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0일 화요일

잡문 #9 - 김태현

 쇠질을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때 대한민국의 가장 멋진 점 중 하나는, 쇠질과 관련 스포츠에 대한민국 출신, 또는 한국계 인물들이 남긴 족적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역도와 파워리프팅 종목에서 대한민국 출신, 또는 한국계이면서 국제 대회 수준의 기록을 남긴 이들이 많으며, 초창기 프로레슬링, 격투기 등 쇠질과 느슨한 연관이 있는 종목들에서도 역도산, 최배달 같이 한국계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김태현이다. 유감스럽게도 무제한급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기에 올림픽 메달은 없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무려 용상 260kg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범위에서 국제 시합에서 260kg 이상 용상을 성공한 리프터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우선, 최초로 260kg의 벽을 깬 것은 우크라이나(당시에는 소련) 출신의 Sergey Didyk다. 1983년 소련 내 시합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소련은 여러 국가의 연합체이니 국제 시합 취급이었다.

 Didyk의 기록을 전후하여, 260kg 이상의 용상은 한동안 소련 무제한급 선수들만의 영역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Anatoly Pisarenko는 언제나 자신의 용상 기록을 무기 삼아 시합을 이겨나간 선수였고, 최고 기록으로 265kg 용상을 기록했다. 벨라루스 출신의, 이후 두 번이나 올림픽 챔피언이 되는 Alexander Kurlovich도 260kg 이상 용상을 기록했다. 역시 벨라루스 출신에, 1980년 올림픽 -110kg 챔피언이었던 Leonid Taranenko는 1988년 266kg 용상 세계 기록을 세웠었다.

 소련 붕괴 이후를 보면, 러시아 출신의 1996년 올림픽 무제한급 챔피언 Andrei Chemerikin이 260kg 이상의 용상을 성공시켰었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독일의 Ronny Weller도 260kg 용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초중반 사실상 역도 무제한급을 지배했던 이란의 Hossein Rezazadeh가 260kg 이상의 용상을 여러 번 성공 시켰었다.

 그 이후에도 260kg 이상 용상을 성공 시킨 이는 많지 않다. 러시아의 Aleksey Lovchev가 264kg 용상을 성공 시켰으나, 이후 도핑 적발로 기록이 취소 되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역도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조지아의 Lasha Talakhadze가 무려 267kg 용상을 성공시킨 바 있다.

 위에 적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260kg 이상 용상을 성공시킨 리프터들은 구소련 출신, 또는 동독 출신이거나, 적어도 소련에 속했던 국가 출신, 또는 이란 출신이다(이는 여러가지를 암시한다). 중국 출신 리프터들은 단 한 명도 260kg 이상 용상을 시합에서 성공시킨 적이 없고, 불가리아 출신 리프터들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불가리아 출신 중 260kg 용상에 가장 가까웠던 이는 카타르의 Jaber Saeed Salem, 개명 전 이름 Yani Marchokov이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서 대한민국의 김태현이 260kg 용상을, 그것도 올림픽 무대에서 성공시켰다는 것을 상기해보라. 아울러, 김태현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기록한 460kg 합계는 2004년 올림픽이라면 2등, 2008년 올림픽이었다면 3등, 2012년이었다면 1등, 2016년, 2020년에도 2등이 가능한 기록이었다.

 물론, 김태현은 무려 세 번이나 아시안 게임 챔피언을 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입상했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무적으로, 무려 16년 연속 전국체전 우승을 했다. 심지어, 선수 생활 중 지병으로 당뇨까지 앓아가며 말이다.

 실로 영웅적이라고 하겠다.


참고

http://www.chidlovski.net/liftup/

http://www.weightlifting.or.kr/2015/about/about_06.php

http://www.weightlifting.or.kr/2015/board/content.php?kind=7&no=1124


2024년 7월 18일 목요일

잡문 #8 - 단 하나의 하체 운동만을 골라야 한다면?

 단 하나의 하체 운동만을 골라야 한다면,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

 흔히 나오는 질문이지만, 가장 멍청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애초에, 단 하나의 운동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흔하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쇠질을 하는 사람들은 특정 동작, 특정 종목에 소속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으니, 꼭 나오고야 마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저 질문에 흔히 나오는 답변은 바벨 백 스쾃이다. 그간 사람들이 이 운동에 붙여놓은 ‘모든 운동의 왕’이니 뭐니 하는 권위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보디빌딩을 하든, 역도를 하든, 파워리프팅을 하든 바벨 백 스쾃을 하게 되니 이 운동이 필수라는 식의 생각만 서로 오고 가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디빌딩, 역도, 파워리프팅을 하지 않는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이에 더해, 많은 이들은 결국 미용과 건강을 위해 쇠질을 한다. 그저 몸매가 좋아지고, 기분이 좋고, 몸이 더 잘 움직이는 것 같으면(‘펑셔널’하게 느껴지면) 만족한다는 말이다. 헬스장에 갔을 때, 상체 근육이야 미용을 위해 이것저것 여러 운동을 해야 하겠지만, 하체 운동은 적당히, 조금 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경우에 헬스장에서 할 만한, 단 하나의 하체 운동을 고르면 무엇이 될까? 내 생각엔 힙 쓰러스트, 특히 머신으로 하는 힙 쓰러스트가 될 것 같다. 해머 스트렝스의 글루트 드라이브 같은 머신 말이다.

 우선, 배우기 쉽다. 머신 사용법을 주의 깊게 읽고, 브레이싱을 해서 허리를 과신전하지 않는 법만 익히면 누구든 바로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머신들은 실패하는 경우에도 안전하게 놓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기까지 하다. 프리웨이트나 스미스 머신으로 힙 쓰러스트를 하는 경우처럼 번거로운 준비도 필요 없다. 실로 사용자 친화적이다.

 이에 더해, 힙 쓰러스트는 고관절을 접었다 펴는 동작이니 당연하게도 둔근의 근비대를 일으키며, 고관절을 펴는 힘을 키워준다. 사실 ‘펑셔널 스트렝스’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고관절을 펴는 힘 아니던가? 그네들이 스쾃이든 데드리프트든 케틀벨 스윙이든 찬양할 때, 둔근을 길러준다는 부분을 가장 칭찬하지 않던가?

 둔근만 길러서 무슨 소용이냐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보디빌더가 아닌 이상 대퇴사두나 대퇴이두의 크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가? 어차피 남자든 여자든 일상 생활에서 옷을 입고 다닐 때 하체에서 눈에 띄는 부위는 엉덩이가 전부 아닌가? 굳이 따지면 종아리도 있겠지만… 이에 더해 약물을 쓰지 않는 이상, 몸의 균형을 해칠 정도로 특정 부위가 커지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힙 쓰러스트가 대퇴사두를 자극을 아예 안 주는 것도 아님도 상기할 만하다.

 아울러, 힙 쓰러스트 머신들은 보통 둔근 근육 길이가 줄어든 부분, 그러니까 락아웃 부분에서 가장 힘든 식의 스트렝스 커브를 가지고 있어, 다른 고관절을 접었다 펴는 하체 운동들보다 피로가 적다. 더 많이, 더 자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락아웃에 실패하는 경우에도, 부분 반복을 한다면 그 자체가 ‘Lengthened partial’이다(요즘 유행이라 넣어보고 싶었다).

 고볼륨, 고빈도가 가능하다는 것에 더해, 요즘 머신들은 밴드를 추가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도 있다. 또, 한 다리로 해도 된다. 머신 하나로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가능하며, 이는 유연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게 한다.

 보디빌딩, 역도, 파워리프팅, 크로스핏 등을 하지 않는다면,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은 그냥 힙 쓰러스트 머신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꼭 스쾃이든 뭐든 해야 한다는, 또는 '남자는 하체지' 하는 되도 않는 마초이즘, 또는 ‘3대 500’이 필수라고 하는 식의 마케팅에 놀아나고 있는 것뿐 아닐까?


2024년 7월 16일 화요일

잡문 #7 - The Longevity Diet

 최근 관심사 중 하나는 건강한 식단인데, Dr. Valter Longo의 The Longevity Diet(국내에 『단식 모방 다이어트』라는 제목으로 번역도 되어 있다)에 흥미가 동했다. 언젠가는 해볼 것 같지만, 아직도 단백질을 저리 적게 먹어도 되는가 하는 미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정상인이 되기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책이라 생각하니 일독을 권한다. The Longevity Diet 자체는 책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pp. 111~113). 7번의 경우 약간 간헐적 단식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 덧붙이면, Dr. Longo는 간헐적 단식, 특히 유명한 16시간 단식 후 8시간 식사에 부정적이다. The Longevity Diet의 부분 중 하나인 단식 모방 다이어트(Fast Mimicking Diet, FMD)는 최소한의 식사는 하며 단식의 효과만 얻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Dr. Longo는 16시간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들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것을 지속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06ROURlX6o4). 미국심장협회도 이런 발표를 한 바 있으니 참고하라(https://newsroom.heart.org/news/8-hour-time-restricted-eating-linked-to-a-91-higher-risk-of-cardiovascular-death).


 1. 채소 위주로 섭취하되 약간의 생선을 추가한다. 단, 생선 섭취는 일주일에 최대 2~3회를 넘지 않도록 하며 오메가-3, 오메가-6, 비타민B12가 풍부한 연어, 멸치, 정어리, 대구, 도미, 송어, 조개 새우 등의 생선이나 갑각류, 연체동물로 수은 함량과 신선도를 따져서 고른다.

 2. 65세 이하 성인의 경우, 1일 단백질 섭취량은 몸무게 1kg 당 0.7~08g 수준으로 제한한다. 체중이 60gk이라면 하루 약 42~48kg의 단백질을, 90~100kg이라면 약 60~70g을 섭취하면 된다. 단백질은 병아리콩, 완두콩 등의 콩류로 주로 섭취한다. 65세가 넘으면 그때부터는 근육량 유지를 위해 생선, 달걀, 흰 살코기, 염소나 양에서 나온 유제품 등으로 단백질 섭취량을 약간 늘린다.

 3. 동물성 포화지방(붉은 고기, 치즈)과 당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불포화지방과 복합탄수화물을 최대한 많이 섭취한다. 통곡물과 토마토, 브로콜리, 당근, 콩 등의 채소에 올리브 오일(1일 3테이블스푼)과 견과류(1일 약 28g)을 곁들여 먹는다.

 4.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식사를 하고 3일에 한 번씩 멀티비타민 영양제로 보충해준다.

 5. 이 책의 추천 식재료 중에서 자신의 조상 대대로 익숙한 음식을 선택한다.

 6. 몸무게, 나이, 허리둘레를 고려하여, 하루 식사 횟수를 두 번 또는 세 번으로 정한다. 과체중이거나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라면 아침 식사 한 끼와 점심 또는 저녁 식사 한 끼를 먹고 나머지 한 끼는 100kcal 미만에 당분이 낮은 (5g 미만) 간식으로 대체한다. 이미 적정체중을 유지하고 있거나 살이 잘 빠지는 체질이거나 66세 이상에 정상체중인 사람이라면 하루에 식사 세 끼와 100kcal 미만에 당분이 낮은 (3~5g 미만) 간식 한 번을 추가하도록 한다.

 7. 먹는 시간은 24시간 중 12시간 이내로 제한한다. 만약 첫 식사를 오전 8시에 했다면 저녁 8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도록 한다. 잠들기 전 3~4시간 전에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다.

 8. 65~70세가 되기 전까지는 체중 및 건강상태에 따라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씩 5일 간 단식 모방 다이어트를 시행한다. 가능하다면 전문 영양사와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9. 적정체중 및 허리둘레에 도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위 1번부터 8번까지의 지침을 따른다.


Longo, Valter, 『단식 모방 다이어트』, 신유희 역, 2019.


2024년 7월 15일 월요일

잡문 #6 - 거꾸로 생각하기

 쇠질 관련해서 널리 퍼져 있는 조언이나 의견들에 대해 거꾸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해보면 제법 재미 있기에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흔히 보디빌딩으로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파워리프팅도 잘 한다느니 하는 말(여기에서 보디빌딩은 시합으로서 보디빌딩과, ‘보디빌딩식 운동’이라 할, 미용을 위한 근비대 훈련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일 테다)을 본 적이 있는가? 이에 더해 보디빌더처럼 운동,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70년대 미국 웨스트 코스트 지역 보디빌더들처럼 고볼륨, 고반복 운동을 하라는 조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보디빌딩으로 운동을 시작한 후 파워리프팅도 잘 하는 사람들이라는건, 그저 파워리프팅이 유명하지 않던 시절에, 근비대 훈련의 효과를 다른 이들보다 쉽게 보는 이들이어서 보디빌딩 운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일 뿐인 것 아닐까? 애초에 다른 이들보다 근비대가 더 잘 일어나기에, 파워리프팅에도 유리할 뿐인 사람들인 것 아닐까?

 이에 더해, 고볼륨, 고반복 운동을 추천하는 것 또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누군가 파워리프팅을 한다고 했을 때, 70년대 프로그램을 추천해준다면 딱히 좋은 조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 2일~3일 운동하는 선형 주기화든, 매주마다 스쾃,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기록에 도전하는 방식이든, 딱히 현명한 일이 아닐 테니까.

 수용력Work capacity이라는 개념도 생각해보자. 성적이 좋은 리프터들이 제법 많은 볼륨을 견뎌내는 것을 보고, 우선 볼륨을 견뎌낼 수용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타고난 수용력이 높아 볼륨을 버텨내는 사람만이 좋은 리프터가 되는 것 아닌가? Ilya Ilyin가 인터뷰에서 Zhassulan Kydyrbayev를 높게 평가하며, 자신과 같은 수준의 볼륨을 버텨낸 유일한 사람이기에 높은 기록을 세울 줄 알았다고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국 그런 것 아닌가? 사람마다 타고난 수용력이 있는 것일 뿐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적응은, 특정 부하에 매우 특수하게 일어나지 않는가? 사람들은 항상 ‘SAID’(Specific Adaptations to Imposed Demands)를 이야기하면서, 볼륨을 소화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엔 그저 그 ‘볼륨’을 반복하는 것이 제일 나은 것이라는 생각은 어째서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데드리프트는 컨센트릭 부하만이 있는 운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이것도 거꾸로 생각해보자. 컨벤셔널 데드리프트 동작에서 요추 부분의 기립근에는 에센트릭 부하가 걸리는 것 아닌가? 이로 인한 근육 손상이 컨벤셔널 데드리프트 동작의 피로를 야기하는 요인 중 하나 아닐까?

 최근 영어권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들 중에는 (유감스럽게도) 다시 내추럴 운동법을 이야기하는 조류가 있다. 그네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결국 대부분 만년 중급자 수준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은 차치하고(프리 웨이트를 사용한 복합 관절 운동만을 주로 하는 것은 오히려 유전적 한계 근처에 있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짜낼 수 있는 근비대에의 가능성을 방해할 공산이 크다), 내추럴 운동법의 발달이 무언가 대단한, 지금까지의 쇠질의 역사가 보여준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를 거꾸로 생각해보자.

 훌륭한 훈련법은 약물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물과 시너지를 일으킨다.

 훌륭한 훈련법만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면, 소련 역도 선수들이 약물을 썼을 것 같은가? 굳이 당 차원에서 비용을 더 들일 이유가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내추럴 훈련법은 – 예전에 적은 것처럼, 나는 발달 과정에서부터 내추럴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파워리프팅 프로그램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만 – 약물을 쓰고자 하는 상위권 리프터들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 이기는 데에 미친 사이코패스들이 그저 개선된 훈련법을 통한 결과에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발달된 훈련법은 약물과의 시너지를 통해 놀라운 기록을 내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재 IPF나 USAPL 상위권에서는 여전히 내추럴 리프터가 주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경제적 유인이 계속 커지는 경우에, 지금까지 발달한 프로그램에 똑똑한 약물 사용을 더한 어린 리프터들이 지금의 놀라운 기록조차 계속 갱신할 것이라 생각한다.

 쇠질 전반에 팬인 입장에서는 구경거리가 느니 좋은 일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자발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며, 스스로의 건강까지 해쳐가며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


2024년 7월 11일 목요일

잡문 #5 - MRV(Maximum Recoverable Volumes)

 MRV(Maximum Recoverable Volumes)는 몇 년 전까지 나름 유행하던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MRV 개념은 볼륨 관련한 개념적인 설명으로서 의미가 있지 그 외 실천적으로 적용될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당연히 피트니스 산업 종사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피트니스 산업 종사자들이 흔히 쓰는 소위 ‘가불기’는 아래 두 문장을 합치는 것이다.

 당신이 열심히 운동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이다.

 당신이 똑똑하게 운동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이다.

 MRV 개념은 저 두 문장의 정서를 실로 효과적으로 합친 개념이 될 테니, 피트니스 산업 종사자들이 강조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회복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빡세게! 그리고 아무튼 영어 용어이니 똑똑해 보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Dr. Israetel이 직접 MRV 개념에 대해 적은 것과 그린 것을 보자(똑똑하게 운동하는 분들은 당연히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번역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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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um Recoverable Volume (MRV): The maximum amount of training which can be performed before overreaching occurs. In hypertrophy training this means the amount of training at which no further growth can be expected to occur if continued on a consistent basis, possibly leading to diminishing or even negative returns. (Israetel et al.,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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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d.,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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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V는 그 개념 상, 지속 불가능한 볼륨 수준이며, MEV(Minimum Effective Volumes)와 훈련 효과는 큰 차이가 없는 볼륨 수준이다. Dr. Israetel의 훈련법 모델에서도 MEV와 MRV 사이 어딘가에 있는 MAV를 찾기 위해 메조 사이클 내에서 볼륨을 조절하라고 하며, 개념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란 말이다(물론, 나는 이 모델이 가지고 있는 MAV가 마구 움직인다는 전제는 당연하게도 약물 사용 때문에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1RM 목적의 리프트 기록이 늘거나, 점진적 과부하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러니까 원하는 훈련 효과를 보고 있다면, 현재의 볼륨이 EV(Effective Volumes)라는 뜻이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면 그냥 고정하고 계속하면 된다. 더 이상 원하는 훈련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때에만, 볼륨을 늘이든, 줄이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MRV 따위는 영원히 몰라도 된다. 그런 개념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다.



Israetel et al., 2021, Scientific Principles of Hypertrophy Training.

2024년 7월 7일 일요일

잡문 #4 - Melvin Wells

 



 


 Melvin Wells(1919~1994)는 1949년과 1950년에 AAU Mr. America에서 Most Muscular 상을 받았다. 당시 Wells의 대략적인 몸 치수들은 다음과 같다.


 키: 5’10’’ (약 177.8cm)

 체중: 205lbs (약 93kg)

 상완 둘레: 18.5’’ (약 47cm)

 전완 둘레: 14’’ (약 35.6cm)

 허리 둘레: 30’’ (약 76.2cm)


 아울러, Wells는 400 파운드 백 스쾃을 12회, 스트릭트 밀리터리 프레스를 281파운드, 한 손 밀리터리 프레스를 150파운드, 벤치 프레스 335파운드 수 회, 그리고 스트릭트 바벨 컬 145파운드 12회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Wells에 대해 특기할 만한 점은, 20세기 중반 미국 흑인이라는 것이겠다. 물론 Wells는 뉴욕주에 살았고, 군대도 다녀왔지만, 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 제정 한참 전 인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상과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Wells는 특히 팔이 강점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팔 루틴만은 여전히 기록이 남아있다(그 외엔 아마 당대 거의 모든 보디빌더들과 리프터들이 그랬듯, 전신 운동을 비슷한 세트와 횟수로 했을 것이다).


주 3회

 스트릭트 바벨 컬 3*10

 한 손 밀리터리 프레스 3*10


 Wells는 스트릭트 바벨 컬은 150파운드 10회, 그리고 한 손 밀리터리 프레스는 120파운드 10회까지 했었다고 한다.


출처:

Mckean, John, 2015, ‘STRCIT!’, USAWA, web, https://www.usawa.com/strict/

Web, 2018,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761018247317575&id=116733248412758

Lewis, Jamie, 2024, Huge Natty Arms.


2024년 7월 2일 화요일

잡문 #3 - Jules Quéniart

 











 









 



 Jules Quéniart는 프랑스 Verneuil (Oise) 태생으로 1874년에 태어나서 1911년에 죽었다. 1899년, 만 25세 즈음에 측정했을 때, 174cm 키에 가슴 둘레는 1m 16cm, 허리는 79cm, 팔은41.5 cm, 종아리 둘레는 29cm, 목 둘레는 45cm, 전완 둘레는 33.5cm, 넓적다리 둘레는 58cm, 체중은 80kg였다. 그의 몇몇 리프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저크 220 파운드 (99.8kg)

두 손 프레스 180파운드 (81.6kg)

스윙 리프트 150파운드 (68kg)

한 손 스내치 140파운드 (63.5kg)

링 웨이트 들고 팔 펴기 40파운드 (18.1kg)

두 손 클린 250파운드 (113.4kg)


 Quéniart는 Edmond Desbonnet의 The Kings of Strength: A History of All Strong Men from Ancient Times to Our Own이라는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인물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나쁘지 않은, 그러나 거의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리프트 기록들에 더해, 훤칠한 외형,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오용”한 것과 오버트레이닝으로 일찍 죽었다고, 짧게 적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더해, ‘저 정도는 나도 가능하겠다’ 하는 심보와, ‘저 정도면 충분하지’ 하는 게으름도 함께 한 감상일 것이다.

 물론, 19세기~20세기 초반 프랑스의 리프팅 기준은 매우 엄격했으며, Desbonnet는 유럽 대륙 내 다른 국가들에서 사용되는 리프팅 테크닉들을 혐오하여 이를 격하하는 표현들을 여럿 적은 작가이니, Quéniart의 리프트들은 매우 깔끔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일 테다. 프레스는 차려 자세에서 몸의 다른 부위들은 미동도 없이 팔만 천천히 펴는 방식이었을 테고(19세기 프랑스, 그리고 20세기 초반 영국에서의 프레스는 소위 ‘그라인딩’ 없이, 빠르지도 않게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들어올려야 인정 받았다), 클린이나 스내치는 어깨나 머리 위에 중량이 올라가기 전에 몸의 다른 어느 부위에도 닿아서는 안 되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일 테다.

 검증되지 않은 출처이나, Quéniart이 1898년 레슬링(그레코-로만) 파리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었다 (http://wrestlingclassics.com/cgi-bin/.ubbcgi/ultimatebb.cgi?ubb=get_topic;f=10;t=005539;p=0). 오버헤드 리프트들과 레슬링, 실로 활기차게 살다 간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격투기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오버헤드 리프트들과 다른 신체 활동을 같이 한다는 점이 참으로 좋게 보인다.

 그리고 볼 때마다 참 훌륭한 사진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올드타임 리프터들의 목표는 어깨와 콧수염만 도드라져 보이는 외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2024년 7월 1일 월요일

잡문 #2 - 이분법적 사고

 요즘 여가 시간에 Dan John의 저서들에 더해 팟캐스트도 계속 해서 듣고 있는데, 가끔 나오는 조언 중 하나가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라는 말은 비단 피트니스, 쇠질 관련된 상황뿐 아니라, 다른 여러 주제들에 대해서도 제법 자주 나오는 조언이다. 그리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세상에는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종의 스펙트럼을 가진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이제 재미있는 점은, Dan John이 이분법적 사고를 제안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Dan John의 대표적인 이분법적 사고 방식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 때 하나는 활동을 하고 있는(‘Active’) 운동 선수의 집합이며, 다른 하나는 그 외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는 집합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내 생각에, 결국 쇠질을 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만을 골라야 한다. 특정한 종목을 잘 하는 데에, 또는 특정 체력 요소를 키우는 데에 특화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 사이의 양자택일이다. ‘선수님’처럼 운동하거나, 그냥 ‘헬스’를 하거나,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하며, 양 극단 간 스펙트럼 따위는 없다.

 왜냐고? 1) 쇠질 종목들은 대부분 다른 스포츠 종목들보다 단순하며(그렇기에, 요구하는 체력 요소가 적으며,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상대적으로 적다), 2) 운동에서 간섭 효과interference effect는 실재하니까 말이다(물론 간섭 효과의 정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우선 1)은 흔히 인터넷 트롤들이 쇠질 종목들을 깔보기 위해 드는 이유이나, 오히려 쇠질 종목들을 할 때 특화 훈련이 더더욱 중요해지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적다는 것은, 변인 통제와 이를 통한 퍼포먼스라는 결과값에 대한 예측에의 가능성이 다른 종목들보다 높다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로 인해 보다 최적의(‘optimal’의 번역으로서) 훈련 방법을 찾기 위한 경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극한의 특화 훈련을 강제하며 말이다.

 최적의 특화 훈련법을 찾는 경쟁이 심해질수록, 간섭 효과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 역시 커지기 마련이다. Dan John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두 마리 토끼를 쫓아가면, 결국 둘 다 놓치게 된다. 역도 합계가 목표라면 역도 합계만을, 파워리프팅 합계가 목표라면 파워리프팅 합계만을, 보디빌딩 시합이 목표라면 보디빌딩 준비만을 해야 한다. 각각 요구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간섭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파워리프팅을 하지 않으면서 파워리프팅 동작들에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경우 그 피로로 인해 역도 동작의 개선, 또는 근비대에 간섭이 있을 수 있고, 역도를 하지 않으면서 역도 동작에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경우 역시 파워리프팅 동작의 개선과 근비대에 비슷한 간섭을 줄 것이다. 보디빌딩을 하지 않으면서 보디빌딩의 심사 기준인 균형미에 신경 쓴 근비대 볼륨을 훈련에 추가하는 경우, 그 볼륨으로 인한 피로만큼 역도나 파워리프팅에서의 개선이 힘들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쫓아가면, 결국 둘 다 놓치게 된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현실에는(또는, 소셜 미디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왜곡된 ‘현실’에는) 여러 마리 토끼를 쫓아가, 양손 가득 잡은 뒤 자랑하는 이들이 많고, 이러한 사실이 위와 같은 생각은 틀린 것이라는 주장을 믿고 싶게끔 만든다. 

 세상에는 ‘파워빌더’라는 인종이 있고, 이들은 보디빌딩 시합에서 경쟁력이 있는 몸매를 가지면서도 경쟁력 있는 파워리프팅 합계를 함께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수퍼 토탈’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역도 합계와 파워리프팅 합계 모두를 거의 동시에 제법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낼 수 있다.

 세상에는 심지어 엘리트 크로스피터들도 있다. 이들은 피트니스 산업 하에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측정 지표들에서 제법 훌륭한 수준의 성과를 보여준다.

 여러 마리 토끼들의 귀를 두 손 가득 모아 잡고, 내 눈 앞에서 흔들어대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여러 마리 토끼들을 쫓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 한다. 토끼들을 전부 놓친 뒤에, 실망감에 가득 차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파워빌더’들은 같은 수준 재능을 타고난 보디빌더들에게 보디빌딩 쇼에서 진다는 것을.

 ‘수퍼 토탈’을 자랑하는 이들은 절대 역도 챔피언, 파워리프팅 챔피언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을.

 엘리트 크로스피터들은… 그냥 여러모로 다른 종이라는 것을 말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 것이라고 자위하지 말아라!

 운동 선수가 아닌 그 외 모두를 대상으로 해서, 정장을 입었을 때, 또는 호텔 수영장에 갔을 때에 적당히 몸이 좋아 보이고, 몸이 잘 움직이며,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데에 요구되는 쇠질의 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

 Dan John의 Southwood 프로그램은 파워 클린 8회, 6회 4회, (바닥에 있는 바벨을 클린 후) 밀리터리 프레스 8회, 6회 4회, (역시, 바닥에 있는 바벨을 클린 후) 프론트 스쾃 8회, 6회 4회 총 9 세트를 주 3일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여러 옵션 중 하나는 사용하는 바벨의 무게를 밀리터리 프레스에 맞추는 것이다. 파워 클린, 밀리터리 프레스, 프론트 스쾃을 모두 같은 무게로 하며, 밀리터리 프레스 3세트의 횟수를 모두 성공시켰을 때에만 중량을 올린다.

 엄청나게 근육질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 유명한, 또는 제법 많은 이들이 즐기는 리프트들의 1RM이 엄청나게 오르지도 않을 것이지만, 건강을 위한 근력 훈련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더해 다른 레저 활동, 이를 테면 골프, 테니스, 조깅, 혹은 클라이밍 등을 한다면, 건강과 괜찮은 몸매(이건 어느 정도 식단 조절이 있어야 하겠지만)를 위해 충분한 수준의 활동일 수도 있다.

 특화 훈련에 들이는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바벨 오버헤드 프레스를 꾸준히 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어깨와 팔 근육(물론, 애매한 중급자 수준 내추럴 보디빌더보다도 덜 발달된 정도가 되겠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괜찮은) 정도는 기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정도도 운동 선수가 아닌 그 외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승리다.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 선수가 아닌 이상, 딱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충분한 것을 초과하는 것은, 그저 더 하는 것일 뿐, 더 잘 하는 것도,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이것도 Dan John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문제는, ‘더 하는 것’이 가끔 지나치게 즐겁게 느껴져, 안 하고는 못 배긴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제1세계 국가에서 사는 이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일 테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즐기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