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lan Thrall이라는 유튜버가 있다.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운동 동작 설명 비디오들로 유명해진 유튜버로, 본인이 가정을 꾸린 전후로는 여러 긍정적인 메시지도 주기에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유튜버와 관련해 특이한 점 중 하나는,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리프팅 기록이다. 심지어 Thrall은 전업 유튜버 겸 체육관 주인인 상태에서, 무려 Barbell Medicine 팀의 코칭을 받고도 파워리프팅에서 DOTS 390대 토탈만을 기록했다. 단순히 ‘유전자’의 문제로 취급해 넘길 수도 있겠지만, Thrall은 미국 해병대를 전역해, 나름 신체 활동에 자신이 있기에 체육관까지 차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충분한 자원과 정보를 가지고도 어째서 변변치 않은 기록을 낸 것일까?
Thrall은 기존에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 중반의 여느 ‘스트렝스’ 훈련자들처럼 Starting Strength와 관련된 프로그램들, 5/3/1, 저거넛 메쏘드, 수퍼 스쾃 같은 프로그램들을 해왔었다. 혹시 그가 기존에 해왔던 운동들의 효과가 남아, 1RM 기록을 방해한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
나는 2021년 초에 Jim Wendler의 5/3/1 Building the Monolith 프로그램을 따른 적이 있었다. 일단 프로그램을 따른다고 하면 최대한 처방된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식단은 물론 컨디셔닝까지 모두 Wendler가 적은 대로 진행하려 노력했다. 하루에 12개 계란을 먹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700g 이상을 먹었으며, 리프팅 세션이 없는 날 4일 중 적어도 3일은 배낭을 메고 걷거나, 가벼운 등산을 했다.
운동도 Wendler가 시킨 그대로 진행했다. 첫째 날 턱걸이의 경우 세트 사이사이에 5회씩 해서 총 100회를 채워 나갔으며, 딥스도 10~15회씩 나눠 총 100~140회를 진행했다. 셋째 날에 있는 20회 백 스쾃은 SSB를 써서 항상 횟수를 채웠다.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는가? BtM 6주 뒤 디로딩을 가지고, 3주 동안 운동한 뒤에 데드리프트 PR은 세웠지만, 스쾃과 벤치 프레스 기록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느낌만 따지면 스쾃과 벤치 프레스의 경우 오히려 기록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웃긴 것은, Wendler가 요구한 식단을 따르며, 나름 칼로리 사이클링까지 더해 적당한 칼로리 서플러스를 유지했음에도, 외형적으로 나아진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몸에 근육통은 있었지만, 그게 의미 있는 근육 증가로 이어졌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사실 5/3/1 Building the Monolith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처방하는 운동들 중 상당 부분은 (적어도 1RM 근력 증가나 근비대에 있어) 그저 정크 볼륨에 불과한 것 아닐까?
#3
굳이 역사적인 접근을 해보자면, 파워리프팅 종목(스쾃,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에 프레스를 더한, 바벨 리프트만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스트렝스’ 훈련의 유행은 사실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 초반~중반의 특징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 이전 시기에 트랙 앤 필드나 미식 축구 근력 운동에는 항상 역도 동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Bill Starr는 스쾃, 벤치 프레스, 파워 클린을 핵심 동작들로 사용했다. Dan John은 Dave Daivs를 인용하며, 빠른 리프트와 느린 리프트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투척 경기 선수의 근력 훈련에 필수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애초에, 최초의 미식 축구 근력 코치 중 하나였던 Clyde Emrich는 미국 역도 대표팀에도 여러 번 참가할 정도의 리프터였다.
5/3/1이나 저거넛 메소드를 보면, 저자들이 각각 미식 축구와 트랙 앤 필드 경험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역도 동작이나 빠른 리프트를 마지 못해 프로그램에 추가할 뿐이다. 그나마도 실제 저 프로그램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아예 관심조차 없고 말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 코로나 시기를 전후해서는 ‘스트렝스’ 훈련과 대비되는, 진정으로 파워리프팅에 특화된 훈련 방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파워리프팅 기록들도 함께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Steve DeNovi가 5/3/1을 언급할 때마다, 얼마나 비하하고 빈정대는 투로 하는지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
결국 이 ‘스트렝스’ 훈련이라는 것은, 그 이전의 근력 훈련 전통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그렇다고 주로 다루는 종목들(파워리프팅 종목 세 가지와 프레스)에 딱히 특화도 되어 있지 않은, 이상한 훈련 방식인 것 같다.
#4
핏플루언서의 예시를 하나 더 들자면, Dr. Israetel이 있다. 그는 한때 JTS의 플랫폼을 통해, 그리고 그 이후엔 자신의 회사인 Renaissance Periodization의 플랫폼을 통해 2010년대에 블록 주기화를 유행시켰다. 그의 훈련 역사를 보면,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블록 주기화를 통해 ‘스트렝스’ 훈련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파워리프팅에 특화된 것도 아닌, 바벨을 사용한 프레스, 벤치 프레스, 인클라인 벤치 프레스, 백 스쾃, 데드리프트, 벤트 오버 로우 기록에 집중한 훈련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핏플루언서로 성공하여 얻은 엄청난 부와 네트워크, 이에 더해 프로 보디빌더들 이상의 약물을 사용하고도 훌륭한 보디빌더가 되지 못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일임에도 응원(!)까지 했기에, 부끄러운 일이지만 약간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꼈다. 응원하던 축구팀이 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Israetel의 사례 역시 2010년대까지 유행했던 ‘스트렝스’ 훈련의 악영향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5
개인적인 경험을 되돌아보아도, BtM을 진행했던 경험에 더해, ‘스트렝스’ 훈련자들처럼 운동했던 기간들에 딱히 무언가가(근력이든, 근육량이든) 더 나아졌던 것 같지 않다. 이에 더해, ‘스트렝스’ 훈련이 장기적으로도 오히려 상방을 낮춘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운동을 막 시작한 초보자 시절 6개월 정도 할 때 외에 소위 ‘스트렝스’ 훈련 기간은 상당 부분 정체기가 되는 것 아닌지, 그리고 그 악역향이 장기적으로 남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검증할 방법 따윈 없고, 근사한 가설조차 세우기 어렵지만 말이다.
그저, 정크 볼륨이 많아, 이로 인한 피로는 큰데,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훈련 효과는 적어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정크 볼륨’에 익숙해지는 것이 근력, 근비대에 긍정적 영향이 적은 다른 적응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트렝스’ 훈련 과정에서 AMRAP이나 지나친 고반복 훈련을 여러 세트 수행하는 것이 특정 리프트 동작 자세를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스트렝스’ 훈련이 파워리프팅이나 보디빌딩 등에서의 도피처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기준이 있고, 이에 맞춘 결과를 내기 위해 최적화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못 하거나, 하고 싶지 않기에, ‘스트렝스’ 훈련 같이 애매모호한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들이 ‘스트렝스’ 훈련을 향유하는 이들 중 주류이기에, 그 결과물이 변변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6
물론, ‘스트렝스’ 훈련이 아예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실제 다른 스포츠를 하는 사람이 오프 시즌에 ‘스트렝스’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칭찬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Wendler의 BtM 같은 프로그램은 애초에 고등학교 풋볼 선수들의 오프 시즌 프로그램이니 말이다. Dan John의 Mass Made Simple 같은 프로그램도 그렇다. 만약 누군가가 트랙 앤 필드, 풋볼, 야구 기타 등등 스포츠를 하며 오프 시즌에 ‘스트렝스’ 훈련을 한다면, 프로그램의 의도대로 하는 것이 될 테다. 물론, 이 경우에는 쇠질만을 할 때와는 매우 다른 마음가짐으로 프로그램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TM (Training Max)를 가지고 몇 회를 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을 때 10회 이상을 할 수 있다든가 말이다(Wendler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관련해 직접 든 예시다 – 사실 어린이, 청소년들은 성인에 비해 해당기능Glycolytic Capacity이든, 속근 동원이든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횟수가 강제되는 측면도 있긴 하다).
초보자의 경우,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시험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렝스’ 훈련을 하면서도 스쾃,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기록이 놀라울 정도로 오른다면, 파워리프팅에 재능이 있는 것이다. 바벨 복합 관절 운동만 꾸준히 하는데 몰라보게 근육이 붙고, 붙은 근육의 양 대비 몸이 더 좋아보인다면, 보디빌딩에 재능이 있는 것이다. 초보자 프로그램으로서 ‘스트렝스’ 훈련이 가지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뭐,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서는 ‘스트렝스’ 훈련이라는 미명 하에 일종의 소속감이라 해야 할지, 무언가를 느끼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니 별 할 말은 없다.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은 항상 하지만, 뭐 어쩌겠나.
스트렝스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암랩과 고강도의 컨디셔닝
답글삭제파워리프팅 프로그램에서 3대 만을 위한 근비대 보조 악세사리나 3대 변형이 스트렝스 훈련과 파워리프팅 프로그램의 차이라고 잠깐 생각해 봤을때 떠오르는 것들이네요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정크볼륨의 존재 때문에 과연 스트렝스 훈련이 실제 스포츠의 기록향상에 제대로 도움이 되는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파워리프팅 처럼 훈련 자체의 기록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게 실제 스포츠 기록 향상에 더 도움이 될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는데
뭐 체육 전공 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잘 하시겠죠?
저는 살면서 ‘스트렝스’ 훈련 하신다는 분들이 다른 스포츠도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럼 그냥 파워리프팅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항상 생각합니다. ‘스트렝스’ 훈련이라는 미명 하에 유사-파워리프팅을 하지 말고 말이죠.
삭제말씀주신 것처럼 딱 저 정도 생각이나 하는 거고 어려운 건 전공자들이 알아서 하겠죠.
저도 신체 단련에 꾸준히 관심이 있어 왔고 어쩌다 보니 쇠질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이게 결국 본인이 잘 다룰 수 있고 그로 인해서 관리하기 편한 수단을 갖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 수단에 집착함으로써 애매모호해 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글 잘 보고 갑니다!
답글삭제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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