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8일 월요일

의식의 흐름 #10

 - 크로스핏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크로스핏을 좋아한다.


- 물론, 훈련 방법으로서 크로스핏을 좋아하진 않는다. 훈련 방법으로서의 크로스핏은 너무 멍청하니까.


- 내가 크로스핏에 대해 좋아하는 점은 피트니스 브랜드와 그에 따른 문화의 총체로서의 크로스핏이 쇠질 전반에 미친 영향력이다.


- 이를 다루기 전에, 우선 훈련 방법으로서의 크로스핏이 멍청하다는 점을 더 이야기해보자, 저 위의 문장을 보고 분노로 눈이 돌아간 크로스피터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 매일 무작위의 WOD를 진행하는 것으로는 근육질이 되지도, 힘이 세지지도, 빨라지지도 못 한다. 모든 체력 요소들은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결국 특화된 훈련을 통해서만 향상시킬 수 있으니까. 만약 WOD만으로 이를 이루었다고 이야기하는 코치가 있다면, 훈련에 대해서든, 약물 프로토콜에 대해서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 크로스핏의 가장 모순적인 부분은, 크로스핏 시합에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크로스핏 방식의, 여러 체력 요소들을 무작위로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체력 요소들을 블록 단위로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시합에서 너무 여러 체력을 요구하니, 다른 종목들보다 더 복잡하고 정치한 블록 주기화가 필요해진다.


- 실제 상위권 크로스피터들의 훈련은 연 단위의 복잡한 블록 주기화가 필연적이다. 역도나 파워리프팅 같이 특정 체력 요소만이 필요한 종목들보다도 훨씬 복잡한 수준의 주기화가 말이다.


- 그리고 당연히 (이 시리즈를 지금까지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보다 복잡한 수준의 주기화는 당연히 보다 복잡한 수준의 약물 프로토콜을 필요로 한다. 


- 그냥,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당신이 파워리프터라고 하자.


- 당신이 약물 코스를 짤 때에 신경 써야 하는 목표는 단 세 가지에 불과하다. 1) 스쾃,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기록 향상 – 그러니까 1rm으로 표현되는 최대 근력의 향상, 2) 도핑 테스트 회피, 3) 스스로의 건강.


- 크로스피터의 경우는 어떠한가? 크로스핏의 맥락에서 위의 1)을 생각해보라! 스내치, 클린 앤 저크 등을 위한 파워와 스피드-스트렝스, 스쾃, 프레스, 데드리프트를 위한 근력, 고반복을 위한 근지구력, 다양한 이벤트를 위한 심폐지구력 등, 너무나 많은 체력 요소들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도핑 테스트까지 피해야 한다!


- 상위권 크로스핏이야말로 궁극의 두뇌전이며, 극한의 과학적 훈련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 개인적인 지식은 이에 미치지 못하기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느슨한 추측만 가능할 뿐이지만 말이다.


- 참고로, 사족이 될 수 있으나, 이미 이 시리즈를 읽어온 독자라면 쇠질에서의 ‘과학적 훈련법’이라는 것은 약물을 사용할 때에나 적용될 수 있는 말임을 알 것이다.


- 이제, 크로스핏이 쇠질에 미친, 그리고 앞으로 미칠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기존에 미친 긍정적 영향의 핵심은 바로 중산층 출신 여성들이 가졌던 쇠질과 근육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는 것이다.


- 당신이 역도를 하든 파워리프팅을 하든, 심지어 그냥 동네 헬스장을 다니든 관계 없이, 위에 적은 것이 쇠질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크로스핏이 미친 가장 긍정적인 영향임을 장담할 수 있다.


- 중산층 출신 여성들이 쇠질에 대해 거부감이 적어져, 주요 소비자 집단으로 올라왔기에, 이들의 소비력을 기초로 비로소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쇠질 인프라가 널리, 잘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 놀랍게도 중산층 출신 여성들은 그냥 쇳덩이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단백질 많이 먹으면 되는 일에도 ‘PT’니 ‘GX’니 ‘수업’이니 하는 명목 하에 돈을 막 써주니 말이다. 실로 감사한 일이다.


- 크로스핏이 앞으로 미칠 긍정적 영향 역시 이와 연관되어 있다.


-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나, 나는 크로스핏이 향후 아나볼릭 약품들의사용이 보다 널리 퍼지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 우선, 위에 말한 대로 크로스핏은 중산층 출신 여성들을 쇠질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 이는, 크로스핏이라는 브랜드 하에 중산층, 또는 그 이상 출신의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게 한다. 피트니스 사업은 결국 여성 회원들을 유치하면 자연스레 남성 회원들을 유치하게 되는 것이다.


- 그리고, 쇠질이라는 것은 계속 하다 보면 더 잘 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크로스핏 덕에 중산층 이상 출신 사람들, 특히 중산층 이상 출신 여성들이 아나볼릭 약물 사용에 익숙해질 것이란 뜻이다.


- 상위권 크로스피터들을 본 적이 있는가? 다들 아나볼릭 제제들을 훈련 중 사용하고 있음이 자명하지 않던가?


- 약간은 사족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의 대마초 합법화가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를 생각해보라.


-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서, 결국 사용자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지위까지 올라가면, 이전엔 마약으로 분류되던 것도 합법화될 수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코카인은?’ 코카인은 부자 백인 남성이 사용하는 이미지이지 않나? 반면 대마초는 미국 흑인 커뮤니티와 연관된 이미지가 강하다.


- 사실, 이건 내 개인적인(그래서 당연히 약간은 냉소적인) 생각이지만, 보디빌딩이나 쇠질이 철저히 미국 흑인 중심의 하위 문화였다면, 우린 이미 스테로이드 등 아나볼릭 제제들의 한정적인 합법화를 목도했을지도 모른다. 대마초처럼 말이다. 하하.


- 어쨌든, 다시 크로스핏으로 돌아와서,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다. 중산층의 유입이 크로스핏의 장점인데, 그러면 네가 위에 쓴 코카인 관련 얘기와 비슷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주류의 문화니까 동력을 받을 수 없다고 말이다.


- 다시 봐라. 중산층 출신 ‘여성’이라고 적었다. 리버럴들이 가장 연대하고 싶어하는 집단이란 말이다.


- 사실 여성들이 테스토스테론이나 스테로이드, 또는 그 외에 다른 아나볼릭 제제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지지만 약간 늘어나도(거부감이 약간 더 줄어들어도), 아나볼릭 제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터부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나의 (약간 망상 같은) 예측이다.


- 그리고 크로스핏을 통해 여성들은 아나볼릭 제제 사용 관련해서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위권 여성 크로스피터들을 보며 말이다.


- 이에 더해, 여성들이 약간의 테스토스테론이나 그 외 아나볼릭 제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개선을 느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 근육 증가, 근력 증가는 물론, 우울감 감소, 운동 기술 등의 증가를 경험할 것이고, 이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겐 큰 이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시스젠더 남성이 이런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엔 허락되지 않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하하.


- 상위권 크로스피터들이 약물 사용을 한다는 주장에 분노하는 크로스핏 팬보이들이 있을 것이기에 밝히는 것이나, 나는 충분한 보상이 걸려있는 모든 스포츠의 최상위권에서는 약물 사용이 필수일 것이라고 생각함을 밝힌다.


- 그리고, 한 가지 흔히 퍼져 있는 오해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자면, 유전자가 따라주는 경우 약물을 상대적으로 적게 쓰는 것이지, 일정한 퍼포먼스(그러니까 상위권에 요구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절대적인 약물 양은 정해져 있으며, 이것이 전혀 적은 양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 이를 테면, 나는 Mr. Olympia 오픈 체급의 상위권 보디빌더들이 Mr. Olympia에 참가조차 하지 못 하는 오픈 프로 보디빌더들보다는 약물을 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순수하게 오픈 체급의 프로 보디빌더가 써야만 하는 절대적인 약물 양은 설령 최소치라고 해도 매우 고용량일 것이라 생각한다.


- 약간의 구글링과 웹서핑만으로, Chaves가 보디빌딩이나 다른 피지크 중심 스포츠의 프로 수준에서 추천하는 오프 시즌 용량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물론 점차적으로 용량을 올려 가는 것이지만, 오프 시즌 코스 막바지에 추천되는 용량은 체중 1kg 당 2mg의 테스토스테론과, 이에 더해 체중 1kg 당 10mg의 마스테론이나 프리모볼란이다. 체중 1kg 당 12mg의 테스토스테론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이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수준이란 말이다.


- 이에 더해 성장호르몬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며, 탄수 섭취량에 맞추어 메트포르민 섭취도 권장하고 있다.


- 다시 말하지만 저것이 일반적인 추천 용량이며, 모든 프로 레벨의 피지크 경기 참가자들은 저 정도 용량을 오프 시즌에 사용하고 있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시즌엔 선수 개개인의 필요에 맞춘 약물 코스를 더 공격적으로 돌릴 것이라고도 추정해볼 수 있다.


- 아울러 피지크 경기가 아닌, 다른 스포츠의 경우에도 상위권에서 경쟁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물 양이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 너무 ‘로무새’인 것 아니냐고?


- 인간의 유전자 풀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 그리고 우리 모두 60년대~70년대에는 모든 운동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합법이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으니까.


- 그리고 우리 모두 현대의 운동 선수들이 60~70년대 운동 선수들과 비슷하거나 나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음을 안다.


- 이게 정말 훈련법과 영양 섭취에서의 개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 이번 글에서는 운동 얘기를 너무 덜 한 것 같지만,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이니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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