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질을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때 대한민국의 가장 멋진 점 중 하나는, 쇠질과 관련 스포츠에 대한민국 출신, 또는 한국계 인물들이 남긴 족적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역도와 파워리프팅 종목에서 대한민국 출신, 또는 한국계이면서 국제 대회 수준의 기록을 남긴 이들이 많으며, 초창기 프로레슬링, 격투기 등 쇠질과 느슨한 연관이 있는 종목들에서도 역도산, 최배달 같이 한국계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김태현이다. 유감스럽게도 무제한급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기에 올림픽 메달은 없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무려 용상 260kg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범위에서 국제 시합에서 260kg 이상 용상을 성공한 리프터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우선, 최초로 260kg의 벽을 깬 것은 우크라이나(당시에는 소련) 출신의 Sergey Didyk다. 1983년 소련 내 시합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소련은 여러 국가의 연합체이니 국제 시합 취급이었다.
Didyk의 기록을 전후하여, 260kg 이상의 용상은 한동안 소련 무제한급 선수들만의 영역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Anatoly Pisarenko는 언제나 자신의 용상 기록을 무기 삼아 시합을 이겨나간 선수였고, 최고 기록으로 265kg 용상을 기록했다. 벨라루스 출신의, 이후 두 번이나 올림픽 챔피언이 되는 Alexander Kurlovich도 260kg 이상 용상을 기록했다. 역시 벨라루스 출신에, 1980년 올림픽 -110kg 챔피언이었던 Leonid Taranenko는 1988년 266kg 용상 세계 기록을 세웠었다.
소련 붕괴 이후를 보면, 러시아 출신의 1996년 올림픽 무제한급 챔피언 Andrei Chemerikin이 260kg 이상의 용상을 성공시켰었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독일의 Ronny Weller도 260kg 용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초중반 사실상 역도 무제한급을 지배했던 이란의 Hossein Rezazadeh가 260kg 이상의 용상을 여러 번 성공 시켰었다.
그 이후에도 260kg 이상 용상을 성공 시킨 이는 많지 않다. 러시아의 Aleksey Lovchev가 264kg 용상을 성공 시켰으나, 이후 도핑 적발로 기록이 취소 되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역도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조지아의 Lasha Talakhadze가 무려 267kg 용상을 성공시킨 바 있다.
위에 적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260kg 이상 용상을 성공시킨 리프터들은 구소련 출신, 또는 동독 출신이거나, 적어도 소련에 속했던 국가 출신, 또는 이란 출신이다(이는 여러가지를 암시한다). 중국 출신 리프터들은 단 한 명도 260kg 이상 용상을 시합에서 성공시킨 적이 없고, 불가리아 출신 리프터들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불가리아 출신 중 260kg 용상에 가장 가까웠던 이는 카타르의 Jaber Saeed Salem, 개명 전 이름 Yani Marchokov이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서 대한민국의 김태현이 260kg 용상을, 그것도 올림픽 무대에서 성공시켰다는 것을 상기해보라. 아울러, 김태현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기록한 460kg 합계는 2004년 올림픽이라면 2등, 2008년 올림픽이었다면 3등, 2012년이었다면 1등, 2016년, 2020년에도 2등이 가능한 기록이었다.
물론, 김태현은 무려 세 번이나 아시안 게임 챔피언을 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입상했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무적으로, 무려 16년 연속 전국체전 우승을 했다. 심지어, 선수 생활 중 지병으로 당뇨까지 앓아가며 말이다.
실로 영웅적이라고 하겠다.
참고
http://www.chidlovski.net/liftup/
http://www.weightlifting.or.kr/2015/about/about_06.php
http://www.weightlifting.or.kr/2015/board/content.php?kind=7&no=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