사용해서, 340.5파운드(154kg)를 벤트 프레스로 들어 올렸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디니는 색슨을 지지하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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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색슨이 유쾌함, 도전 정신, 그리고 자존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이, 고된 훈련법과 더불어, 색슨이 200kg가 넘는 중량을 최초로 머리 위로 들어올린 사람이 되게 해주었던 것이다.


2. 노버트 쉬만스키의 200kg 컨티넨탈 저크


노버트 쉬만스키의 200kg 컨티넨탈 저크는 195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쉬만스키가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일종의 공연으로 이루어졌다(Kutsenko). 당시까지만 해도 이 리프트는 앞서 다룬 색슨의 203kg 투 핸즈 애니하우 다음으로 무거운 오버헤드 리프트였다(Murray).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컨티넨탈이라는 것은 한 동작으로 바벨을 목표 지점까지 올리는 대신, 여러 번에 나누어 올리는 것을 뜻한다. 쉬만스키는 200kg를 두 동작에 걸쳐 어깨 위로 올린 뒤 저크를 수행하였다. 이는 쉬만스키의 당기는 힘과 저크 능력이 매우 강했음을 보여준다.
쉬만스키는, 4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긴 경력으로 유명하지만, 50년대 중반 짧은 시기 분명 세계에서 가장 힘 센 리프터로 불릴만한 인물이었다. 역도 헤비급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했으며, 그전까지 다른 리프터들은 간신히 머리 위로 한번이나 들어올렸던 아폴론 휠을 가뿐히 세 번 저크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쉬만스키의 훈련법은 대략 하기와 같았다고 한다(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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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만스키는 매 워크아웃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하기에, 그의 훈련법을 기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월요일은 쉬만스키가 무겁게 훈련하는 날이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북부 YMCA에서 훈련하며, 훈련 루틴은 다음과 같다.

추상-240파운드( 109kg)로 시작해 15~20파운드( 6.8~9kg)씩 올려가며 3~4 개의 싱글을 수행한다.

인상-추상과 같다.

용상-325파운드( 147kg)로 시작해 370파운드( 168kg) 380파운드( 172kg)로 무게를 올린다. 370~380파운드 클린이 성공적이라면, 2~3회 정도 저크를 반복한다.

일반적인 훈련일에 노브는 3회 세트로 추상과 인상을 훈련하며, 그렇게까지 무거운 무게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용상 훈련에 있어서는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편이다. 훈련 예시는 이하와 같다.

추상-230( 104kg)*3 240( 109kg)*3 250( 113kg)*3 260( 118kg)*3

인상-추상과 같다.

용상-클린 300( 136kg)*3~4 330( 150kg)*2~3 360( 163kg)*3 이후에 저크를 수행

느낌이 좋은 때에 노브는 370파운드 클린( 168kg) 2회 반복한 적이 있다. 첫 번째 클린은 바닥에서 시작한 것이고, 두 번째 클린은 행 자세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한 달에 세 번 정도 저크를 따로 떼어 훈련한다. 언젠가 그는 랙 저크에서 400파운드( 181kg)를 가지고 7 개의 싱글을 한 적도 있었다. 그의 랙 저크 기록은 그의 컨티넨탈 저크와 같이 430파운드( 195k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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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훈련법은 쉬만스키의 일일 훈련법을 묘사한 것이다. 쉬만스키의 당시 주 당 훈련 계획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1962년 기사에서 쉬만스키가 월, , , 토로 주 4일 훈련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주 당 3~4일 훈련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Weissbrot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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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Press 5 x 3
Snatch 5 x 2
Clean Grip High Pull 5 x 3
Snatch Grip High Pull 5 x 3

Tuesday

Press 5 x 3
Clean 5 x 2
Squat 5 x 3

Thursday

Press
Snatch
Clean
- 웜업 후 80% 정도로 6~8 개의 싱글을 수행한다. 자세에 신경 쓴다.

Saturday

Press
Snatch
Clean & Jerk
 - 각각의 세 가지 리프트에서 웜업 후 매우 무거운 중량이나 최대 중량까지 중량을 올려간다;이후 무거운 스쾃으로 워크아웃을 마무리한다


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이게 거의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의 전부이고, 확실히결과를 내고 있다. 세 번의 워크아웃에 많은 훈련을 몰아넣는 것보다 네 번에 나누자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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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쉬만스키의 훈련법은 단순하다. 자신이 무게를 올리기 원하는 동작들을 꾸준히 수행하며, 80% 정도의 테크닉 훈련은 물론, 매우 고중량, 심지어 최대 무게를 항상 도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역도 훈련법을 따라 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쉬만스키를 다른 이들과 구분 지은 것은 오히려 쉬만스키가 리프팅을 대하는 태도이다. 쉬만스키는 평생 육체 노동을 전전하며 순수한 아마추어로서 국내/국외 역도 시합에 참가하였다. 쉬만스키는 세계 최초로 4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역도 선수가 되었으나, 이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이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다른 삶의 측면들을 버려가며 살았다. 한편에서는 자신이 취미로 하는 분야에서 세상 모두를 짓밟는, 말 그대로 최고의 위치에 있지만, 정작 다른 범인들이 모두 손쉽게 하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에는 실패해버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쉬만스키에 대한 문헌들을 읽을수록, 쉬만스키가 스스로의 인생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모순에 대해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스스로에의 조소가 오히려 쉬만스키를 리프팅에 있어 더욱 막강하게 만들어 주었던 동력이라 짐작하게 된다. 적어도 쉬만스키는, 안락한 삶은 살지 못했을지언정,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인물로 남았다. 다른 범인들과는 달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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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만스키는 역도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힘든 인생을 살았다. 그는 디트로이트 지역에 살았으며, 내셔널 챔피언십과 월드 챔피언십 일정에 맞추기 위해 최저 임금을 주는 직종들을 전전했다. 호프먼Hoffman이 대회에 나가는 데에 발생하는 비용들을 지불해주긴 했으나, 시합과 시합 사이 동안에 쉬만스키는 주유소에서 급유를 하거나 화장실 청소부를 하거나 했다. 이는 Sports Illustrated지에서 “Looking for a Lift’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최고 올림픽 선수 중 하나에게 닥친 고된 시간을 세간에 보여주었을 때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것은 과거 영광을 누렸던 사람이 후에 불운해진 것과는 다르다. 쉬만스키는 당시에 이미 내셔널 챔피언십과 월드 챔피언십, 올림픽 대표였으며, 역도라는 종목의 최정상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Sports Illustrated지의 사진 속에, 쉬만스키는 살풍경하게, 한 손에는 수세미를 들고, 이제 자신이 닦을 변기 앞에 서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자,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며, 여가 시간에 자신의 조국을 위해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작살내는 남자다. 고향에서, 그는 비참할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었고, 언제나 재난, 곤궁, 노숙으로 빠지기 직전의 상태에서 근근이 살았다. Sports Illustrated지가 그의 역경에 대해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후원자나 기업도 쉬만스키에게 지원을 제안하지 않았다. 거의 언제나 어떤 매체이든 쉬만스키를 다룰 때에, “씁쓸한Bitter”이라는 단어가 그가 스스로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묘사할 때에 사용되어 왔다. 언젠가 쉬만스키는 가장 씁쓸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비꼬는 투로 언제나 씁쓸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그려지는 게 가장 씁쓸하다고 답변했다. 이 말은 쉬만스키가 자신의 경이롭기만 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참할 정도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자신의 운동 선수로서의 커리어에 대해 남긴 또 하나의 가시 돋친 평이었다. (Gallag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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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쉬만스키의 비결은 기본에 충실한 훈련법과 세상에 대한 분노, 스스로에 대한 조소였음을 확인해보았다. 적어도 이 조합은 쉬만스키에게, 그리고 이후 카워스키Karwoski 같은 리프터에게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니, 독자들 중 끌리는 이는 한번 시도해봐도 좋을 것이다.


3. 유리 블라소브Yuri Vlasov 202.5kg 클린 앤 저크


소련의 유리 블라소브는 역도의 역사에서 세계 최초로 200kg이 넘는 클린 앤 저크를 성공시킨 사람으로 이름이 남아있다. 블라소브는 1960 로마 올림픽 때에 202.5kg의 클린 앤 저크를 성공시키며 금메달을 따냈다.
블라소브의 훈련법은, 50~60년대 리프트들의 훈련법이 추후 소련 역도 훈련법의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고빈도, 고볼륨으로 요약될 수 있다. 1960년 당시 블라소브가 1년 동안 수행한 반복수는 5,715회였다(Zatsiorsky et al). 이는 블라소브가 매일 바벨 동작을 15.6회 정도 수행했다는 뜻이다. 물론 블라소브는 매일 훈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블라소브가 매우 많은 볼륨을 소화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로비예브에 따르면, 블라소브는 하루 동안 20톤 정도의 훈련 볼륨을 소화하고도 다음날 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Vorobiev, 1968).
보로비예브의 다른 글을 보면, 블라소브를 포함한 60년대 초중반 소련 역도 선수들의 훈련법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프레스와 스내치, 그리고/또는 변형 스내치, 클린 풀이 한번의 세션에서 훈련되었고, 프레스를 위한 인클라인 벤치 프레스와 스내치를 위핸 행 스내치나 힘 스내치, 그리고 프론트 스쾃 등의 하체 훈련이 다른 훈련일에, 그리고 클린 앤 저크와 스내치 풀이 또 다른 훈련일에 묶여 훈련되었다 (Vorobiev, Web 2008).
블라소브의 훈련은 역도 동작뿐 아니라, 다양한 동작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블라소브는 움직임의 세련됨과 지구력, 스피드를 훈련하려고 체조동작, 축구, 농구, 수영을 훈련하였으며, “달리기와 수영, 그리고 다른 지구력과 스트레칭 운동이 중요하고, “이런 것들이 없는 근력은 건강하지 못한것이라 생각했다(Allthingsgym). 한 기사에 따르면, 블라소브는 관절이 두 배로 달린 것처럼유연했다고 한다(DeBroglio).
그러나, 앞의 두 사례처럼, 블라소브를 위대한 리프터로 만든 것은 그의 훈련법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블라소브가 가지고 있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자의식이 그를 역도의 최정상에 올려놨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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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당신은 실로 역사Strongman이시군요...
블라소브: 저는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역사.
인터뷰어: 다른 단어는 어떤 게 있나요?
블라소브: 운동선수Athlete.
인터뷰어: 운동선수요? 그러면 운동선수"는 무엇인가요?
블라소브: 운동선수는 어떤 이에게든, 어떤 것에든, 그에 굴하지 않는 투사를 말합니다.
인터뷰어: 어째서 사람은 승리가 필요한가요?
블라소브: 삶은 승리와 승리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는 최고의 자연적 활동입니다.
인터뷰어: 어째서 그리 자신감이 넘치셨나요(역주: 자신이 폴 앤더슨의 기록을 깰 것이라 확신했었다는 말에 이어진 질문)?
블라소브: 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불멸성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러시아의 힘과 관련된 고결한 전통 없이는 결코 운동선수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터뷰어: 그 전통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블라소브: 자부심과 명예를 위한 힘. 고난을 겪는 중에도 결코 쇠락하지 않는 감정의 힘입니다. 이는 인간이 언제나 인간일 때에 육체적이며, 영적인 힘입니다. 이러한 감각 없이 힘을 기념하는 것은 짐승의 삶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인터뷰어: 팬들이 그러한 종류의 힘에 얼마나 자주 환호하나요?
블라소브: 숭배되는 모든 것이 그만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플랫폼에서의 힘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얼마나 추한지 말하지 않죠.
인터뷰어: 당신은 가장 우아한 무제한급 선수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어떻게 이를 이루셨나요?
블라소브:  추가적으로 체중을 늘리는 것은 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한 명의 검투사가 되는 것은 별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힘의 새로운 공식을 찾으려고, 힘의 모든 차원을 통제하려고, 힘을 주관하는 과정의 근원을 탐색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저를 극단적인 훈련량이라는 개념으로 인도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정말로 어느 정도까지 능력이 있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인터뷰어: 그러면 어느 누구든 매우 강해질 수 있다고 하시는 건가요?
블라소브: 바로 그렇습니다. (LIF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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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에 전통과 자신의 “임무를 접목할 만큼의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 역도 시합을 어떤 자세로 임했을지 궁금한가? 블라소브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통해 힘을 얻었다(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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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시합 때에 상대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블라소브: 저는 그들을 증오했습니다. 당신 관점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좋지 않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위기감, 시합장의 관중들, 고통, 그 어떤 것도 시합에서 당신에게 힘을 주지 못합니다. 투쟁의 감각! 그 분노가 근육을 깨웁니다. 적을 붙잡고! 상대를 쳐부수고!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를 쓰러뜨려 승리를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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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는가? 블라소브는 적어도 이 과대한 자의식을 평생 견지하였고, 심지어 병조차 의지로 이겨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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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나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삶을 사는 데에 대한 무능력이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을 쓰셨습니다. 이건 불운한 사람들에게 너무 무자비한 것 아닌가요? 병이나 상실 같은 사례들도 있지 않습니까..
블라소브: 저는 겨우 아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양 다리의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선수 시절 당한 척추 부상 때문이었죠. 고통 때문에 저는 거의 한 시간마다 쭈그려 앉아야 했습니다. 신발끈을 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고통이 사라졌죠. 그 후엔 뇌경련 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들은 치료법이 없다고 했죠. 그리고는 당뇨도 왔죠. 그리고는 계속 플루에 걸렸습니다. 그저 고문 같았죠. 저는 언제나 열을 달고 살았고, 하루에 두 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침대에 누워있었죠. 끝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저 자신으로 더 이상 있지 못한다면 삶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인터뷰어: 무엇을 통해 회복하셨나요?
블라소브: 제 의지.
인터뷰어: 저는 의지력으로 시합 상대들을 이겼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도 무언가를 배우게 해주었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의지가 병을 이기나요?
블라소브: 저는 저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불평하는 수준까지 떨어졌었죠. 사람이 그것보다 비참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인터뷰어: 물론, 스스로에게 매우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병과 관련되는 것이죠?
블라소브: 세상에 찾아낼 수 없는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저희의 생리적 체계 속에 갇혀 있죠. 생각이 잠을 멈추고, 혈관에 영향을 주고, 사람의 심장을 보다 강하게 뛰게 하죠. 저항하는 의지, 행동의 용기에 의해 막기 어려운 문제들인 끔찍한 생각들, 공포, 의심, 이 모든 것들이 병을 만들고, 몸이 반란을 일으키고, 중독되게 하여, 결국 무너지게 하는 겁니다. 이는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죠. 이는 Sechenov의 유명한 말에 따른 겁니다 신경의 반응을 보았을 때에, 실제 행동과 그 행동을 상상하는 것 간에는 차이가 없단 말이죠.
인터뷰어: 그러면, 그걸 깨달았을 때 무엇을 하셨나요?
블라소브: 1979년 봄에, 저는 만약 내가 병마와 싸우다 죽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면, 적어도 강한상 태로 죽겠다. 어찌되었든, 강자는 죽지 않는다.” 라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제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도울 수 있는 수많은 병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를 제 의무로 생각했죠.
인터뷰어: 그게 어째서 당신의 의무인가요?
블라소브: 무자비한 도전은 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친절함에의 필요를 낳습니다. 도전은 당신에게 연민을 가르쳐주죠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터뷰어: 재활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블라소브: 저는 제 성격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어: 그 나이에요?
블라소브: 당신처럼, 저는 이전에 인간의 성격을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어떤 연속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압니다 당신은 당신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병을 없앨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그리 말했습니다. 모든 불운, 피로, 문제들은 길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으로, 공포로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저항의 에너지를 통해 극복되어야 합니다.
인터뷰어: 아마 그건 아주 강한 사람에게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블라소브: 제가 이미 말한 것처럼, 누구든지 강해질 수 있습니다. Bekhterev를 읽어보세요 특히 그의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방법에 대해 말입니다. 어느 누구든 스스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안 좋은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잠재적으로 환자입니다. 저는 목표가 있었죠 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질병이 저를 정복하게 내버려둔 저 자신을 증오했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한 분노와 질병에의 증오를 불태웠었죠. 그러다가 어떤 말들은 저를 상처 입히고, 약하게 만들며, 또 어떤 말들은 저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의지로 몸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꾸어 나갔습니다. 저는 모든 가능한 신체적 회복 방법을 연구했고, 저 스스로만의 방식을 만들어, 다시 훈련을 시작했죠.
인터뷰어: 역도를 다시 시작하셨나요?
블라소브: . 다시 역도를 시작했죠. 저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제 상태는 매우 호전되었으며, 오히려 제 스포츠 경력의 최정상기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당신은 믿어야 합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심지어 아주 약간의 거짓, 모순, 의심조차 당신의 투쟁을 망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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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독자들 중 일부는 블라소브가 자의식 과잉에 빠진, 비정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태도가 블라소브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부정할 수 없다. 블라소브는 역도에서 은퇴한 뒤 작가, 기자로 활동했고, 소련 해체 이후엔 정치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리고 2005년에는 만 70세의 나이로 109kg 체중에 185kg 클린 앤 저크를 하기도 했다 (Rezept Sport). 25세 때 세계 최초로 200kg이 넘는 무게로 클린 앤 저크를 한지 45년 뒤에 말이다.


4. 결론

이상에서, 역사 상 최초의 200kg 이상 오버헤드 리프트들을 성공시켰던 리프터 세 명의 훈련법과 그들의 성향을 살펴 보았다. 이 시점에서는 독자들 모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끝없이 훈련하고, 그 동안 자기 자신으로서 있는 것이야말로, 초인적인 결과를 내는 근간이 된다는 것 말이다.


5. 참고문헌

LIFTUP, Interview With Yuri Vlasov Komsomolskaya Pravda, June 1986 (short version) Translation by Arthur Chidlovski, http://www.chidlovski.net/liftup/a_interview_vlasov_071988.asp
DeBroglio, C. D., 1962 (Web 2010), How They Train: A Report from the World Championships, http://ditillo2.blogspot.com/2010/05/how-they-train-report-from-world.html
Vorobiev, Arkady, Web 2008, Training for Qualified Lifters, https://ditillo2.blogspot.com/2008/10/training-for-qualified-lifters-arkady.html
Vorobiev, Arkady, 1968 (Web 2010), Russian Training Methods: Developing Speed and Flexibility, https://ditillo2.blogspot.com/2010/07/developing-speed-and-flexibility-arkady.html
Zatsiorsky et al, 1995, Science and Practice of Strength Training, Human Kinetics.
Gallagher, Marty, 2014, Norbert Schemansky World & Olympic Champion, Transitional Strength Figure, https://startingstrength.com/article/norbert_schemansky
Vleck, Thom Van, 2010, THE SHEFFIELD SHOWDOWN – SAXON VS SANDOW, https://usawa.com/the-sheffield-showdown-saxon-vs-sandow/
Saxon, Arthur, 1906, The DEVELOPMENT of PHYSICAL POWER
Klein, Siegmund, 1936 (Web 2012), How Much Can You Bent Press,  http://ditillo2.blogspot.com/2012/03/how-much-can-you-bent-press-part-one.html
Gaudreau, Leo, THE SAXON TRIO: What they ate & how they trained. By Leo Gaudreau, https://www.bullshido.net/forums/archive/index.php/t-28966.html
Murray, Jim, 1954 (Web 2012), Training Programs and Best Lifts of Norbert Schemansky, http://ditillo2.blogspot.com/2012/09/norbert-schemansky-jim-murray.html
Kutsenko, Yakov, 1956 (Web 2015), TRAINING METHODS OF AMERICAN LIFTERS, https://ditillo2.blogspot.com/2015/08/training-methods-of-american-lifters.html
Weissbroy et al, 1962 (Web 2019), So You Want to be a Weightlifter, https://ditillo2.blogspot.com/2019/10/so-you-want-to-be-weightlifter-1962.html

2019년 10월 14일 월요일

마빈 필립스와 샘 버드 – 당신이 언제나 무겁게 훈련할 필요가 없는 이유


이 글은 최근 이용수 관장의 훈련법을 보고 쓰게 된 글이다. 100kg 이하의 무게만 가지고 몇 주 간 훈련하다가, 다시 200kg으로 반복 훈련을 했다는 글이었다. 이에 더해 이용수 관장이 데드리프트 훈련의 경우에도 20~30%로 고반복 및 70% 정도로만 훈련한다는 내용의 영상도 유투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무겁게, 또는 극단적으로, 자기 맘대로 훈련하는 리프터들의 사례를 추종하는 편이나, 이용수 관장의 사례는 시합 시 목표 중량에 비해 매우 가벼운 무게로 하는 훈련 또한 중시하는 사례들을 파워리프팅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을 새삼스레 다시 기억해내게 해주었다. 또한 얼마 전 적은 글이 고강도 및 저빈도로 훈련하는 리프터들을 다룬 것이었기에, 이들과 대비되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빈 필립스와 샘 버드는 모두 백 스쾃 종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던 리프터들이며, 공통적으로 자신의 시합 중량에 비해 매우 낮은 중량으로 긴 기간 동안 훈련하는 방식을 고수하였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비단 메인 종목에서의 강도를 높게 가져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님을 환기하고자 한다.


마빈 필립스Marvin Phillips

마빈 필립스는 70년대 중반~80년대 초반에 상위 성적을 내던 미국의 리프터이다. 필립스의 스쾃 개인 최고 기록은 1980110KG 체급에서 싱글 플라이 장비를 착용하고 세운 382.5KG이다 (Openpowerlifting, https://www.openpowerlifting.org/u/marvinphillips).
Openpowerlifting에서는 확인이 안되지만, 테리 토드Terry Todd에 따르면 필립스는 1978년경에 806파운드 (365.5KG)의 스쾃을 성공시켰으며, 당시까지 몇 년 동안 같은 루틴을 사용했다고 한다 (To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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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몇 년 간 사용해온 스쾃 루틴을 사용하며, 누구든 Marv가 스스로에게 이상적일 정도로 효과가 있는 시스템을 어설프게 바꾸는 것은 바보짓임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주 별로 화요일과 토요일 이틀 스쾃을 훈련하며, 한 번은 가볍게, 다른 한 번은 무겁게 훈련한다. 그는 루틴을 순환해가며 훈련하며, 만약 다가오는 시합이 없는 경우에는 화요일에 405파운드로 5회를 넘지 않고, 토요일에는 625파운드로 5회를 넘지 않으며 훈련한다. 이를 설렁설렁하는Coasting” 루틴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루틴은 다음과 같다.

화요일: Marv는 매 워크 아웃을 220 야드 (200미터) 달리기 (조깅도, 스프린트도 아닌 달리기)로 시작한다. 만약 날씨가 좋으면 밖에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터널에서 달린다.

135 x 몸이 풀릴 때까지 가능한 한 많이.
135 x 10 – 첫 두 셋에서 그는 최대한 바닥까지 내려가는데, 이는 고관절, 대퇴, 그리고 등 하부의 근육들을 스트레치하기 위함이며, 좁은 스탠스(발꿈치 간 거리가 14인치, 35.5센티미터)를 사용한다.
225 x 8 – 역시, 14인치 스탠스로, 발끝은 밖을 향한다.
315 x 5 – 일반적인 스탠스 (22인치, 55.8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405 x 5 – 일반적인 스탠스
315 x 10 또는 12 – 다시 좁은 스탠스로 수행하며, 최대한 바닥까지 앉아 허벅지와 둔근이 펌핑되게 한다.

토요일: 두 번의 220 야드 달리기로 시작한다.
135 x 몸이 풀릴 때까지 가능한 한 많이.
135 x 10 – 화요일처럼 깊게.
225 x 8 – 화요일처럼 좁은 스탠스로.
325 x 5 – 이 세트부터는 일반적인 스탠스로
425 x 5.
525 x 5.
625 x 5.
315 x 10 or 12 – 화요일처럼 좁은 스탠스로

다가오는 시합 일자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목표일로부터 12주 전에, 그는 언제나 같은 중량으로 훈련하는 설렁설렁하는루틴을 버리고, 시합 전 사이클을 시작한다. 설렁설렁하는 루틴과 시합 전 사이클의 가장 큰 차이는 다루는 무게를 극적으로 늘리려고 시도한다는 것에 있다. 세트수와 반복수는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나, 중량을 크게 올린다는 말이다.

12주 사이클의 첫 4주 간 그는 매주 5 파운드씩 훈련 중량을 늘려가며, 4주 차가 끝났을 때 화요일에는 405파운드 대신 425파운드를, 토요일에는 625파운드 대신 645파운드를 다룬다. 이 시점에서 그는 B-12 투여량과 비타민 섭취량 (C, E, )을 늘려가며, 이 시점부터 시합까지 8주 간 매주 10파운드씩 훈련 중량을 늘려갈 것을 계획한다. 이에 따라 시합 전 마지막 화요일에는 505파운드로 5회를, 토요일에는 725파운드로 5회를 수행한다. 마지막 8주 간, 그는 100파운드 원판을 사용해 시합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려 하며, 마지막 무거운 훈련 주는 하기와 같게 된다.

화요일: 220 야드 달리기 두 번으로 시작한다.
135 x 몸이 풀릴 때까지 가능한 많이
135 x 10 – 좁은 스탠스
245 x 8 – 좁은 스탠스
335 x 5 – 이 세트부터는 일반적인 스탠스
445 x 5.
505 x 5.
335 x 10 or 12. – 좁은 스탠스

토요일: 220 야드 달리기 두 번으로 시작한다..
135 x 몸이 풀릴 때까지 가능한 많이, 좁은 스탠스
135 x 10 – 좁은 스탠스.
245 x 8 – 좁은 스탠스.
335 x 5 – 이 세트부터는 일반적인 스탠스.
445 x 5.
535 x5.
645 x 5.
725 x 5.
335 x 10 or 12 – 좁은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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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합이 없는 경우 필립스는 가벼운 훈련일에는 50% 정도의 중량으로, 무거운 훈련일에는 77.5% 정도의 중량으로만 훈련했으며, 여기에서 딱히 강도를 더 올리거나 하지 않았다. 연간 2회의 시합을 한다고 가정할 때에, 1년 중 24주를 제외한 28주 정도를 상대적으로 저강도를 가지고 훈련했다는 뜻이다. 12주 사이클 역시 첫 4주 간에는 무거운 훈련일에도 훈련 중량이 80% 정도 이하이기에, 12회 시합 시 필립스는 36주 동안 80% 이하의 무게로 훈련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오프시즌을 가지다가 시합 12~16주 전 선형 주기화 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70년대 중, 후반에는 이미 흔히 사용되던 훈련법이다. 다만 필립스의 훈련법이 다른 리프터들에 비해 특이한 지점은 낮은 강도에 있다. 필립스는 위의 훈련법을 통해 연 중 내내, 휴식기 없이훈련할 수 있었다 (ibid). 이는 결국 테크닉 연습, 볼륨 축적, 그리고 스쾃에 필요한 근비대가 가능케 하였으며, 스쾃 리프트에서 필립스가 좋은 결과를 얻게끔 해주었던 것이다.


샘 버드Sam Byrd

파워리프팅 스쾃에 있어 샘 버드 이상의 성과를 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샘 버드는 현재 100KG 체급에서 멀티플라이 스쾃 세계 기록 499KG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2019.08.30) 유리 벨킨Yuri Belkin416KG로 갱신하기 전까지 100KG 체급에서 니랩 스쾃 415KG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샘 버드가 스쾃을 잘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샘 버드의 훈련법에서 흥미로운 점은, 샘 버드가 훈련 중 백 스쾃 강도를 매우 낮게 가져가며, 상대적으로 가벼운 중량으로 최대한의 가속을 노리는 방식으로 훈련한다는 것이다 (Byrd)
**최대한의 가속을 통해 근력 훈련을 하는 것은 소위 CAT (Compensatory Acceleration Training)이라 불리는 방법론이다. 이는 한때 스쾃 세계 기록 보유자였던 Dr. Frederick C. Hatfield가 주창한 것으로, 관심 있는 사람은 더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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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장 기본적인 5x5 프로그램을 사용하며, Training Max (실제 Max90% 정도)60% 정도 무게를 사용한다. 내 세트/반복수는 무게를 증가시킬 때마다 바뀌지만, 여전히 가능한 한 훈련을 단순하게 유지한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으면 무엇이 효과가 있고 효과가 없는지 알기 어렵게 된다.

60% x 5×5 = 25

70% x 5×4 = 20

80% x 5×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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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훈련의 대부분은 Training max60%로 이루어진다. 이 무게는 훈련 당일 최대치의 60%일수도, 아닐수도 있으며, 이를 확실히 구별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떤 날에는 중량이 내 등에서 튀어 올라갈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스쾃이 땅콩 버터를 헤쳐 뛰어가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중량이 매우 가볍게 느껴지는 날에는 휴식 시간을 줄여 훈련을 더 어렵게 한다. 힘든 날의 경우 휴식 시간을 늘린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훈련의 목표가 단순히 중량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 반복수마다 가속을 통해 중량을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가속이 더 잘되겠지만, 이 목표는 언제나 같게 유지된다.
나는 매 반복마다 지속적으로 바를 가속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전까지는 중량을 올리지 않는다. 가장 마지막 반복도 첫번째 반복만큼 빠르게, 또는 더 빠르게 바닥 자세부터 락아웃까지 가속되어야 한다. 나는 또한 이 기간을 내 컨디셔닝을 늘리기 위해 이용한다. 바에 중량을 늘리기 전까지 휴식 간격을 바꾸어간다. 만약 30분 동안 5x5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 경우, 내 컨디셔닝은 매우 안 좋은 상태인 것이다. 내 목표는 우선 보다 폭발적인 되는 것이다-매 반복마다 가속을 통해서 말이다. 일단 이를 달성하면, 나는 세트 간 휴식 시간을 줄인다. 모든 세트를 15분 내에 수행할 수 있고 마지막 반복 후에도 여전히 상쾌하고 기운이 남아있는 상태일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바에 무게를 더하지 않는다. 물론 땀은 나고, 약간은 지치겠지만, 여전히 남은 운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도로 말이다.
///

물론 샘 버드는 위의 훈련만을 하지는 않는다. 버드는 주 2회 하체 훈련을 하며, 하루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가벼운 백 스쾃을, 다른 하루는 프론트 스쾃을 수행한다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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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의 주 당 2회 스쾃 훈련:

메인 스쾃 훈련일
스쾃 – 5회 반복으로 이루어진 세트들을 상기의 방식으로 수행
데드리프트 (보통 스티프레그 데드리프트를 수행하거나, 스피드 풀과 비슷한 방식의 세트/반복수로 수행) – 스티프레그 데드리프트의 경우 3 x 106 x 5, 스피드 풀의 경우 1RM60%6~8 x 3.를 세트 간 1분 휴식하며 수행
글루트 햄 레이즈- 3-4 x 10-15
복근
윗등

프론트 스쾃과 랙풀 훈련일
프론트 스쾃- 3x5. 마지막 세트(3번째 세트)에서 실패지점까지 가며, 8회 성공하는 경우 중량 늘림.
랙풀 (무릎 바로 아래)- 더 이상 5회 반복을 못할 때까지 계속 무게를 올려가며 5회 반복 세트를 수행, 그 후에는 무거운 31세트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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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중량을 다루는 날에도 프론트 스쾃을 통해 백 스쾃에 비해 절대적 기준에서는 낮은 중량을 사용하는 것이 주목하라. 유투브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버드의 프론트 스쾃은 600파운드 정도로, 시합 기록의 70% 미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RgX6MoUuuA, https://www.youtube.com/watch?v=910tpXys4KM). 버드의 훈련은 시합 중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를 사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백 스쾃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중량을 최대한 가속함으로써 무거운 무게를 사용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얻으려 하며, 프론트 스쾃을 통해 절대 중량은 가볍게 가져가면서도, 불리한 레버리지를 통해 근력을 길렀던 것이다.


결어

이상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는 수준의 리프터 중에도 시합 중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중량으로 훈련하는 사례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위와 같은 훈련 방식은 오랜 훈련 경력 및 어느 정도 높은 기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오랜 훈련 경력을 통해 자신의 컨디션을 나름대로 확인하고, 설령 리프터 본인에게는 상대적 저중량이라 하더라도 절대적으로는 아주 가볍지는 않는 중량을 다루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다양한 훈련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알아두어 나쁘지 않은 사례들이라 본다.


참고 문헌

Byrd, Sam, 2013, ‘Squatting Big’, https://www.jtsstrength.com/squatting-big/
Lewis, Jamie, 2012, DESTROY THE OPPOSITION – The Definitive Guide to Elite Powerlifting.
Todd, Terry, 1978, ‘The Squat’, Web, 2011, https://ditillo2.blogspot.com/search?q=marvin+phillips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마이크 이스라텔 박사의 루틴


하기는 Dr. Mike Israetel의 루틴이며, 하나의 Meso-cycle (6주 정도) 한 가지 방식을 골라 진행한다고 한다 (6주 후에는 1주 디로딩).

Dr. Istraetel30%~85%로 세트 당 5~30회 정도로 훈련하고, 풀 가동 범위를 사용하며, 종목은 다양하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강도는 계획에 맞추어). 볼륨은 힘든 세트 수로 계산하는 듯 하다.




1) 부위 별로 주 당 4회 훈련 (주 당 12 세션)
**아직 제대로 시도해보지는 않았다고 함

오전 대퇴사두 (무겁게), 대퇴이두 (무겁게), 종아리
오후 밀기 (무겁게), 어깨, 쉬러그

오전 당기기 (무겁게), 이두, 그립
오후 대퇴사두 (중간 강도), 대퇴이두 (중간 강도), 종아리

오전 밀기 (중간 강도), 어깨, 쉬러그
오후 당기기 (중간 강도), 이두, 그립

오전 대퇴사두 (중간 강도), 대퇴이두 (중간 강도), 종아리
오후 삼두, 밀기, 어깨, 쉬러그

오전 당기기 (중간 강도), 이두, 그립
오후 대퇴사두 (가볍게), 대퇴이두 (가볍게), 종아리

오전 밀기 (가볍게), 어깨, 쉬러그
오후 당기기 (가볍게), 이두, 그립



2) 부위 별로 주 당 3~4회 훈련 (주 당 11 세션)

오전 가슴 (무겁게), 그립
오후 어깨, 이두, 승모

오전 하체 (무겁게)
오후 (무겁게), 어깨

오전 당기기 (중간 강도), 그립
오후 어깨, 이두, 승모

오전 하체 (중간 강도)
오후 (중간 강도), 승모

오전 삼두, 밀기, 그립
오후 어깨, 이두, 승모

오전 (가볍게), 하체 (가볍게), 이두



3) 부위 별로 주 당 2~3회 훈련 (주 당 8 세션)

오전 가슴 (무겁게), 그립
오후 어깨 (무겁게), 이두 (중간 강도), 쉬러그 (무겁게)

오전 하체 (무겁게)

오전 (무겁게), 그립 (25파운드 원판 2 개를 가슴까지 당긴 뒤 정지, 그 후 무거운 보조 풀업)
오후 어깨 (중간 강도), 이두 (중간 강도), 쉬러그 (중간 강도)

오전 삼두 (무겁게), 가슴, 그립

오전 하체 (볼륨)

오전 이두 (무겁게), 어깨 (중간 강도), 쉬러그 (중간 강도), (중간 강도)



4) 부위 별로 주 당 2~3회 훈련 (주 당 6 세션)

오전 가슴 (무겁게), 쉬러그, 그립

오전 하체 (무겁게), 어깨,

오전 (무겁게), 어깨,

오전 삼두 (무겁게), 가슴, 쉬러그, 그립

오전 하체 (중간 강도~무겁게)

오전 이두 (무겁게), 어깨, (중간 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