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자약’들이 피해야 하는 것
‘인자약’들이 쇠질 훈련 계획을 짤 때에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피로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근비대 훈련을 하게 되면, 피로로 인해 운동 단위 동원이 제한되게 되고, 이는 근비대를 방해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동원되지 않은 근섬유가 커지기는 어렵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근력 훈련을 하게 되면, 역시 피로로 운동 단위 동원이 제한된 상태에서, 가장 효과적인 자세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신경계는 피로가 쌓인 상태 하에서의 효과적이지 못한 자세를 익히게 된다.
결국, 훈련 효과(적응)이 있을 정도의 과부하를 주되, 피로를 최소화하는 것이 쇠질 훈련 계획에서 가장 근본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이제, 가장 멍청한 짓은, 딱히 나은 적응을 주는 부하도 아니면서 피로가 큰 행위를 중심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 대표적인 것이 고반복 세트들을 통한 고볼륨 훈련이다.
만약 당신이 뭘 해도 기록이 오르고 몸이 좋아지는, ‘선수님’ 유전자라면 사실 상관 없다. 그러나 당신이 소위 ‘인자약’이라면? 고반복 세트들로 하는 고볼륨 훈련은, 다람쥐 쳇바퀴나 다름 없는 짓이 될 것이다.
2. ‘내추럴’의 기준
‘내추럴’의 기준이라는 것은 사실 모래 위에 선 긋기와 같다.
우선, 그저 취미로 쇠질을 하는 이가 있다고 할 때에 ‘내추럴’은 대략, 보충제, 영양제 정도는 섭취하되, 쇠질에서의 퍼포먼스를 올리는 약물은 사용하지 않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충제, 영양제’라는 기준조차 모호한 것이다. 베르베린을 섭취해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경우는 어떤가? 혹은 극한의 다이어트 중에 L-카르니틴을 주사해서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것은? 둘 모두 그저 영양제 수준에 지나지 않는 성분이니 괜찮은 것인가? 또는, 처방전을 받아 ADHD 치료제를 복용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암페타민이지만 시합에서도 TUE를 받을 수 있으니 괜찮은 수준인가?
그래도, 상기 사례들은 WADA 금지 약물도,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약물도 아닌 그저 영양제이니, 또는 치료를 위한 합법적 약물 사용이니 괜찮아 보인다. 사실 적당히 생각하면 AAS나 펩타이드 호르몬 정도만 안 쓰면 ‘내추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추럴’의 기준이 더 모호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소위 ‘내추럴’ 시합에 나가는 ‘선수님’들의 존재이다.
WADA 기준 하에서 테스토스테론에 대해서 내인성 호르몬의 양을 기준으로 테스트를 하지 않고, T:E 비율을 기준으로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T:E 비율이 4:1를 넘으면 무언가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하여, 추가적인 테스트를 시행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유명인의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UFC 182 시점의 다니엘 코미어다(UFC 182 당시 도핑 테스트 결과지는 다음을 참고하라: https://www.mmafighting.com/2015/1/23/7880561/official-documents-from-jon-jones-daniel-cormier-ufc-182-drug-test). 코미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2014년 12월 2일에는 50ng/ml, 12월 17일에는 70ng/ml, 2015년 1월 3일에는 13ng/ml, 그리고 2015년 1월 4일에는 7.1ng/ml였다.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정상 범위가 2.7~10.7ng/ml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코미어는 UFC 182 시점에 만 35세였다. 종합격투기라는, 극한의 고볼륨 훈련이 강제되는 스포츠를 하며, 시합이 가까워져 감량까지 고려해야 하는 만 35세 남성이 정상 범위의 거의 7배가 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여줬다가, 1개월만에 정상 범위로 돌아온 것이다.
LH도 보면, 2014년 12월 2일 39.2mIU /ml, 12월 17일 45.7mIU/ml, 2015년 1월 3일 7.6mIU/ml, 1월 4일 6.4mIU/ml로 널뛰기를 한다. 역시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건강한 남성의 소변에서 LH 정상 범위는 7.11 ± 5.42 IU/L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기한 테스트들 모두에서 다니엘 코미어의 T:E 비율은 항상 0.5를 넘지 않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하자면, Rogerson et al., 2007이 있다(https://pubmed.ncbi.nlm.nih.gov/17530941/). 9명의 20대 남성에게 체중 1kg 당 3.5mg의 테스토스테론 에난테이트를 매주, 총 6주 간 주사한 연구로, 6주 후 9명 중 4명의 T:E 비율이 WADA 기준인 4:1보다 낮게 나왔다.
상기 연구를 통해 재인용하자면, Weatherby et al., 2002는 이렇게 밝힌다: “근력 훈련을 받는 운동선수들이 12주 동안 테스토스테론 에난테이트를 투여 받았을 때, 30m 스프린트 테스트에서 향상을 보였다. 잠재적으로 더 중요한 발견은 테스토스테론 투여가 중단된 후 12주 후에도 스프린트 능력에 대한 향상 효과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소변 T/E 비율이 기준선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할 만한 것은, IFBB Natural 대회의 기준이다. T:E 비율을 무려 6:1까지 봐주기 때문이다(https://ifbbprokorea.com/rules/doping/).
여기까지 읽었다면, 영어권 핏플루언서들이나 코치들이 농담처럼 쓰는 ‘Sports TRT’라는 용어에 어째서 ‘Sports’가 들어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추럴’ 시합들의 도핑 테스트 규정 자체가 자연적인 내인성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능한 수치보다 훨씬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까지 ‘내추럴’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외인성 테스토스테론 사용까지는, 적어도 ‘선수님’들 수준에서는 ‘내추럴’인 것처럼 보인다(물론, 코미어의 경우는 LH 촉진제 같은 것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리고 위의 연구들이 에난테이트를 가지고 한 것이며, 2020년대 보디빌더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프로피오네이트, 인슐린 주사 바늘, 매일 하는 마이크로 도징을 기억하면, 더더욱 이 상황이 재미있어진다.
물론, 도핑 테스트 기술 자체는 위와 같은 사례를 모조리 잡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다. 예를 들자면, 위 사례들의 경우 탄소 동위 원소 분석을 해버리면 된다. 대부분의 외인성 테스토스테론 약물은 식물성 원료를 가지고 만드니 말이다. 불행하게도 이 경우에도 ‘로무새’적 음모론은 가능하다. 어떤 미친 인간이 동물성 콜레스테롤을 원료로 하여 테스토스테론을 합성하고 이를 유통 시키고 있다면, 이를 도핑 테스트로 적발하는 것이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정신 나간 주장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실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이에 더해, 세상 그 어떤 협회도 모든 선수들에 대해 비싼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예산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나처럼 취미로 운동을 하는 이와, ‘선수님’들 간 ‘내추럴’의 정의조차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추럴’이 얼마나 모호한 단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