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일 화요일

NORBERT SCHEMANSKY by Jerry Green, The Detroit News, January 2002. 의 번역


 개인적으로 역도 종목의 역사를 살펴 볼 때에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생각하는, 노버트 쉬만스키에 대한 기사이다. 쉬만스키는 말 그대로 최후의 진정한 아마추어로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라 하겠다. 본문에서 쉬만스키의 어조는 전반적으로 비꼬는 투가 강하다. 번역에서 이를 잘 살렸는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출처는 이하. 출처인 Liftup 사이트는 아서 치들로브스키(?) 개인이 여러 자료를 기부 받아 운영하는 사이트로 역도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http://www.chidlovski.net/liftup/a_interview_schemansky_011102.asp

---------------------------------------------------------------------------------------------------


 50 년 전 어느 날 Dearborn에서 노버트 쉬만스키는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자신의 상관에게 휴가를 요구하였다.

 상관은 고개를 젓더니 안된다고 말했다.

   그 때 저는 Briggs Manufacturing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휴가를 달라고 했고, 아래 층의 어떤 녀석이 이렇게 외치더군요. ‘저 녀석을 그냥 쉬게 해줘요. 잘라버리라구요.’” 쉬만스키의 말이다.

  저는엿먹어라, 난 간다.’라고 해줬죠.”

 이는 반세기가 지난 이후에도 쉬만스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일련의 사건들 중 하나이다. 그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출전했고, 소비에트 연방에서 온 라이벌을 상대로 승리하여 금메달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 미시간의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 무명 그 자체인 스스로의 삶으로 돌아갔다.

 쉬만스키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지낸 역도 선수였다. 그리고 미국 땅에서 역도 선수들은 자신들이 응당 받아야 할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제 완전히 망가진 다리를 가지고 허리 통증을 겪는 77 세의 쉬만스키는 지난 주 우리와 함께 그가 43년 동안 살아온 Dearborn 서부의 자택에서 전세계적으로는 유명했으나 고향에서는 무명이었던 운동 선수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쉬만스키는 차라리 미시간에서보다 모스크바에서 더 유명할 지경인 것이다.

 또 다른 올림픽이 곧 시작되는 시기를 감안할 때에, 쉬만스키는 아마 최후의 순수한 아마추어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총 4 개의 올림픽 메달을 얻어냈다. 그는 1948년 올림픽부터 1964년 올림픽까지 4 번의 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 하나, 은메달 하나, 동메달 두 개를 얻었다(1956년 올림픽은 부상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러 다른 시합에서도여러 다른 잡동사니(a bevy of other junk)”들을 따냈다.

 단 한 푼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선수로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한 말이다.

현재의 올림픽 출전자들은 높은 보수를 받는 직업인들이며, 백만장자도 드물지 않다. 오십 년 전의 올림픽 챔피언들은 스스로가 따낸 메달을 보며 다른 한편으로 생계를 위해 분투해야 했다.

 “(현재 시점에서)고작 이런 것을 위해 시합을 나가는 사람을 상상해볼 수나 있습니까?”, 쉬만스키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손톱정도 크기의 빛 바랜 메달을 보여주었다.

 이제 더 이상 올림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쉬만스키는 말을 이어갔다. “요즘 올림픽은 그냥 돈놀이예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언젠가 Sports Illustrated에서 스키를 타는 어린 애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애는 총 13 가지의 찬조를 받고 있더군요. 그 애의 머리끈에도 어떤 이름이 써져 있고, 그 애가 들고 있는 막대에도 어떤 이름이 써져 있고, 그 애가 타고 있는 스키에도 어떤 이름이 써져 있고, 신발끈에도 어떤 이름이 써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쉬만스키는 단 한 번도 찬조를 받은 적이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다.

현재의 올림픽 참가자들은 전문가가 준비한 엄선된 식단을 따른다. 많은 참가자들이 보충식품을 섭취하며, 몇몇은 스테로이드까지 한다.

 쉬만스키 역시 1948년 런던에서 은메달을 딸 때,, 1952년 헬싱키에서 금메달을 딸 때, 1960년 로마와 1964년 도쿄에서 동메달을 딸 때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식단을 준수하였다.

 햄버거, 피자, 맥주.”

 만약 제가 현재 한창 시합을 뛰고 있다면, 아마 백만장자가 될 겁니다. 버드와이저, 햄버거 기업, 마이크 일리치(역주: 디트로이트의 사업가로 Little Caesars Pizza를 창립하여 이후 지역 야구팀까지 사들인 인물)가 절 후원할 테니 말입니다.”

 역도 종목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쉬만스키는 종목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뉴욕이든 모스크바이든, 흐릿한 전등만이 켜져 있는 지하의 체육관이든 고급 훈련 시설이든, 우리 선수들 숙소이든 상대 편 선수들 숙소이든, 2066년이든 3066년이든, 쉬만스키-이미 스스로 활동하고 있던 시절부터 전설 그 자체였던 그 쉬만스키-의 일화들은 언제나 기억될 것이다.” 유명한 트레이너인 조 웨이더가 Weightlifting Magazine에 썼던 말이다.

 쉬만스키가 시합을 나가던 때에-이와 동시에 어떤 수익이나 유명세도 얻지 않던 그 때에-그는 Amateur Athletic Union과도 어느 정도 알력이 있었다. AAU는 미국의 올림픽 참가자들을 통제했고, 매우 엄격한 규칙을 부과했다.

 언젠가 쉬만스키가 한 시합을 나갔을 때에 AAU는 그에게 자켓 가슴팍에 붙일 패치를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쉬만스키는 그것을 받아서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게 바로 AAU가 있어야 할 곳이었으니까요.” 그의 말이다. “ 그네들은 내가 그네들에게 말했던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죠.”



정상에 오르다.

 쉬만스키는 2차 세계 대전 전 1930년대에 디트로이드 동부 지방에서 임시로 꾸민 체육관에서 역도를 시작했다.

 제 형이 역도 선수였죠. 형은 전국 챔피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13살이나 14살쯤 되었는데, 체육관에서 놀며 시간을 보내곤 했죠.”

 그 체육관은 차 두 대 정도가 들어갈 만한 차고를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이 삼 년 정도 후에 저는 그 체육관에서 몇 년이나 운동을 해온 다른 녀석들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었죠.”

 그 체육관은 Gratiot and McClellan거리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속 도로가 지나가는 곳이죠.”

Northeastern High School에 재학하는 동안, 그는 트랙 앤 필드 종목을 병행했다.

 투포환을 했죠. 코치가 저를 좋게 봤었습니다-그 때에 저는 160파운드 정도 나갔었고, 다른 녀석들은 거의 200파운드는 되었죠-저는 언제나 다른 녀석들을 이겼습니다. 결국 시 대회에서 입상했죠.”

 “’너 어떻게 던지는지는 알고있냐?’ 코치는 저보고 길 건너 야구장 백네트로 가서 백네트 너머로 공을 던지라고 시켰었죠.”

 그게 그 시절 받을 수 있는 코칭의 전부였습니다.”

 1940년대 초, 쉬만스키는 전쟁을 위해 징집되었다. 그는 유럽 전구에서 방공포병 부대에 복무하였다. 그는 독일군이 1944 12월에 반격을 시도했을 때에 벌지 대전투에서 싸웠다.

 우리 부대는 30 대의 항공기와 360 개의 폭명탄을 가지고 있었죠.” 쉬만스키가 스스로의 군생활을 회고하는 말이다.

 쉬만스키는 육군에 복무하면서 그의 첫번째 메달을 받았다. 그 중 다섯 개는 군생활 중 공적에 대한 훈장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스스로의 직업, 시합, 업무, 결혼, 가정과 같은 것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를 해고할 것이라는 위협과 타박을 받는 그 삶 말이다.

 제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가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제 아내는 정말 일을 많이 해야했습니다. 만약 아내가 없었다면 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쉬만스키의 말이다. “제 아내 버니스가 간지도 벌써 6 년이 되었습니다.”

 쉬만스키는 1952년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에 이미 세계 챔피언에 올라있었다. 그는 직업을 버리고 왔으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헬싱키에서 그는 이전의 어떤 역도 선수도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냈다.

 저는 체중의 두 배 무게를 든 최초의 헤비급 선수입니다. 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제 몸무게는 194~195파운드 정도였고, 클린 앤 저크에서 399파운드를 해냈죠.”

“참고로 그 시절에는 체급을 맞추기 위해 손 발톱을 정리하고 침을 뱉는 정도만 했습니다.”



무명과 찬사

 역도는 쉬만스키의 몸을 망가뜨렸다.

 그는 디스크 파열을 두 번 겪었고, 수술을 받고 난 뒤에 다시 세계 기록을 깨곤 했다.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들에 반항하며 말이다.

 의사들은 제가 다시는 걷게 될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마 그들이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저는 지금에 와서 걷는게 매우 불편하거든요.”

 이 사진 좀 보세요. 이건 400파운드가 넘습니다. 저는 그 무게를 들고 이 쪽 다리 하나로 일어나곤 했습니다(역주: 쉬만스키는 스내치와 클린 모두에서 스플릿 스타일을 사용했다). 지금은 그 쪽 다리로는 의자에서도 못 일어나죠.”

 심지어 그 때에도,그러니까 마이클 조던이나 스티브 아이저맨, 도미닉 하섹이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전인 그 때에도, 이후 무하마드 알리가 되는 캐시어스 클레이와 같이 유명한 몇몇 아마추어들은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역도 선수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쉬만스키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 때에는 텔레비전 중계를 하지 않았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역도와 보디빌딩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봤으니까요.”

 예전에는 체육관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면 멍청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멍청이인거죠.”

 그렇기는 하지만, 쉬만스키는 미국에서보다 오히려 러시아에서 더 유명하다.

 저는 여기보다 거기에서 더 유명합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매년 여름 러시아에 가는데, 그 녀석이 레스토랑에서 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웨이터가 그걸 듣고 그 녀석에서 사인을 받으려 했다고 하더군요. 단지 그 녀석이 제 친구라는 이유에서 말이죠.”

 쉬만스키는 인터뷰어를 바라보며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제 이야기에서 단 하나라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습니까? 모든 게 다 망가진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Dearborn에 제 이름을 딴 공원이 있었습니다.” 쉬만스키는 쉬만스키 공원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좀 긍정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나요.”

 사람들이 계속 물어봤답니다. ‘도대체 쉬만스키가 누구야?’ 그래서 결국 시에서는 명판을 내려버리고 말았죠. 제 업적과 함께 말입니다.”

How Much Can You Bent Press by Siegmund Klein (1936) 의 번역


지그문트 클라인의 벤트 프레스에 관한 글. 벤트 프레스의 수행 방법과 훈련 방법을 다루고 있다. 출처는 이하.


출처: http://ditillo2.blogspot.com/2012/03/how-much-can-you-bent-press-part-one.html
http://ditillo2.blogspot.com/2012/03/how-much-can-you-bent-press-part-two.html

---------------------------------------------------------------------------------------------------





 많은 리프터들이 벤트 프레스를 무시하는데, 이는 큰 실수다. 벤트 프레스를 수행하는 것만큼 감탄을 자아내게끔 할 수 있는 종목은 없다. 벤트 프레스는 지난 50여 년 간 인류가 수행해온 40여 가지의 오드 리프트 중 가장 매력적인 종목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벤트 프레스에 대한 흥미를 다시금 불러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없다면, 벤트 프레스는 스러져간 과거의 기억 정도로 남게 될 것 같다.

 벤트 프레스의 역사는 샌도우Sandow 1880년대 말 이 종목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때부터 시작된다. 샌도우는 이 종목을 아틸라Attila 교수에게서 배웠다. 샌도우 외에 여러 사람들도 벤트 프레스의 유명세에 일조했다. 이를 테면 리차드 페널Richard Pennel은 샌도우보다 전에 미국에서 벤트 프레스를 선보였으며, 맥캔McCann 형제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영미권 리프터들 사이에서 벤트 프레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샌도우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벤트 프레스는 (유럽)대륙의 리프터들 사이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벤트 프레스를 하기엔 너무 몸집이 컸기에, 벤트 프레스를 성공시킬 만큼 앞이나 옆으로 몸을 숙일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아예 시도조차 안한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벤트 프레스는 제대로만 익힌다면 다른 어떤 한 팔 종목보다 무거운 무게를 머리 위로 올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벤트 프레스로 자신이 두 팔로 들 수 있는 무게보다 무거운 무게를 한 팔로 들어올리곤 했다.

 대륙의 리프터들은 벤트 프레스를 일종의 속임수로 여겼다. 그리고 벤트 프레스가 위험하며 진정한 리프트가 아닌, 단지 무게를 지탱할 뿐인 것이라 주장했다. 대륙 리프터들이 계속 질질 짠 덕분에 벤트 프레스는 결국 대륙 내의 시합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사람들이 본 적도 없게 될 종목이 어찌 유명세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벤트 프레스를 찬미해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벤트 프레스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수 년 간 읽어왔으며, 결국 나 스스로도, 벤트 프레스에서 이미 제법 훌륭한 결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벤트 프레스 훈련을 안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과거와 같이 무거운 무게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벤트 프레스라는 종목이 몸 전반을 발달시키는 것에 있어 가지는 효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오래 벤트 프레스를 해왔다. 벤트 프레스는 리프트에 사용되는 근육들의 근력 뿐 아니라 중심을 잡기 위해 몸 전체의 근력과 유연함을 요구하기에, 사실상 몸 전체의 모든 근육을 발달시킨다.

 몇몇 권위자들은 벤트 프레스가 빠른 리프트를 수행하는 능력에 해가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핵켄쉬미트Hackenschmidt, 색슨Saxon, 샌도우, 그리고 우리의 자랑 롤랜도우Rolandow 같은 반례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롤랜도우는 현재 그 어떤 리프터보다 빠르면서도 벤트 프레스를 매우 잘 하며 즐긴다. 롤랜도우는 언제나 벤트 프레스가 샌도우에게 효과있었던 만큼 현재의 리프터들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 만약 리프터가 자신의 몸무게만큼 벤트 프레스를 하지 못한다면, 그는 벤트 프레스를 열심히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결코 벤트 프레스를 괜찮게 할 수 없는 아주 소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틸라 교수는 벤트 프레스를 연습하는 모두는 벤트 프레스를 마스터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알랜 칼버트Alan Calvert는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 조건 상 벤트 프레스를 잘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난 아무래도 칼버트의 견해에 좀 더 찬성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벤트 프레스를 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이 훌륭한 결과를 내는 것도 보아왔다. 일반적으로 몸이 두꺼운, 특히 허리 부분이 두꺼운 리프터들의 경우 벤트 프레스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몸을 굽힐 유연성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만약 잘 빠진 몸이 벤트 프레스에 그다지도 필수적이라면 어떻게 색슨, 핵켄쉬미트, Neubauer, Wareing, Nordquest나 여러 다른 두터운 몸을 가진 사람들이 벤트 프레스를 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부분이다. 나는 물론 이러한 사람들이 벤트 프레스 훈련을 시작함에 있어 존 그리멕John Grimek, Matysek, Roy L. Smith Owen Carr와 같이 보다 날씬한 허리를 가져 벤트 프레스를 처음부터 쉽게 익힐 수 있었던 사람들보다 힘든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것에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 보다 날씬한 허리를 가진 리프터들은 중량을 든 팔이 다 펴졌을 때에 다시 선 자세로 일어나는 부분에서 보다 두터운 몸을 가진 리프터들보다 힘들어하는 것을 보아왔던 것이다.

 벤트 프레스는 숙달하기에 가장 어려운 종목임이 틀림없으며, 완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이 종목에 대해 큰 애정을 가져야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이 현대의 리프터들이 벤트 프레스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내 견해는 다음과 같다. 사실은 많은 리프터들이 한 때 벤트 프레스를 시도해보지만, 스스로가 벤트 프레스에서 괜찮은 기록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벤트 프레스를 리프트가 아닌 속임수라고 부르는 입장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올림픽 리프트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 당신은한 손으로는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머리 위로 올릴 수 있나요?” 하는 질문을 흔히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할 때 조심하길 바란다! 만약 당신에게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 올림픽 바벨보다 두꺼운 바벨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평소에 들던 무게를 결코 들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벤트 프레스를 할 줄 안다면 두껍고 어색한 바벨은 당신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벤트 프레스를 진지하게 시도하는 모든 리프터는 벤트 프레스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말하는 진지한 시도는 적어도 6개월 간 벤트 프레스와 그 보조 종목에 주의를 기울여 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흔한 태도는 벤트 프레스를 할 때에 너무 급하게 기록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훈련자에게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인내심을 가져라. 벤트 프레스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동작의 유연함과 몸의 유연성을 발달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당신이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무게로 시작하라. 자세에 신경을 쓰고, 벤트 프레스에 요구되는 기술을 숙달할 필요가 있다. 절대 어려운 무게로 시작하지 마라. 그래야만 최종적으로 무거운 무게를 다루는 것에 필요한 올바른 자세에 집중할 수 있다. 연습을 통해 자세를 완전히 숙달해야만 무거운 무게를 시도할 때에 본능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벤트 프레스를 수행하는 내내 스스로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당신의 전완은 언제나 바닥과 수직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앞이나 옆으로 몸을 굽히기 시작할 때에 엉덩이를 뒤로 빼라. 당신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언제 오른 다리를 굽히는가, 언제 모든 힘을 다해 중량을 프레스하는가, 언제 최종적인 스쿼트 자세로 들어가는가, 다시 일어서기 전 얼마나 오래 중량 아래에서 버텨야 하는가, 얼마나 빠르게 일어서야 하는가. 이 모든 요소들은 벤트 프레스를 숙달하는 것에 있어 매우 중요하며, 이 요소들을 숙달하지 못한다면 벤트 프레스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요소들을 숙달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무거운 무게를 시도하는 것은 스스로 상기의 모든 요소들을 본능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벤트 프레스의 복잡한 움직임을 배우는 것은 물구나무서기 같은 것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균형잡기의 경우에 수행자는 손을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 올곧은 자세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박차고 일어날 것인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등을 아치모양으로 할 것인가, 언제 손가락으로 바닥을 눌러줄 것인가, 어디에 발을 위치시키는가, 언제 고개를 들 것인가 등과 같은 여러 요소들을 인식하여야 스스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이 모든 요소들이 본능적인 과정으로 융화되고, 수행자는 각각의 요소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동작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균형잡기에 있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만, 연습을 통해 이러한 생래적 차이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벤트 프레스를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물구나무서기 역시 잘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리프터들이 벤트 프레스에서 완전히 무게 아래로 내려간 자세의 사진을 보았을 때에 리프트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벤트 프레스에 익숙하지 않은 여러 리프터들은 스쿼트 자세의 사진들을 보고 벤트 프레스의 마지막 자세라고 생각하곤 한다. 몇몇 작가들은 올드 타이머들은 이를 완료된 리프트로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 사진들을 공격하곤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벤트 프레스의 바닥 자세를 담은 사진들이 그토록 많은 것은 단지 여러 리프터들의 자세를 비교하고 배우기 위해서 찍힌 사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더불어 이 바닥 자세라는 것이 벤트 프레스를 잘 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바닥 자세를 담은 사진은 어떻게 스쿼트해서 내려가는가, 무게를 지탱하지 않는 손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며, 벤트 프레스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바닥 자세들에 대해 연구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사진들에 무언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고, 당신은 여러 벤트 프레스 전문가들이 각각 약간씩은 다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각각의 리프터들은 몸을 굽히는 것에 있어 스스로의 몸에 맞는 각자의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초보자는 여러 자세 중 몇 가지를 시도해보면서 스스로에게 맞는 자세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리프터들은 오른 다리의 엄지 발가락이 정면을 향하게 두는 반면, 다른 리프터들은 엄지 발가락이 바깥 방향을 향하게 한다. 어떤 리프터들은 중량을 든 팔의 팔꿈치가 보다 몸의 옆면을 향하게 놓고, 어떤 리프터들은 중량을 뒤 쪽에 매우 높은 지점에서 지탱하나, 다른 리프터들은 편안한 자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중량을 매우 낮은 지점에 두고 리프트를 시작한다. 이 모든 지점들을 시도해보고 연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이 자기 몸무게만큼의 벤트 프레스를 성공시킨다면 스스로를 기량이 뛰어난 리프터로 여겨도 좋다. 그 후의 성과는 당신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더 성공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몸무게보다 25 파운드를 더 드는 것은 좋은 퍼포먼스이며, 50 파운드를 더 드는 것은 훌륭한 성과이고, 75파운드를 더 드는 것은 매우 독보적인 성과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가벼운 사람에 비해 벤트 프레스에서 몸무게 대비 비율을 따질 때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나는 135파운드 몸무게에 236파운드의 벤트 프레스를 성공시킨 사람을 알고 있다. 이는 스스로의 몸무게보다 100파운드 높은 중량이다. 그러나 색슨은 200파운드도 넘는 몸무게에서 스스로의 몸무게보다 100파운드 이상 높은 중량을 들 수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색슨은 210파운드 체중에서 371파운드를 성공시켰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매우 특별한 경우이므로, 만약 자신의 몸무게를 들었다면 스스로에 대해 만족해도 좋다

 벤트 프레스를 위해서는 특별한 형태의 중량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일단 당신이 벤트 프레스에 숙달되면, 당신의 한계를 넘는 무게가 아닌 이상 어떤 형태의 중량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벤트 프레스를 배우기 위해 익혀야 할 두 가지 기본 운동이 있다. 첫번째는 사이드 프레스다. 다리를 편 상태로 시작해서, 이후에 오른 팔로 프레스를 함에 따라 왼쪽 다리를 굽힌다. 이 운동은 벤트 프레스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수행자가 굽힌 자세에서 근육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게끔 해준다. 이 운동은 매우 도움이 된다. 중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올곧게 선 자세에서 다리는 편 채로 유지하며 앞이나 옆으로 몸을 숙여보라.

 또 다른 보조 운동은 중량을 머리 위로 들고 스쿼트했다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운동을 할 때에 몸을 약간 앞과 옆으로 숙여보라.

 실패지점을 겪지 말고 이 운동들을 연습하라. 이 두 운동은 벤트 프레스를 숙달하는 것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당신의 옆부분이 뻣뻣하다면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일찌감치 실망하지 말아라. 충분히 몸을 굽히지 못한다면 단순히 힘만 가지고 무게를 들어올리려 하는 식으로 벤트 프레스를 수행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보조 운동들을 하다 보면, 마법처럼 어느 순간 벤트 프레스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이건 당신의 리프팅에 관련된 경험 중 가장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초보자들은 덤벨로 연습할 것을 강하게 추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균형을 잡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두 손으로 중량을 어깨까지 올려라. 이 시점에서는 발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당신의 키와 관계가 있다. 그렇기에 발을 벌리는 너비는 개인이 결정해야 한다. 오른 팔로 하는 프레스에서는 오른 다리가 수직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팔꿈치는 엉덩이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뒤쪽으로 보내어 지고, 삼두근이 광배근 위에 놓여야 한다. 중량을 적절히 지탱하기 위해서는 엉덩이가 뒤쪽으로, 그리고 옆쪽으로 강하게 밀어져야 한다. 왼 다리는 약간 앞쪽에 위치하며 몸이 움직일 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어깨를 축으로 해서 45 도 정도의 각도로 위치하면 된다. 이제 발의 위치는 유지하며, 오른 다리는 펴진 상태에서, 왼 다리의 무릎을 굽히고, 눈은 중량의 손잡이를 향하며, 전완은 수직으로 해라. 이제 당신은 벤트 프레스를 할 준비가 되었다.


 아서 색슨은 371파운드를 성공시켜 벤트 프레스에서 스스로가 최고임을 보여줬다. 이 사진들은 색슨이 근사한 벤트 프레스 바닥 자세로 내려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색슨은 자신이 필요한 시간만큼만 중량을 엉덩이 쪽에서 지탱했고, 중량을 완전히 제어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들어올렸다. 색슨은 몇몇 리프터들이 사용하는 비틀기나 회전하기와 같은 스타일을 사용하지 않았고 리프트를 시작하기 전에 몸을 잘 굽혀 놓고 정면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프레스를 했다.


 이 사진은 프랑스의 위대한 경량급 스트롱맨 피에르 가스니에Pierre Gasnier 가 팔이 완전히 펴진 상태에서 벤트 프레스의 가장 낮은 지점까지 내려간 모습을 보여준다. 벤트 프레스를 잘하는 몇몇 리프터들은 중량을 들지 않는 쪽의 손과 팔을 같은 쪽 무릎에 올려놓고는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리프터들은 중량을 들지 않은 쪽의 어깨가 무릎 사이로 파고들어갈 때까지 내려가며 중량을 들지 않은 쪽의 손을 중량을 든 쪽 다리에 놓이게 한다. 이 방식은 리프터가 적어도 6 인치 정도 더 깊게 내려갈 수 있게 해주며, 무거운 무게를 보다 쉽게 프레스할 수 있게 해준다. 리프터는 사진에서 보이는 자세에서 한 팔 스내치와 같은 방식의 풀 스쿼트 자세를 취한 뒤, 중량의 균형을 잡으면서, 일어서면 된다. 그 후 발꿈치를 똑바로 선 자세가 될 수 있게 정렬하고, 중량을 적어도 2초 정도 머리 위에서 지탱하면, 완벽한 벤트 프레스를 수행한 것이 된다.


이 사진은 과거 가장 힘이 세며 잘 발달된 몸을 지닌 사람 중 하나로 평가되었던 안톤 마티섹 Antone Matysek 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현재 볼티모어 경찰 지부에서 체력 교관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그의 공연 중에 찍힌 것으로서, 리프터가 프레스를 하기 위해 벤트 프레스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는 어깨와 거의 수평을 이루며, 팔꿈치는 엉덩이 가까이, 몸의 뒤쪽에 위치하고, 중량을 드는 쪽의 다리는 중량을 드는 쪽의 전완과 거의 일직선으로 지면과 수직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근골격이 무거운 중량을 무리없이 지탱할 수 있게 된다.

  
 적절한 벤트 프레스 움직임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기사의 첫번째 부분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것을 상기해보자.
나는 벤트 프레스에 있어 무거운 무게를 시도하기 전에 자세를 완전히 숙달해야 함을 강조했다. “연습이 완벽을 기한다라는 옛말은 좋은 말이나, 한편으로는 틀린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벤트 프레스를 시작한다면, 아마 어느 정도까지는 무게를 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연습이 당신의 잘못된 자세를 완벽하게끔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방식을 배운 사람이 결국에는 보다 많은 무게를 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제,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벤트 프레스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의 중심을 두 손으로 잡아서 무게를 들 손이 적절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손은 그 위에 놓여 중량을 어깨로 당겨 올리는 것을 도와줄 뿐이다. 팔꿈치는 엉덩이 위쪽에 편안히 놓여 몸 뒤쪽에 있어야 하며, 발은 개개인이 적절하게 느끼는 위치에 놓여야 한다.
 프레스를 수행하는 쪽 다리가 쭉 펴진 상태에서 지면과 수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무거운 중량을 효과적으로 지탱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지점을 지난 기사에 첨부된 호프만의 자세나, 이 기사에 첨부된 마티섹과 색슨의 자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량을 바닥에서부터 당겨 올려 엉덩이 위의 적절한 위치에 놓는 동작은 최대한 빠르게 실시되어야 하는데 색슨의 말을 빌리자면 벤트 프레스를 시작할 때에리프터의 팔의 힘은 중량이 어깨에 올라온 그 순간부터 약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 팔꿈치가 뒤쪽에 놓이고 엉덩이가 사진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뒤로 움직이게 된다. 중량을 들지 않은 쪽의 엄지는 바깥 방향으로, 몸이 움직일 방향을 향해 있어야 한다.
 언제나 시선은 기구를 향해야 하며, 천천히 앞으로, 그리고 옆으로 몸을 숙이면서 팔꿈치 위치는 엉덩이 위로 유지하라. 많은 초심자들이 이 지점에서 실수를 하는데, 중량을 갑작스럽게 프레스하며 엉덩이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론상, 벤트 프레스에서는 팔을 완전히 펴게 되는 시점 전에는 프레스 움직임이 없다. 그렇기에 허리와 넓적 다리 쪽이 유연한 사람의 경우 팔이 완전히 펴질 때까지 앞과 옆으로 몸을 굽힘과 동시에 팔꿈치를 여전히 엉덩이 위에 두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호프만의 세 번째, 네 번째 자세와 색슨의 두 번째 자세처럼, 상체가 다리와 적절한 각도를 이루었을 때부터 프레스를 해야만 한다 계속 바를 밀어내는 동안 전완은 수직으로 유지하고 중량을 약간 뒤쪽에 놓아라. 이제 팔이 펴지기 시작할 거이며, 이 지점에서 리프터는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여 프레스를 해야한다. 팔은 이제 4 분의 3 정도 펴지고 계속 쭉 펴진 상태로 유지되던 다리는 무릎에서부터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바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팔이 지속적으로 펴지는 동안 두 무릎을 모두 계속 굽혀라. 팔이 완전히 펴진 시점에서 당신은 호프먼의 네 번째, 다섯 번째 모습이나 가스니에의 매우 깊은 자세와 같은 자세로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초심자들은 깊은 자세에서 바로 일어나려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넓적 다리가 거의 수평을 이루었을 때, 엉덩이를 낮추어 풀 스쿼트 자세로 들어가고 중량이 양 발에 실려 보다 안전하게 지탱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량을 들지 않은 쪽의 손은 어깨가 넓적 다리 위쪽이나 무릎에 놓이고 손은 중량을 든 쪽의 다리에 놓임으로써 중량을 지지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중량을 완전히 지탱하고 일어설 때에 반대쪽 손으로 다리를 밀어줌으로써 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몇 가지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시선이 중량을 향해야 한다는 것과 전완이 리프트 내내 수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량을 무거울수록 팔꿈치가 엉덩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만약 매우 큰 팔을 가지고 있는 리프터는 호프먼이나 색슨의 경우와는 달리 팔꿈치 위쪽의 근육들이 너무 커서 몸을 굽힐 때에 팔꿈치가 엉덩이와 맞닿아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상박 전체가 몸의 옆부분이나 광배근 위에 올려질 수 있고, 이는 중량을 지탱하는데 이점이 된다.
 벤트 프레스에 있어 최고를 가리자면, 단연 색슨이 벤트 프레스에 있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록인 371 파운드는 아마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색슨은 벤트 프레스 중 몸을 굽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몸이 앞으로 굽혀질 때에 동작의 속도는 당신 스스로 리프트 중 느끼는 균형 잡힌 정도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물론 가능한 한 빠르게 리프팅을 하는 것이 좋긴 하나, 벤트 프레스에 있어 빠른 리프트는 완전히 균형이 잡힌 상태가 전제로 요구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리프트 중의 서두름은 중량에 대한 통제를 잃고 중량을 떨어뜨리는 일만을 야기할 것이다.
 색슨이 강조한 또 다른 사항은 색슨 스스로는 벤트 프레스를 함에 있어 바가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항상 바가 등과 수평이 되게 하며 직각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티섹의 자세를 상기하라).
 벤트 프레스의 원리는 바를 같은 높이에 있게 하면서 몸을 굽혀 바 밑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바의 균형을 잘 잡기 위해서는 언제나 바를 같은 높이에 위치시켜야 한다. 중량이 너무 뒤쪽이나 앞쪽에 걸려있다면 손목에 부담이 매우 심해진다. 물론 몇몇 공연자들은 약간 뒤쪽에 중량이 걸리는 것을 선호하긴 하지만 말이다.
 벤트 프레스를 훈련하는 사람들은 근력면에서 큰 발달을 이루는데, 벤트 프레스가 전신의 근력을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가스니에는 기껏해야 라이트급 정도였지만 강철 사슬을 끊어내는 것과 같이 훌륭한 근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사진에서 들고 있는 덤벨은 236 파운드가 나간다. 물론 그 누구도 벤트 프레스에서 체중 두 배의 무게를 성공하진 못했지만, 몇몇 리프터들은 스스로의 체중의 두 배와 매우 가까운 무게를 성공시켰다. 예를 들어 풀럼Pullum 125 파운드 체중에서 238파운드를 들어올렸다. 아틸라 교수는 스스로의 체중의 두 배가 되는 무게를 가지고 바닥 자세까지는 성공했지만 선 자세로 일어설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이 벤트 프레스를 내가 추천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훈련한다면, 당신 스스로 매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것이며, 세상 모든 종목 중 가장 과학적이고 매력적인 종목의 열렬한 추종자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How They Train: A Report from the World Championships by C. D. deBroglio (March, 1962) 의 번역

61년 빈 역도세계선수권 관련 기사 번역. 당시 세계 정상급 리프터들의 훈련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다. 당대의 역도는 현재의 역도와 룰 상 다른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현대의 훈련법과는 다른 훈련법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훈련에의 적용에 있어 효용은 떨어지겠으나, 역도 종목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이기에 번역하였다. 글이 결론 없이 끝나는 듯 할텐데, 사실 이 기사엔 2 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2 부의 경우 세계선수권 훈련장의 모습을 전하기 보다는 기사의 저자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작성한 체력 훈련 방법론을 나열하고 있기에 번역하지 않았다. 더불어 프레스, 스내치, 클린 앤 저크는 추상, 인상, 용상 등의 용어로  번역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처는 이하.

출처: http://ditillo2.blogspot.com/2010/05/how-they-train-report-from-world.html

---------------------------------------------------------------------------------------------------


참조: 이 기사는 “The AustralianWeightliftier”에서 발췌한 것으로,원래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도협의 Oehley 씨와 deBroglio 씨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다른 나라의 리프터들이 어떻게 훈련하는가에 대한 매우 유익한 기사로, Lifting News의 독자들이 얻어갈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사의 저자들은 세계 선수권 대회와 리프터들의 훈련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정상급 리프터들과의 만남을 그들의 훈련 방법론과 더불어 서술합니다.
 우리는 이 기사가 우리가 지금까지 출판한 모든 기사 중 가장 유익한 것이라 생각하며,이 기사를 읽은 뒤에는 여러분도 이에 동의할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9 14일 빈에 도착했다.우리는 15일 금요일에 이란과 콜롬비아의 선수단과 함께 훈련할 기회를 가졌다.이란 선수들은 매우 인상깊었고 진지했다.빈에는 큰 규모의 이란 유학생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이란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서른 명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콜롬비아 선수단은 라이트급과 미들급의 리프터 두 명만을 데려왔다.우리는 그들과 같은 바벨을 사용하였다. 이 무명의 콜롬비아 라이트급 Peres는 프레스에서 120KG을 들어올림으로써 우리의 평가 기준을 산산히 부쉈다.그리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이어졌다. 우리가 채 알아보지 못했던, 기껏해야 라이트 헤비급이나 미드 헤비급 정도일 이란 선수 두 명이 135KG 정도로 스내치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중 한 명은 140KG 스내치와 445KG 합계로 미드 헤비급에서 4 위를 차지한 Boromand였다.바로 다음 순간에 페더급의 Elmkhak는 너무나도 쉽게 135KG, 140KG, 145KG의 클린 앤 저크를 해냈다.이란 선수들이 보여준 무거운 무게에 대한 스스럼없음과 자신감은 날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이란 선수들은 빨라 보이지도, 강해 보이지도,심지어는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으나 우리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었다.
본 종목 훈련을 마친 후에,모든 이란 선수들은 캔버스 천으로 된 스트랩을 가지고, 우선은 넓은 그립으로, 그 다음엔 좁은 그립으로, 하이 풀을 하기 시작했다.그들이 사용한 스트랩은 1인치 너비의 캔버스 천으로 3 분의 1 인치 두께였으며, 24 인치 정도의 길이에, 가운데에 손을 넣을 수 있도록 고리 지어진 형태다.사용할 때에는 손을 고리에 넣은 상태에서, 끈의 양 끝을 바에 감고 약간 비트는 동작을 하는 것으로 바를 꽉 붙잡을 수 있다.바를 당길 때에,모든 부담은 손목에 가해지게 되고 손은 다치지 않는다. 이러한 방법은 리프터가 풀 동작을 싫어하게 되는 일 없이 정기적으로 훈련하게 해준다.나는 많은 리프터들이 손의 통증 때문에 무거운 하이 풀을 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무엇보다 내가 그러니까.난 여행에서 돌아온 즉시 스트랩을 만들어 사용해봤다. 하이 풀이 매우 즐거워지더라. 내 생각에 이 저렴한 스트랩이야말로 모든 리프터들이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하는 장비인 것 같다.

 이란 선수들은 경기 3 일 전까지도 하이 풀을 했다.페더급의 Elmkhah는 훈련을 끝내기 전에 90KG 5 개의 하이 스내치 풀을 했고, 6 번째 반복에서 스쿼트 스내치를 했다.이란 선수들은, 러시아 선수들과 다르게, 매우 열심히 훈련하는 듯 했다.이란 선수들은 웜업은 매우 열심히 수행했으나 유연성이나 민첩성과 같은 요소에는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러시아 선수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훈련장으로 직행했다.우리는 러시아 선수단이 도착하기 전에 도착했고,이란 선수들이 전날에 이어 다시 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란 선수들은 스쿼트와 랙 프레스 등을 훈련하고 있었다.그리고 러시아 선수단 전원이 도착했다.러시아 선수들은 훈련장 내에서 옷을 갈아입었고,우리는 Vlasov, Stepanov, Kurinov, Minaev, Lopatin 같은 선수들의 다부진 외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선수들은 모두 유연하고 부드러워 보였으며, 매우 날래 보였다.

 러시아 선수들은 모두 탄성이 있는 4 인치 너비의 벨트를 옷 아래에 착용하고 있었다(이란 선수들 역시 유사한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탄성 벨트는 가죽 벨트처럼 하부 등 근육을 받쳐주는 것이라 짐작한다.러시아 선수들은 도착하고 옷을 갈아입자 마자 웜업을 시작하였다.러시아 선수들은 나무 막대로 하는 역도 동작 연습,달리기, 체조,발레 댄스,높이 뛰기를 매일같이 하는 것으로 보였다.

 Vlasov 는 아마 가장 유연한 선수라 해도 될 것이다.때때로 그는 관절이 두 배로 달린 것처럼 보였다.그는 스스로의 목,손목,등의 모든 근육들을 차례대로 천천히 스트레칭했다. 이 과정은 우리가 러시아 선수단을 관찰하면서 얻은 정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러시아 선수들은 심지어 휴식일에도 웜업 과정은 항상 수행했기에 그렇다.

 Minaev, Vorobyev, Stogov 와 같은 선수들은 제법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고 유연하며 부상 하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깊었다.러시아 선수들은 20 분 정도의 웜엄 이후에 훈련을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 선수들은 훈련을 프레스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 선수들은 모든 선수가 각각 다른 종목으로 훈련을 시작하였다.Stogov Minaev 는 하이 스내치를 몇 세트인가 하고는 스내치 훈련을 시작했다. Kurinov는 하이 클린과 푸쉬 프레스를 매우 빠른 속도로 수행하였다. Vlasov 2 회 반복 세트의 무게를 172.5KG까지 올려가며 프레스를 훈련하였다.우리가 나중에 알아챈 바, Vlasov는 그 날 스내치 훈련은 물론 클린 훈련조차 할 계획이 없었기에 프레스만을 훈련한 것이었다.그는 프레스만을 수행한 뒤,하이 풀을 250KG까지 수행하고,인클라인 벤치 프레스와 스쿼트를 했다.그는 캔버스 천 스트랩을 사용해서 250KG를 가슴까지 끌어당길 수 있었다.어떤 러시아 선수도 프레스에서 높은 무게를 시도하지 않았고 스내치와 클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러시아 선수들은 다음 날 휴식을 취했고,월요일에 다시 훈련했다.수요일에 경기가 있는Stogov는 예외로,나무 막대를 가지고 자세 연습만을 했다.러시아 선수단의 코치는 훈련 중 선수들 옆에 있으면서 훈련에 사용된 무게들을 기록하고,자세를 관찰하고 있기만 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휴식일 아침에 물구나무서기,푸쉬업, 멀리 뛰기,바닥에 발을 붙인 상태에서의 딥스,나무 막대로 하는 역도 동작 연습과 같은 것을 30 분 정도 수행했다.훈련일 아침에는 나무 막대로 하는 역도 동작 연습만 15 분 정도 수행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리프터 중 하나는 Palinski였다.그는 매우 잘생기고 다부진 몸매를 지녔으며, 130kg 스내치와 175kg 클린 앤 저크를 쉽게 해냈다.그의 리프팅은 우리가 훈련장에서 본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었는데,그는 클린 앤 저크를 할 때에 8 인치 정도의 너비로만 스플릿 자세를 취했고,바를 목 뒤로 내린 뒤 한 번 더 그 무게를 저크하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수행한 모든 중량을 매우 성실히 일지에 기록했다.또 다른 인상 깊은 리프트는 폴란드의 라이트급 Baszanowski 110kg 하이 스내치 3 회였다.

 러시아 선수단의 두 번째 훈련일 계획은 프레스와 클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Minaev 110kg프레스를 1 3 세트 수행했다.Kurinov는 좋은 자세로 프레스를 140kg까지 소화해냈고, 클린은 170kg까지 했는데,정말 깔끔한 자세였다.그는 매우 좋은 상태로 보였다. Vorobyev는 클린을 175kg까지 했지만, 그저 그런 상태로 보였다.훈련을 마친 후 러시아 선수들은 다시금 15 분에서 20 분 정도를 점프,달리기,빠른 속도의 맨몸 스쿼트,나무 막대로 하는 역도 동작 연습과 같은 것을 수행하며 몸을 푸는 데에 사용했다.

 미국 선수단과 일본 선수단은 일요일에 도착했다(내 생각엔 일정이 조금 지연된 것 같았다.). Vinci, Berger, Kono는 모두 월요일에 훈련했고,그게 그들의 시합 전 마지막 훈련이었다.우리 일행은 교통체증 때문에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화요일에는 Jim George, Dick Zirk, Sid Henry가 훈련하였다. 미국 선수들의 훈련은 7 세트의 프레스, 7 세트의 스내치, 8 개의 클린 앤 저크로 이루어진,매우 전통적인 방식에 따르는 것이었다.미국 선수들은 웜업이나 자세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그들은 그저 계속 무거운 무게로 늘려 가기만 했고,많은 시도들을 실패하였다.이러한 방식은 러시아나 폴란드,일본 선수단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Jim George는 훈련 중 180kg를 가지고 클린 앤 저크에서 가망 없는 시도를 네 번 반복했고,시합에서는 단지 170kg을 성공시키는 데 그쳤다.미국 선수들은 훈련에 있어 과학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일행은 모스크바의 역도 기관에서 일하는 러시아의 역도 코치 Mekhanik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그는 선수권 대회에 직접적인 코칭을 위해 온 것이 아닌,단지 준비 과정을 감시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라이트급 왼 팔 스내치 세계 기록(87kg)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친절했으며, 우리 일행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내가 그에게 일반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묻자 그는 모든 선수들이 다르기에 일반적인 훈련 프로그램이란 불가능하다고 답해줬다.그는 먼저 내 훈련을 보고 내게 계획을 짜주겠다고 했다.내가 놀란 점은 이 대화 후 내가 플랫폼에서 리프트를 끝낼 때 마다 그가 내 옆에 있어줬다는 점이다.그는 내 리프트에서 여러 실수들을 지적해줬다.이를 테면 프레스할 때의 안 좋은 시작 자세나,바를 지탱하고 있을 때에 몸을 너무 세우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그는 프레스에서 몸을 뒤로 더 누이는 것과 어깨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줬다.스내치와 클린에서 그는 내 시작 자세의 단점들을 지적해줬는데,엉덩이가 충분히 낮게 위치하지 않은 것과 등이 너무 굽었다는 것이었다. 등이 너무 굽는다면, 중량이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바를 충분히 높게 당기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는 내가 깊은 스플릿 자세로 들어가기에는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지적했다.

 그는 내가 스내치와 클린을 우선적으로 수행하는 훈련일을 적어도 1 주에 2 일 정도 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더불어 그 날에는 앉아서 하는 프레스나 인클라인 프레스,또는 랙에서 하는 프레스로 훈련을 마치라고 조언해줬다.이는 러시아 선수들이나 이란 선수들,폴란드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훈련하는 방식과 유사했다.

 이러한 지점은 Louis Martin과의 대화에서 보다 분명해졌다.그의 훈련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이하 중량은 파운드)

월요일

프레스 : 145x3, 145x3, 220x2, 250x2, 270x2, 285x1, 300x1,1,1.
스내치 : 자세에 신경 쓰며 250까지 무게를 올린다.
클린 하이 풀 : 320 부터 410사이의 무게로 in 5 sets of 2.
프론트 스쿼트: 1, 2회 반복으로 여러 세트, 300-420.

수요일

스내치 : 1, 2회 반복으로 여러 세트를 하며 300까지 무게를 올린다.
인클라인 프레스 : 1, 2회 반복으로 6 세트, 280-350.
랙 저크 : 1회 씩, 300, 350, 380, 400, 420.

금요일

하이 클린 : 280까지, 그리고 클린으로 380-390까지, 10 세트 내에서.
푸쉬 프레스 : 랙에서, 340까지.

일요일

스쿼트 스내치 : 가슴 정도 위치에서 앉는 자세로 가는 연습.
백 스쿼트 : 더불어 스내치 하이 풀이나 벤지 프레스 같은 종목이 추가로 수행됨.

 훈련 계획에서 볼 수 있듯이, Louis는 서로 붙어있는 두 훈련일 간 같은 근육 무리를 사용하는 것을 꺼렸다.만약 그와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당신은 그가 스스로의 훈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그는 훈련에 매우 헌신적이었고,시합하러 나가기 전까지 계속 훈련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말해줬는데,그는 자신의 시합 전 열리는 밴텀급에서 라이트 헤비급까지의 모든 시합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다른 정상급 리프터들,그러니까 적어도 6위권 안에는 드는 리프터들 역시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그들은 그들 스스로 시합에 나가기 전에는 시합 모습을 보지 않았다.만약 시합을 관람한다면,밤 늦게까지 일어나있어야 하고, 여러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들을 봄으로써 스스로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사실 또 하나는 모든 러시아 선수들은 시합 전날에는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점이다.밴텀급 시합날에는 페더급 선수를, 페더급 시합날에는 라이트급 선수를 볼 수 없었다. Vorobyev는 예외였는데,그는 시합 몇 일 전부터 통 보이질 않았다.아마 그는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이며,보다 많은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시합날 그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체스를 두는 등 평상시와 같이 행동했다.많은 사람들이 미국인들과 필리핀인들을 제외한 모든 리프터들이 단백질이나 비타민 같은 보충식품을 먹지 않는 것에 흥미로워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전적으로 훈련과 휴식,일반식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다.아주 소수의 리프터들만이 시합 전에 흡연을 했다. Palinski는 예외였는데 그는 하루에 6~10 개비 정도의 궐련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