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요일

최근 들은 음악들 단평 (8)

1. Darkthrone – It Beckons Us All…… / Eternal Hails……

 개인적으로는 Burzum을 좋아하기는 하나, 노르웨이 블랙 메탈의 최고봉을 뽑을 때엔 결국 Darkthrone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노르웨이 블랙 메탈로 묶이는 밴드들이 90년대에 앨범 한 두 장에서 음악적으로 정점을 찍고 별 볼일 없어졌던 반면(Enslaved 같이 ‘독특한’ 방향으로 간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니다), Darkthrone은 90년대에 블랙 메탈 자체를 규정할 만한 앨범을 낸 뒤에도,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메탈을 계속 해왔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Darkthrone이 A Blaze in the Northern Sky나 Under a Funeral Moon보다 나은 작품을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앨범에서 그들은 Celtic Frost와 Bathory에의 헌사와 동경을 보여줌과 동시에, 악독하고 뒤틀린 작풍을 통해, 독자적 장르로의 신지평을 열었으니 말이다. 이들이 어떤 음악을 하든, 저 두 앨범의 역사적 아우라를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Darkthrone은 보다 ‘올드스쿨’하게 느껴질 만한 메탈을 하며, 리프나 작곡만을 놓고 보면, 90년대 초반 그들의 작품과 비교해도 품질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개인적인 취향에는 2007년 F.O.A.D.를 포함해 세 개의 앨범 동안 이어진 펑크 스타일의 음악과, 2019년 Old Star 이후 이어지는, 헤비 메탈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앨범 내에서 일관성이 있는 작품들이 매우 좋게 들린다.

 2024년작인 It Beckons Us All……은 올드스쿨 메탈에 대한 Darkthrone의 탐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앨범이다. 리프들은 크게 복잡하지 않지만, 듣기 좋다. 곡 구조도 크게 복잡하지 않지만, 지루함 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인 The Lone Pines of the Lost Planet 같은 곡은 초기 Black Sabbath가 생각날 정도로 낡았다(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의 독자가 Darkthrone의 2024년작을 즐겁게 들었다면, 2021년작인 Eternal Hails……도 들어보길 바란다. It Beckons Us All……이 옛 메탈들의 리프에 심취해 블랙 메탈인지, 데스 메탈인지 모호한 상태라면, 2021년작은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블랙 메탈에 충실하다. 심지어 Burzum이나 Mayhem의 전성기를 들이밀어도, Burzum의 Hvis Lyset Tar Oss 앨범을 제외하면, Eternal Hails……보다 좋은 블랙 메탈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Darkthrone과 이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폐이긴 하다. Burzum과 Mayhem은 Under a Funeral Moon 한 장조차 이길 수 없다. 하물며 2020년대에 들어서도 언제나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드는 Darkthrone에 비하면, Burzum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밴드처럼 느껴진다. Burzum NEW라니!



2. Grand Belial’s Key – Mocking the Philanthropist

 Darkthrone의 최근 작품들에 대해 과하게 찬양한 것 같아, 올드스쿨 헤비 메탈, 스래시 메탈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블랙 메탈의 조류가 이미 옛날부터 있었던 것임을 지적해야 하겠다. USBM의 고전, Grand Belial’s Key의 1997년작 Mocking the Philanthropist가 그것이다. GBK는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가사로 악명 높으며, 응당 그럴 만한 것이, 다름 아닌 그 Arghoslent의 Gelal Necrosodomy가 관여하고 있는 밴드이기 때문이다. 

 Arghoslent와의 관계를 알고 이 밴드를 접하는 경우에, 사실 GBK의 음악은 기대한대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적인 헤비 메탈, 스래시 메탈의 영향력이 충분히 느껴지며, 리프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하다. 피치 하모닉스나, 스래시 브레이크, 키보드 등의 사용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메탈 덕후들이 좋아하는 요소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들으면서 즐거웠던 것은, 중간중간 심지어 Mercyful Fate처럼 느껴지는 리프들까지 능청스럽게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곡 전반은 블랙 메탈로 느껴질 정도로 불경스럽고 모독적이다. 모독적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리듬감이 느껴지는 리프들이 많다는 것도 좋다.

 사족이지만, 정작 십대 시절에는 Profanatica는 들었어도, GBK는 듣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Prfofanatica보다 GBK가 더 좋게 들리는 것을 보니 늙긴 한 것 같다.



3. Sabbat – The Dwelling

 GBK의 사례에서 보이듯, 사실 노르웨이 블랙 메탈로 대표되는 소위 ‘세컨드 웨이브 블랙메탈’과는 완전 별개로 올드스쿨 헤비 메탈과 스래시 메탈의 영향 하에 자라난 블랙 메탈 밴드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일본 출신인 메탈의 신 Gezol의 Sabbat도 그러한 밴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들의 첫 앨범인 Envenom이 1991년에 나왔으며, 그 후 1994년 Fetishism까지 1년에 한 번씩 앨범을 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90년대 블랙 메탈이 유럽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Sabbat은 90년대 초중반의 블랙/스래시 질주 끝에 1996년 The Dwelling과 1999년 Karisma 만을 내고 90년대를 마무리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작품이 그야말로 기묘함이 폭발하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Karisma는 정말 극단적으로 일본풍의 독특한 메탈을 보여주며, The Dwelling은… 거의 60분에 달하는 곡 한 곡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The Dwelling 역시 GBK의 앨범처럼 Mercyful Fate를 연상시킨다. Satan’s Fall 같은 곡을 극단화시킨 듯한 느낌을 아련하게 받는 것이다. 하지만 곡 자체도 길고, Sabbat은 Sabbat이기에 보다 다채롭다. 솔로잉들도 매우 좋다. 

 물론, 듣다 보면 굳이 이렇게 한 곡을 길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긴 시간을 정당화할 만한 발전이나 전개가 보인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이니 말이다(언제나 그렇듯, 긴 메탈 곡들에 Hvis Lyset Tar Oss 수준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러나 충분히 즐거운 경험인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한 시간이 지루하진 않다. 메탈의 신이 괜히 메탈의 신인 것이 아니다.



4. Alien Fucker – Magical Suffering

 이스라엘의 일렉트로닉 고어그라인드(?) 밴드인 Alien Fucker는 찾아보니 무려 2013년부터 10년도 넘게 ‘음악이 우습다’ 라고 요약될 만한 짓을 해왔던 밴드다. 사실 아예 모르는 밴드였는데, 스포티파이가 무작위로 추천해줘서 듣게 되었다.

 장르명에 어울리게도, 천박한 주제만 골라 짧고 단순한 곡만 만드는 밴드이며, 의외(?)로 생각 없이 듣기에 좋았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쓴다고 해야 하나…. 이거 기타로만 연주하면 그냥 요즘 데스코어 밴드들 음악하고 별 차이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냥 유행하는 멜로디 좀 따와서 만든 거라고 봐야 하나? ‘Pain Remains!’냐?


2024년 5월 2일 목요일

최근 들은 음악들 단평 (7)

 1. Arghoslent – Resuscitation of the Revanchists

 

 이전에 Arghoslent 카피 밴드에 대한 글을 쓰며, 이 앨범에 대해 혹평한 적이 있는데, 큰 잘못이었다. 어찌되었든, 사람이 첫인상만으로 무언가를 평가하면 틀릴 가능성이 제법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흔히 Arghoslent의 음악을 생각하면 Incorrigible Bigotry나 Hornets of the Pogrom, 이 두 앨범에서의 스타일을 우선 떠올리게 되니, 이 2023년 신작을 들었을 때의 첫인상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있다. 실제 곡의 구성이나 리프를 떠나, 프로덕션과 템포에서 일단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이 새 앨범에서 Arghoslent는 기존에 그들의 특장점이라 할 것을 다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데스 메탈, 스래시 메탈, 그리고 더 고전적인 헤비 메탈의 특징들을 갖춘 여러 리프들이 나오며, 블루 그래스 풍의 멜로디 감각도 건재하다. 가사도 당연히 (안 좋은 방향으로) 건재할 것으로 예상되나, 아직 제대로 찾아보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의 인종주의가 정말 진지한 것인지, 아니면 흔히 익스트림 메탈 밴드들이 보여주는 소위 ‘기믹’과 같은 것인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이다. 인터뷰들을 찾아보라, Geral Necrosodomy는 심지어 버락 오바마에게 투표했다(!).


2. House of Atreus – Orations

  

 Arghoslent 카피 밴드로 유명한 House of Atreus도 2024년 EP를 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위에 적은 앨범과 비교해서 듣게 되었다.

 첫 두 곡은 Arghoslent를 나름 성공적으로 따라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곡 내에서 훨씬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려 하려 하는 것에 비해, 정작 원판에 비해 훅이라 할지, 어떤 정서라고 할지,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적당히 Arghoslent처럼 들리는 곡을 쓰고 템포만 올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머지 곡은 전반적으로 보다 느린 템포의 곡들인데,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물론 Running Wild 커버곡은 좋다. 아니, 사실 이 EP에서 커버곡이 제일 좋다.


3. Summon – Fallen

 Summon은 1991년에 결성된 미국 미시간 주 출신의 데스 메탈 밴드이다. 현재는 해체한 상태로, Fallen은 2005년에 나온, 이들의 마지막 풀렝쓰이다.

 메탈 아카이브 장르 구분이 데스/블랙/스래시 메탈로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데스 메탈이지만 때때로 스래시 리프, 가끔은 스피드 메탈로 들릴 법한 리프들도 튀어나온다. Loud as Hell, Fast as Fuck 같은 곡은 아예 그냥 스피드 메탈 곡이다. 개별 곡들의 길이도 길지 않고, 앨범 전체도 35분이 안 되는 수준이다. 듣다 보면 그냥 Impiety의 Skullfucking Armageddon을 한번 더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뭔가 좀 다른 것 같고 그렇다.


4. Critical Defiance – The Search Won’t Fall

 

 Critical Defiance는 2010년에 결성된 칠레의 스래시 메탈 밴드이다. 유튜브, 그리고 그 이후 소셜 미디어의 활성화가 여러 하위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메탈에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익스트림 메탈의 경우, 밴드들의 질과 양이 대폭 좋아지고 늘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때처럼, 대표적인 밴드 몇몇만 들으면 대충 해당 장르에서 훌륭한 곡들을 거의 다 듣게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본다.

 왜 이리 장황하게 썼는가 하니, 이 앨범은 21세기에 결성된 이들의 세 번째 풀렝쓰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랍도록 완벽한 스래시 메탈 앨범이기 때문이다. 다채롭고 공격적인 리프들, 적재적소에서 청자를 짓누르는 스래시 브레이크, 심지어 모던한 밴드답게 블랙메탈처럼 들리는 리프도 자유자재다(Full Paranoia를 들어보라). 취미로 시간을 허비하기에 참으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5. NewJeans – New Jeans

 

 ‘들어올 거면 나한테 그냥 맞다이로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