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9일 화요일

잡문 #23 – 이상한 생각들 #2

1. ‘인자약’들이 피해야 하는 것


 ‘인자약’들이 쇠질 훈련 계획을 짤 때에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피로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근비대 훈련을 하게 되면, 피로로 인해 운동 단위 동원이 제한되게 되고, 이는 근비대를 방해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동원되지 않은 근섬유가 커지기는 어렵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근력 훈련을 하게 되면, 역시 피로로 운동 단위 동원이 제한된 상태에서, 가장 효과적인 자세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신경계는 피로가 쌓인 상태 하에서의 효과적이지 못한 자세를 익히게 된다. 

 결국, 훈련 효과(적응)이 있을 정도의 과부하를 주되, 피로를 최소화하는 것이 쇠질 훈련 계획에서 가장 근본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이제, 가장 멍청한 짓은, 딱히 나은 적응을 주는 부하도 아니면서 피로가 큰 행위를 중심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 대표적인 것이 고반복 세트들을 통한 고볼륨 훈련이다.

 만약 당신이 뭘 해도 기록이 오르고 몸이 좋아지는, ‘선수님’ 유전자라면 사실 상관 없다. 그러나 당신이 소위 ‘인자약’이라면? 고반복 세트들로 하는 고볼륨 훈련은, 다람쥐 쳇바퀴나 다름 없는 짓이 될 것이다.



2. ‘내추럴’의 기준


 ‘내추럴’의 기준이라는 것은 사실 모래 위에 선 긋기와 같다.

 우선, 그저 취미로 쇠질을 하는 이가 있다고 할 때에 ‘내추럴’은 대략, 보충제, 영양제 정도는 섭취하되, 쇠질에서의 퍼포먼스를 올리는 약물은 사용하지 않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충제, 영양제’라는 기준조차 모호한 것이다. 베르베린을 섭취해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경우는 어떤가? 혹은 극한의 다이어트 중에 L-카르니틴을 주사해서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것은? 둘 모두 그저 영양제 수준에 지나지 않는 성분이니 괜찮은 것인가? 또는, 처방전을 받아 ADHD 치료제를 복용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암페타민이지만 시합에서도 TUE를 받을 수 있으니 괜찮은 수준인가?

 그래도, 상기 사례들은 WADA 금지 약물도,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약물도 아닌 그저 영양제이니, 또는 치료를 위한 합법적 약물 사용이니 괜찮아 보인다. 사실 적당히 생각하면 AAS나 펩타이드 호르몬 정도만 안 쓰면 ‘내추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추럴’의 기준이 더 모호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소위 ‘내추럴’ 시합에 나가는 ‘선수님’들의 존재이다.

 WADA 기준 하에서 테스토스테론에 대해서 내인성 호르몬의 양을 기준으로 테스트를 하지 않고, T:E 비율을 기준으로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T:E 비율이 4:1를 넘으면 무언가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하여, 추가적인 테스트를 시행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유명인의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UFC 182 시점의 다니엘 코미어다(UFC 182 당시 도핑 테스트 결과지는 다음을 참고하라: https://www.mmafighting.com/2015/1/23/7880561/official-documents-from-jon-jones-daniel-cormier-ufc-182-drug-test). 코미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2014년 12월 2일에는 50ng/ml, 12월 17일에는 70ng/ml, 2015년 1월 3일에는 13ng/ml, 그리고 2015년 1월 4일에는 7.1ng/ml였다.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정상 범위가 2.7~10.7ng/ml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코미어는 UFC 182 시점에 만 35세였다. 종합격투기라는, 극한의 고볼륨 훈련이 강제되는 스포츠를 하며, 시합이 가까워져 감량까지 고려해야 하는 만 35세 남성이 정상 범위의 거의 7배가 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여줬다가, 1개월만에 정상 범위로 돌아온 것이다.

 LH도 보면, 2014년 12월 2일 39.2mIU /ml, 12월 17일 45.7mIU/ml, 2015년 1월 3일 7.6mIU/ml, 1월 4일 6.4mIU/ml로 널뛰기를 한다. 역시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건강한 남성의 소변에서 LH 정상 범위는 7.11 ± 5.42 IU/L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기한 테스트들 모두에서 다니엘 코미어의 T:E 비율은 항상 0.5를 넘지 않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하자면, Rogerson et al., 2007이 있다(https://pubmed.ncbi.nlm.nih.gov/17530941/). 9명의 20대 남성에게 체중 1kg 당 3.5mg의 테스토스테론 에난테이트를 매주, 총 6주 간 주사한 연구로, 6주 후 9명 중 4명의 T:E 비율이 WADA 기준인 4:1보다 낮게 나왔다.

 

 









  


 


 상기 연구를 통해 재인용하자면, Weatherby et al., 2002는 이렇게 밝힌다: “근력 훈련을 받는 운동선수들이 12주 동안 테스토스테론 에난테이트를 투여 받았을 때, 30m 스프린트 테스트에서 향상을 보였다. 잠재적으로 더 중요한 발견은 테스토스테론 투여가 중단된 후 12주 후에도 스프린트 능력에 대한 향상 효과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소변 T/E 비율이 기준선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할 만한 것은, IFBB Natural 대회의 기준이다. T:E 비율을 무려 6:1까지 봐주기 때문이다(https://ifbbprokorea.com/rules/doping/). 

 여기까지 읽었다면, 영어권 핏플루언서들이나 코치들이 농담처럼 쓰는 ‘Sports TRT’라는 용어에 어째서 ‘Sports’가 들어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추럴’ 시합들의 도핑 테스트 규정 자체가 자연적인 내인성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능한 수치보다 훨씬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까지 ‘내추럴’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외인성 테스토스테론 사용까지는, 적어도 ‘선수님’들 수준에서는 ‘내추럴’인 것처럼 보인다(물론, 코미어의 경우는 LH 촉진제 같은 것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리고 위의 연구들이 에난테이트를 가지고 한 것이며, 2020년대 보디빌더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프로피오네이트, 인슐린 주사 바늘, 매일 하는 마이크로 도징을 기억하면, 더더욱 이 상황이 재미있어진다.

 물론, 도핑 테스트 기술 자체는 위와 같은 사례를 모조리 잡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다. 예를 들자면, 위 사례들의 경우 탄소 동위 원소 분석을 해버리면 된다. 대부분의 외인성 테스토스테론 약물은 식물성 원료를 가지고 만드니 말이다. 불행하게도 이 경우에도 ‘로무새’적 음모론은 가능하다. 어떤 미친 인간이 동물성 콜레스테롤을 원료로 하여 테스토스테론을 합성하고 이를 유통 시키고 있다면, 이를 도핑 테스트로 적발하는 것이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정신 나간 주장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실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이에 더해, 세상 그 어떤 협회도 모든 선수들에 대해 비싼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예산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나처럼 취미로 운동을 하는 이와, ‘선수님’들 간 ‘내추럴’의 정의조차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추럴’이 얼마나 모호한 단어인지!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잡문 #22 - 볼륨, 용어 혼란 전술

 쇠질 관련하여, 세트 수로 볼륨을 따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만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근비대와 관련하여 힘든 세트 수를 기준으로 볼륨을 따지는 것이지, 이게 근비대 훈련 외에 다른 것에도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볼륨은 그저 훈련량을 뜻하는 용어로,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경우에는 거리로 볼륨을 측정할 것이고, 장거리 사이클을 하는 경우에는 특정 Watt/kg 강도 구간 별 훈련 시간으로 볼륨을 측정할 것이다. 그리고 근비대와 관련해서는 힘든 세트 수를 기준으로 볼륨을 따지는 것이 가장 의미 있을 것이라는 합의가 있기에 많은 연구들이 힘든 세트 수를 기준으로 볼륨을 측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근력 훈련에 바로 적용할 때이다. 

 역도가 되었든, 파워리프팅이 되었든, 특정 리프트의 1RM을 목적으로 하는 훈련에서는 실패 지점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서 1~3회를 수행하는 세트를 제법 많이 수행하게 된다. 이 경우, ‘힘든 세트 수’를 기준으로 하는 근비대 볼륨 계산과는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실패 지점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구소련 시스템에서의 역도,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동유럽 쪽 파워리프팅의 경우 NL (Number of Lift)를 사용하는 것이다. 특정 강도에서 총 몇 회를 들었는지, 연습한 양을 추적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는 Load-volume 그러니까, 중량*횟수*세트로 계산되는 ‘tonnage’를 추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적어도 일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어차피 시합 종목은 두 종목, 아니면 세 종목이니 이 종목들의 tonnage만을 추적하면 더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구분 하에서, 근비대 훈련의 볼륨 계산법, 이를 테면 Dr. Israetel이 만든 볼륨 랜드마크 – MV, MEV, MAV, MRV – 를 근력 훈련의 볼륨 계산법으로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 없이 그저 ‘볼륨’만을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용어 혼란 전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냥 적당히 ‘볼륨을 늘려야 합니다’ 하는 식의 내러티브가 넘쳐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이런 구분 따위 신경 안 써도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언제나 남들보다 잘 들게 되니, 적당히 볼륨을 늘리고 성적이 좋은 리프터들은 언제나 존재하게 되며,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다들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특정 리프트의 1RM 향상을 위한 훈련의 경우 근력을 위한 연습으로서 하는 시합 종목과 그 가까운 변형들의 볼륨은 가능한 한 높아야 하지만, 근비대를 위한 볼륨은 그렇지 않다든지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는 분리하여 논의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싶다(완전 분리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최근 공개된(Pre-print 상태이지만) 근비대 훈련 볼륨 관련된 메타회귀분석(https://sportrxiv.org/index.php/server/preprint/view/460/967) 을 보면, 근비대 세트수가 부위별로 주당 4 세트를 넘어가는 경우에는 근력 향상에서 한계 효용(?)이라 할 것이 급감한다. 심지어 저 4 세트는 프레스 동작 1 세트를 상완 삼두근 관련해서 0.5 세트로 세는 식으로 해서 나온 수치이다. 근력 향상을 위한 볼륨이 이미 처방되어 있는 경우, 근비대를 위한 볼륨(액세서리를 통한)이 높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이에 더해, 조금 더 과장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특정 리프트의 1RM 기록이 목표인 경우, 근력을 위해서는 제법 높은 볼륨이 필요하지만(무식하게 이야기하면, 뭐든 연습을 많이 해야 는다), 근비대를 위해서는 오히려 볼륨이 높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잡문 #21 - 무책임

 쇠질 훈련법과 관련하여 가장 무책임한 말은, 적어도 내 생각엔, 이것이다:

 ‘근비대를 해라’

 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근비대는 특이성에 구애를 매우 덜 받는, 매우 ‘관대한’ 적응이니 말이다. 흔히 ‘과학적’으로 밝혀진 근비대 훈련 강도의 범위부터 생각해보면, 무려 5~30RM이다. 효과가 있는 볼륨 구간은 (최적의 볼륨 구간이 아니라, 훈련 효과가 있는) 말 그대로 주 당 부위별 1~2 세트 정도부터 무려 50여 세트 사이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 이런 상황에서 ‘근비대를 해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5~8회 1~2세트부터, 25~30회 50세트 사이 어딘가를 해라 하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결국 훈련 계획은 빈도, 강도, 볼륨, 그리고 특이성이 모두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니(‘FITT’ 원칙이다! 고전 그 자체다!), 그저 근비대를 하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현재 훈련하는 방식, 그리고 훈련의 목적을 고려해 빈도, 강도, 볼륨, 특이성을 모두 고려하여 그에 따른 근비대 훈련을 계획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근비대를 해라’ 하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말인 것이다.

 그리고 위에 기초해 다른 무책임한 말들도 더 생각해볼 수 있다:

 ‘볼륨을 늘려라’

 ‘빈도를 늘려라’

 ‘스트렝스를 길러라’

 차라리 재능을 타고났어야 한다고 조언해주는 건 어떤가?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조커: 폴리 아 되』 감상

 우선 나는 영화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임을 밝힌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내 인생 최고의 영화 5편은 『아드레날린24』, 『아드레날린24 2』, 『올드 보이』, 『좋은 친구들』, 그리고 『파이트 클럽』이다. 그저 유명하거나 폭력적이면, 혹은 둘 모두인 경우에 무작정 좋아한다는 뜻이다. 감상, 또는 평론과 관련하여 별도의 고등 교육 학위도 없고, 학부 전공이 사회학과 철학이었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언급할 만한 배경일 것이다.

 길게 썼지만, 사실 변명이다. 이 글이 아무 의미 없는 글이라는 것에 대한 변명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조커: 폴리 아 되』 감상문을 쓰는 이유는 사실 하나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평론가들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니 하는 헛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평범한 영화일 것이고, 주제 넘게 평론가와 일반 소비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장면이 나올 때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완결성을 좋아하며, 『조커: 폴리 아 되』는 전작인 『조커』의 서사를 이어 받아 깔끔하게 완결 시켰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시청자의 실망을 의도하고 있다. 전작은 주인공 아서 플렉의 불행과 불운으로 시청자를 압박하다가, 조커로의 각성과 폭력, 살인을 통한 해방감을 주었다(이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떠나서 말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로서 행동하는 장면들은 망상 속 뮤지컬이 대부분이고, 현실 법정에서도 조커 흉내만 낼 뿐이다. 나는 이 영화가 이를 통해 전작에서의 조커를 그저 망상, 또는 연극으로 만들며(또는, 연극으로 인식 시키며-있어 보이는 말로는 ‘소격 효과’일 것이다) 전작의 해방감을 기대한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실망 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실망감을 통해 얻는 효과는 전작과 이 영화를 연결해서 보았을 때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수미상관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의 구성이 클라이맥스의 해방감까지 시청자를 고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었다면,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의 허탈함까지 시청자를 하강 시킨다. 즉, 전작의 시작 지점, 아서 플렉이 바닥을 치던 시점에 시청자가 느끼던 감정까지 다시 되돌린다는 것이다.

 수미상관 이야기가 나와서 언급해야만 할 것이, 이 영화가 전작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전작에서 주인공이 쓰러진 상태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이 영화도 주인공이 쓰러진 상태로 끝난다. 전작에서 조커로의 각성이 3명의 취객들이 가하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가 허상임을 인식하는 것도 3명의 간수들이 가하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예 전작의 센세이셔널한 장면이었던 화장실에서의 춤 장면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서는 그 후 아서가 분장을 지우는 장면을 보여주고, 조커로 각성하여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는 장면에 대해서는 조커이길 포기하고 리를 찾아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대비되어 제시된다. 전작에서 시청자들을 고양시킨 모든 장면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반대되는 장면을 보여주어 의도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차적인 감정의 침잠, 그리고 수미상관을 고려한 연출(상승과 하강)을 통해 얻는 새삼스러운 재인식이 있었다. 바로 이게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게 실로 걸맞는, 개연성이 있는 서사라는 것이다. 전작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한편, 머릿속에서는 ‘결국 불행과 불운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정신질환자가 미쳐서 사람 죽이고 수감된 것 아닌가? 이게 만화책 속 수퍼 빌런이 될 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는 이를 다시금 상기 시킨다. 이에 더해 이 영화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영화 속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현상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제목부터 그렇고, 아무 맥락 없이 터지는 폭탄 테러,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사건과 이를 주도하는 인물의 존재도 그렇다. 이 영화 속 세상에서는 아서 외에 누구든 조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조커를 소비해주고, 숭배하며, 성적으로 욕망하는 리의 존재는 이 지점을 더더욱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아서 플렉은 그저 외로움과 소외가 개인을 어떻게 만드는가 보여주는 인물이 되며, 전작에서의 상승과 이 영화에서의 추락을 통해 하나의 캐릭터로서 완결된다.

 영화 속 세계에서 아서는 모든 ‘억까’란 ‘억까’는 다 당하니, 이 영화 시리즈는 구체적으로 외로움과 소외를 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전작과 이 영화를 사회 비판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어렵다. 현실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의 원인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고, 사회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될 수도 있으며, 실연의 경험이 될 수도, 거절에 대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그리고 아서는 전작과 이 영화에서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을 다 당한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외로움과 소외는 결국 정신병을 부르고, 폭력과 파괴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말이다. 

 이에 더해 나는 전작과 이 영화에서의 ‘사회 비판’은 현대 미디어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느꼈다. 배경이 198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아서가 출연하게 되는 TV쇼는 마치 현대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매체처럼 그려진다. 애초에 아서가 조그마한 코미디 클럽에서 공연한 영상이 남아 TV쇼에 오르는 것 자체가 영상 촬영과 공유가 쉬운 현대에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아서의 재판은 ‘세기의 재판’으로 명명되어, 적어도 카메라 안에 비춰지는 이 영화 속 세상 사람들이, 현실의 사람들이 유명한 사건에 대한, 또는 유명인이 연루된 재판의 과정, 이를 테면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재판 과정을 소비했던 식으로 아서의 재판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영화 속 세계에는 아서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언급까지 나온다. ‘불특정다수가 (현대의 미디어를 통하여) 그저 쾌락을 위해 누군가의 외로움과 소외에 따른 울분을 소비하는 것 – 이것이 조커를 낳는 단초가 된다’ 라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재미있게도, 만화에서의 조커는 실로 모범적인 극장형 범죄자 아닌가?

 다시 아서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하강의 종착지는 앞서 언급한대로 아서가 쓰러져 죽어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외로움과 소외로 미친 인간의 종착지는 결국 파멸 뿐이라는 뻔한 사실이 다시금 시청자들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비벼진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해하려 노력해주는 타인 없이는 미쳐버린다. 그리고 전작과 이 영화에서 강조된다고 느끼는 것은, 소비는 이해가 아니고, 숭배도 이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라는 캐릭터에서 보이듯 페티시도 이해가 아니다. 아서가 타인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있지만(적어도 아서는 노력한다 – 난쟁이 개리의 존재가 이를 보여준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아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부조리하게도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죽음만이 기다린다. 이해하려는, 이해 받으려는 노력을 해도 실패할 수 있는데, 사람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젠장,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 너야?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잡문 #20 - '로무새'

 개인적으로는 어떤 개인에 대해 소위 ‘로무새’라 불리는 의심을 하는 것의 동기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누군가가 ‘페이크 내티’라고 했을 때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건 결국 취미인데다가, 취미에서 악한이 이기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 아닌가? 마치 영화 속 악역이 이기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도핑을 통해 얻을 경제적 이익이 큰 경우에, 도핑을 저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굳이 이것에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있는가? 도핑과 관련된 기만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월급을 받는 이들, 그러니까 검사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에게 있어 말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경제적 이익을 보지도 못하면서 굳이 ‘페이크 내티’ 짓을 한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내 기준에서 인간으로 취급해 주기도 어렵다. 굳이 사람 취급을 하며 신경을 써주어야 하나?

 이에 더해, 쇠질은, 적어도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한다면, 그저 약물 문화에 불과하다고도 생각한다. ‘내추럴’ 관련 조류가 있긴 하지만, 이게 쇠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중 음악 전체에서 스트레이트 엣지 하드코어 펑크가 차지하는 비중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유비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면, Earth Crisis는 멋진 밴드이지만, 이들이 대중 음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라. 쇠질 전체에서 ‘내추럴’ 관련 문화의 비중이 딱 그 정도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내가 ‘로무새’ 짓을 매우 열심히 하는 대상이 있긴 하다. 바로 쇠질 훈련 시스템과 방법론이 그 대상이다. 이 블로그에서 나는 계속 내추럴 훈련법과 PED 사용자의 훈련법은 다를 게 없다고 적었는데,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 말은 틀린 말이 될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좋은 훈련법이 있고, 좋은 훈련법은 내추럴과 PED 사용자 모두에게 좋다(얼마 전에 적은 파워리프팅 훈련법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덜 좋은, 안 좋은 훈련법도 있으며, 모든 훈련자들에게 딱히 좋지 못하지만, PED 사용자는 사용 약물의 종류와 복용량, 복용 기간을 늘려 어떻게든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덜 좋은 훈련법 중에는 PED 사용자 한정으로는 특정 PED 사용법에 따라 좋은 훈련법이 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로무새’ 짓의 예시 세 가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1. PED 사용에 의해 강제되는 훈련법

 우선, PED를 사용하기 때문에, PED의 효과에 의해 훈련자가 해야 만 하는 훈련들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Westside Barbell이 GPP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AAS는 적혈구용적률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혈압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 약물을 사용하는 파워리프터들이 선호하는 볼데논, 아나드롤 같은 것은 더더욱 그렇다. 장비 파워리프팅이라는 종목의 특이성을 생각해보라. 몸에 수분 보유를 많게 해주며, 파워리프팅 기어 내에 최대한 많은 양의 살(그게 근육이든, 지방이든, 수분이든)을 밀어 넣는 것이 더 많은 무게를 들게 해준다. 그리고 에스트로겐이 충분해야 관절도 덜 아플 것 아닌가? 그 결과, 테스토스테론, 볼데논 등이 더 많이 쓰이고, 어찌 되었든 1RM을 측정하는 일이니 경구제도 더 많이 쓰게 된다. 하물며 Westside Barbell은 매주 Max Effort 워크아웃에서 1RM을 잰다! Westside Barbell의 리프터들이 다른 부류의 리프터들보다 혈압 관련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 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이 위험을 약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더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심혈관계 운동을 하는 것이다. 즉, 유산소 운동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Louie Simmons는 그냥 일상적인 것에도 소련 훈련법 책 번역본에서 찾은 이름을 붙이길 좋아했다. 그냥 모두가 하는 고반복 훈련도 Westside Barbell에서는 Repeated Effort가 되거나, Repetition Method가 된단 말이다. 그렇기에, 혈압 때문에 쓰러져 죽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유산소, 또는 그 외 활동도 GPP가 된 것이다. 당연히 건강해지면, 강해진다. 여기에서 문제는 Westside Barbell의 리프터들이 건강하지 않았던 이유는 PED 오남용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2. PED 사용을 위해 하는 훈련법

 PED의 효과를 최대한 얻기 위해 하는 훈련법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동독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 청소년기 훈련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Broderick Chavez의 인터뷰에서 나온, 2차적인 정보이지만, 동독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 청소년기, 또는 훈련 커리어 초기에 극단적인 볼륨을 통해 오버트레이닝에 가깝게 훈련시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극단적인 훈련량을 버티는, 타고난 선수만 걸러낼 수 있음

 2) 극단적인 훈련량을 버티는 동안, 제한된 양의 내인성 호르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적응으로 선수의 몸에서 수용체와 관련 효소들이 상향 조절됨

 2)에 주목하라. 이를 통해, 극단적인 훈련량을 거친 선수들은 첫번째 ‘사이클’에서 극단적인 훈련량을 소화하지 않는 이들에 비해 더 큰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게 동독 시스템 하에서 코치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라는 것이다.


3. PED 사용을 통해 훨씬 나은 효과를 내는 훈련법

 정확하게 쓰자면, PED 사용을 전제하고, 이를 계획에 반영한 훈련법을 말한다. 모든 훈련법이 PED 사용을 통해 훨씬 나은 효과를 내니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는 Juggernaut Training System에서 한참 밀던 블록 주기화이다. 특히 ‘Accumulation’ 블록과 ‘Transformation’ 블록(정확하게는 ‘피킹’)의 경우 PED 사용을 통해서만 그 효과가 커지며, PED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굳이 추천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Accumulation 블록을 생각해보면, 평균 강도는 낮추고, 반복 횟수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PED를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리프터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도를 낮추고 반복 횟수를 올려 다른 에너지 대사 시스템을 사용할 분명한 이유가 없다. 하지만, PED를 사용하는 리프터의 경우, 사용하는 PED의 종류를 달리 하거나, 양을 줄인 상태라면 강도를 줄일 이유가 있고, 반복 횟수를 늘릴 이유도 있다. 물론 Accumulation 블록이 PED를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리프터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적으로 훈련되도록 마이크로 사이클의 부분으로 짜서 넣으면 될 것을 따로 할 이유를 근사하게 주장할 만한 근거도 없다.

 애초에, 훈련 효과는, 훈련자가 꾸준히 일정 이상 강도와 볼륨으로 운동한다는 전제 하에, Accumulation 블록이 아니더라도 축적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에 더해 피킹은 그 개념상 PED 사용의 필요성을 더 암시한다. Chad Wesley Smith 의 피킹에 대한 강조가 특히 그런데, 약물을 사용하는 리프터의 경우 시합이 다가올 때에 사용하는 약물의 총량이 늘어나고, 직접적으로 단기적 퍼포먼스에 영향을 주는 약물들(경구 AAS와 그 외 향정신성 약물)의 사용이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연히 피킹 블록 이전과 이후의 기록이 많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전체적인 볼륨을 과도하게 줄이는 방식으로 피킹을 계획하는 경우는 PED 사용이 전제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게도 매 세션마다 아나드롤과 암페타민을 사용할 수는 없기에, 90% 이상 강도 사용의 빈도와 볼륨을 매우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피킹 역시 PED를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리프터에게도 적용이 되는 개념일 수 있다. 리프터 개인이 지금까지 특정 강도와 볼륨, 빈도에서 보여준 SRA 커브가 있어, 코치와 상의하여 피로를 줄이기 위한 약간의 볼륨과 강도 조절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CWS가 주장하던 마법 같은 피킹은 PED 없이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상기 세 가지 예시들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PED를 사용하는 경우, 표면적으로는 목적이 되는 스포츠에 있어 보다 특이하지 않은(덜 ‘specific’한) 훈련법이 사용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이성의 부족함이 사실 ‘로무새’적 관점에서 보면 PED 사용과 함께하는 스포츠에의 특이성임을 알 수 있다. PED의 영향 하에 퍼포먼스를 내는 것에 특화된 훈련인 것이다. 그리고, ‘로무새’적 관점을 통해 PED의 영향 하에서 퍼포먼스를 내기 위한 정보들을 걸러내어, 소위 ‘내추럴’ 훈련자들을 위한 훈련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이 과정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대 ‘Tested’ 파워리프팅 씬의 훈련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이런 식으로 걸러낸 결과로서의 ‘내추럴’ 훈련법, 아니 사실 그냥 좋은 훈련법이 아이러니하게도 PED 사용자들에게도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덧붙여야 하겠다. 참가하는 시합의 테스트의 수준에 따라, 주당 300mg이든, 500mg이든, 3,000mg이든 고정된 용량 하에서 일종의 ‘수퍼 내추럴’로서 ‘내추럴’ 훈련자들과 거의 같은 원칙에 따라 운동을 하면 될 테니 말이다. 이를 테면, IFBB 프로 보디빌더인 John Jewett을 보라. 테스토스테론, 마스테론, 성장호르몬, 그리고 인슐린을 중심으로 해서 근성장이 계속 일어나는 수준의 용량을 확인 후 그 용량에서 더 무리하며 늘리지 않고, Dr. Hatfield 때부터 이어진, mg과 볼륨을 함께 늘리는, 고전적으로 PED 사용을 전제한 훈련법을 따르는 대신, 훈련 효과가 있으며 지속 가능한 볼륨을 설정해 훈련한다(볼륨이 늘어날 때도 있지만, 이것은 볼륨을 과부하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지, mg에 따라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두에 든 Earth Crisis의 유비로 다시 돌아가보자. Earth Crisis의 Firestorm EP 이후 하드코어 밴드들과 메탈 밴드들이 브레이크 다운을 더 자주, 잘 쓰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로무새’적 관점을 통해 PED 사용을 전제한 정보들을 제외한 좋은 ‘내추럴’ 훈련법에의 인식이 내추럴 훈련자들은 물론 PED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훈련도 개선 시키는 것이다.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잡문 #19 - 질문들

1. 훈련 효과를 ‘더’ 빨리 얻는 것이 가능한가?

 Biological individuality는 실재한다. 그리고 훈련 효과라는 것은 결국 훈련이라는 자극에의 적응, 그러니까 생리적 현상이다.

 이 적응의 속도 또한 개인마다 다른, 고유한 성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각 훈련자 개개인마다 훈련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 걸리는 기간은 다 다르고, 이것을 ‘더’ 단축 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오히려 좋은 훈련 계획,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은 각 개개인이 타고난 적응의 속도에 맞추어 훈련 효과가 일어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전부 아닐까? 타고난 적응 속도에 맞추어 훈련 효과가 일어나는 데에 방해가 되는 병목Bottleneck들을 제거해주는 것이 계획, 프로그램의 효용인 것 아닐까? 애초에 약하고 성장이 더딘 사람이 강해지고 ‘더’ 빨리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라 말이다.


2. 생존자 편향에 기초한 의심이 적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생존자 편향은 피트니스 산업 종사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만 생존자 편향에 기초한 의심을 적용한다는 것이지만.

 사실, 생존자 편향에 기초한 의심을 말 그대로 모든 피트니스 유행에 적용할 수 있지 않나?

 주기화? 사실 동구권 스포츠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기초로 나온 것 아닌가?

 선형 주기화? 사실 PED 사용량을 계속 늘려가며 근육량도 늘려갈 수 있는 리프터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부상을 입지 않은 이들을 기초로 나온 것 아닌가?

 비선형/동시적 주기화? 여러 요소들을 한번에 훈련해도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 훈련 효과를 보는 타고난 이들을 기초로 한 것 아닌가?

 고볼륨? 결국 피로와 오버트레이닝의 주된 요인은 높은 볼륨인데, 고볼륨에서 살아남은 이들만 볼륨을 찬양하는 것 아닌가?

 고반복? 고볼륨과 마찬가지로, 피로를 버티고 살아남은 이들만 이것을 지지하는 것 아닌가?

 저볼륨? 훈련을 통해 얻는 긍정적 효과가 워낙 커서, 적은 훈련으로도 큰 효과를 얻는 이들만 지지하는 것 아닐까?

 저반복? 1년 365일 고중량을 사용해도 부상을 입지 않는 이들만 살아남아 이걸 지지하는 것 아닐까?

 대체 생존자 편향에 기초한 의심은 어떤 수준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인가?


3. 훈련 계획이 ‘과학적’일 수 있는가?

 사람들이 식습관과 관련된 연구들을 보고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 때에, 가장 흔히 드는 근거 중 하나는 연구 샘플들이 자신의 식습관에 대해 직접 보고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RPE는 그 개념 상 훈련자가 직접 보고하는 지표이다.

 과학적 방법론에서 중요한 것은 변수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쇠질 훈련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너무도 많아 통제가 어렵다. 심지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동료나 친구와의 다툼, 연인과의 이별 같은 것도 훈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변인 통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도무지 ‘과학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누군가 느낌 따라 잘 하고, 잘 가르치는 게 전부인, ‘기예’의 영역에 있는 것 아닌가?


4.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사실 가장 쉬운 것 아닌가?

 특히, 근력 수준이 딱히 높지 않은 경우, 쇠질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쉬운 게 없지 않나? 다루는 절대 중량이 낮은 경우에 0~2 RIR 세트도 엄청나게 많이 할 수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도 평생 무거운 무게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주당 세트 수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안다. 

 그리고 Broderick Chavez는 PED를 사용하는 보디빌더의 주당 세트 수에 대한 일반적인 추천 사항으로 80~120 세트 정도를 이야기한다. 모든 부위, 모든 운동을 합쳐서 80~120세트이다. 주 5일 하면 일별 16~24세트 정도가 된다. 내추럴에, 딱히 타고난 재능이 없는 이가 이보다 많이 할 이유가 있을까? ‘열심히’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5. 어째서 쇠질을 하는 사람들은 더 ‘과학적’인 척하려고 노력하는가?

 이 질문은 사실 ‘Stress Index’ 개념을 보고 든 생각이다. 정말 ‘과학적’이고 싶다면 그냥 4~6주마다 혈액 검사를 해서 ALT, AST 수치 같은 것을 보면 되는 것 아닌가? 혈액 검사를 할 재정적인 여유가 없다면, 애플 워치 같은 것으로 HRV라도 계속 기록해서 추이를 지켜보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그저 쇠질이라는 것이 애초에 잘할 사람이 느낌 따라 잘 하는 ‘기예’임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가?


2024년 9월 13일 금요일

잡문 #18 - 끔찍한 편견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어떤 피트니스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고민할 때에, 그 사람의 배경을 확인해본다. 사실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나름 논리적으로 보이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제할 때에, 1) 스포츠 관련해서 그 사람의 성과와 2) 학벌을 본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2번 항목에 대해 이상하게 여길 수 있지만, 1번이 항상 최우선적인 기준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심지어 성적이 엄청나게 좋지 않아도, 실제 해볼만한 것을 다 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니까.

 어찌 되었든, 내가 학벌로 ‘거른’, 딱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피트니스 전문가는 둘인데, Dr. Brad Schoenfeld와 Dr. Milo Wolf이다. 물론 내가 Lyle McDonald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배경에 기초한, 편견에 가득 찬 결과이지만 말이다.

 우선 Schoenfeld는 Rocky Mountain University의 *온라인 코스*로 박사 학위를 땄다(https://www.lookgreatnaked.com/blog/my-journey-to-a-doctoral-degree/). 정확히 이야기하면 온라인 과정이 섞인 프로그램이겠지만, 풀 타임 직업과 병행 가능한 수준의 ‘온라인 코스 병행 박사 프로그램’의 존재는 놀라울 따름이다. 맹검법 따위는 무시하던 Schoenfeld의 과학적 자세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Wolf의 경우는 Solent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무려 130개 대학 중 105위나 하는 곳이다(https://www.thecompleteuniversityguide.co.uk/universities/solent-university-southampton). GPA 기준으로는 2021년에 61개 대학 중 55위다(https://www.timeshighereducation.com/news/ref-2021-sport-and-exercise-sciences-leisure-and-tourism). Lengthened partial과 함께, 스트레칭이 최고라고 주장하며 근비대 훈련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과감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가끔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Dr. Scott Stevenson 같은 사람, 그러니까, 아마추어 마스터스 보디빌딩에서 미국 국내에서 높은 수준으로 경쟁 했었고, 무려 조지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딴 인물이 20년도 넘게 무료, 또는 낮은 가격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텍스트나 팟캐스트로 제공해주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Schoenfeld야 연구를 ‘많이’ 한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해도, Wolf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들을 필요가 있는가?

 물론,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편견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운동생리학은 공학이나 경성 과학 같은 성격의 학문이 아니다. 학벌을 안 볼 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