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8일 수요일

잡문 #25 - 이상한 생각들 #3

 #1 장르의 완성

 최근 Wagner Ödegård의 음악을 들으며 든 생각으로, 장르의 완성이라 부를 만한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Wagner Ödegård의(그리고 그의 다른 프로젝트인 Tomhet과 Wulkanaz의) 음악은 분명 듣기 좋다. RAC, 펑크 같은 느낌을 기초로, Burzum부터 이어진 ‘앳모스피릭’한 느낌(사실은 전자 음악을 재현한 것뿐일 수도 있지만)을 낼 때도 있으며, Darkthrone의 Transilvanian Hunger 시절 같은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기도 한다. 프로덕션도 Graveland 같는 밴드의 느낌도 나는 것 같을 때도 있고 그렇다.

 정말 듣기 좋지만, 어디선가 다 들어본 것 같다는 것이다. 더 나은 것은 없고, 근본적으로는 같지만, 약간의 개성 덕에 듣기 좋은, 그런 느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의 완성’이 소셜 미디어 시대를 거치며 드디어 파워리프팅, 그리고 보디빌딩 훈련법의 영역에서도 일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연 파워리프팅 훈련법의 ‘메타’라고 할 것에 더 이상 바뀔 것이 있을까? 2010년대 중반부터 소셜 미디어 상의 유행에 따라 DUP가 유행하고, 그 이후엔 모두가 블록 주기화에 치우쳤다가, 왜인지는 몰라도 근비대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유행한 이후, 2020년대에는 모든 요소들이 적당히 섞인, 논리적으로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훈련법이 정착한 것 같지 않나?

 보디빌딩 훈련법도, 소셜 미디어 상 피트니스 컨텐츠의 범람으로 PED 관련된 정보까지 광범위하게 공유된 덕에 더 이상 혁신적으로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이를 테면 John Jewett이나 Dr. Todd Lee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더해 보다 ‘혁신적’인 것이 나올 여지가 있어 보이는가?

 세부적인 디테일, 실천 방법 등의 변화는 계속 있겠지만, 이건 말 그대로 상위 1%에서 경쟁하는 리프터들에게나 도움이 될, 지극히 개인화 되어 있는 것이고, 죽을 때까지 중급자 수준에 머물 재능 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큰 의미 없는 정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의 완성’ 덕에 이미 완성된 ‘메타’에 충실한 사람을 고용해 몇 번의 ‘매크로 사이클’만 함께 하고 나면, 더 이상 무언가 더 알아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닐까?



 #2 근비대 훈련 = 일반적 근력General Strength 훈련?

 특정 동작에서의 근력은 특이한 적응이라는 것은 이제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적 근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일반적 근력’을 위한 훈련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있긴 하다. 평범한 근비대 훈련이 그것이다. 근육이 커지면 당연히 근육이 내는 힘도 커지니까. 그리고 최대한의 근비대를 위해 훈련하면 결국 다양한 관절 각도, 다른 스트렝스 커브를 가진 다양한 동작들, 다양한 반복 횟수 구간들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오히려 특정 동작들(흔히 파워리프팅 종목에 오버헤드 프레스가 추가된다)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다양한, ‘일반적’인 상황들에 대해 저항 운동을 수행하게 되는 것 아닐까?

 여기에서 ‘근비대 훈련’이 보디빌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디빌딩은 개념 상 보디빌딩에 특화된 근비대 훈련을 포함할 뿐, 근비대 훈련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저 미용 목적으로, 몸이 좋아지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훈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흔히 보이는, 보디빌딩 훈련에서 시합과 관련된 부분들을 거의 다 제외한 훈련 방식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취미로 다른 스포츠 – 일상에서 개인적으로 흔히 접하게 되는 사례는 골프, 테니스, 그리고 (웃기지만) 주짓수다 – 를 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힘을 좀 더 기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경우, 그냥 피로를 최소화하는 근비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행동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사-파워리프팅 프로그램이 아니라 말이다. 


댓글 4개:

  1. 외국의 근비대/보디빌딩에 대한 장르적인 완성은 이미 80년 아놀드때 완성되었지만(개인적 생각) 한국의 선수님과 헬창님들이 만들어가는 k근비대 장르는 아직 걸음마 단계죠

    많은 선수님들이 한국인이라는 특정 인종의 신체 구조와 역학은 다른지 어깨 세미나 스쿼트 세미나 데드 벤치 등등 온갖 세미나를 열어서 개개인의 논리를 설파하고 계시니까요

    물론 선수님들 따라 헬창님들도 지지 않고
    구글에 how to ??? "딸깍"하면 나오는 외국인들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다이렉트하게 음소거하고 영상만 봐도 알아들을 정도로 간단히 설명 해주는것도 온라인에서 열심히 외회전 내회전 회전 회오리슛 하면서 키배도 뜨고있고

    외국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도 한참전에 아놀드 디볼 씹어 먹을때 결론 난걸로 뒤늦게 싸우고 신박한 이론까지 나오는거 보면

    헬스 pt는 사실 운동을 가르쳐주는것 보다 책펴고 영어 수업을 하는게 맞는거 아닌가 하는 사대주의적 생각을 하게되네요

    뭐 이런 아직 걸음마 단계인 k근비대/k보디빌딩도 kpop,k드라마 처럼 글로벌 선두주자가 될 날이 올수도 있겠죠?라는 "이상한 생각"을 저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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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선, 조금 이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근비대 훈련법도 사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법 많은 개선들이 있었다고는 생각하는데, ‘프로그램’ 관점에서는 보디빌딩 시합을 뛰지 않는 한 별로 더 깊게 파고들어갈 게 없어서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냥 동네 헬스장에서 근비대만 하는 정도면 Lyle McDonald의 Generic Bulking Routine 같은 것 정도 이상이 필요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죠. 운동 실천 차원에서 신체 구조, 역학을 따지는 것은 맞는 방향, 필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건 뭐 약점 부위가 드러날 만큼 높은 수준의 ‘선수님’들이나 필요한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긴 합니다.

      영어권 애들도 항상 신나게 싸우고 있고 말이죠. 한동안 무지성으로 고볼륨을 추종하다가, 요즘은 또 (근비대 목적일 때) 빈도가 중요하니 뭐니 하고 있는 데다가, ‘Lengthened partial’ 추종자들과 그 반대 세력 간에 큰 의미 없는 디테일들을 두고 벌어지는, 이데올로기 대결이 펼쳐지고 있단 말이죠.

      사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보디빌딩 시합을 나가진 않지만 미용과 건강을 위해 쇠질을 하는 분들이 소비자들의 대다수임을 고려할 때에, 적당히 근비대 목적 중급자 수준의 프로그램 정도만 가지고 약물과 함께 하는 피트니스 패키지를 파는 게 대중의 수요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이 아닌지? 이 방향으로 가려면 테스토스테론과 성장호르몬 처방전을 쓸 권한이 있는 인적 자원이 필요해지니, 이게 부족한 기존 시장 참여자들이 거부하는 것에 더해, 처방전을 쓸 수 있는 인적 자원 – 사실, 의사죠 – 들에게 딱히 상기한 방향대로 행동할 경제적 유인이 없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사회는 모두가 부자들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사회인 것 같은데, 정작 여러 약물들을 포함한 건강 패키지로서 ‘Enhanced lifestyle’이라 할 게 아직 유행하지 않고 있다는 게 사실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Peter Attia 같은 사람 책이 번역되어 나오고, 이제 핏플루언서들도 점차 그 방향으로 가긴 하겠죠? 뒤늦게 스타틴이나 메트포르민이 유행해도 웃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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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단 이미 캐치하셨겠지만 제 기준에서 해외에서는 근비대 훈련법이 어느 정도 장르적으로 완성됐다고 보는 이유는 말씀하신 대로 미용이나 건강 그리고 약간의 재미나 정신적 육체적 보충을 위해 운동하는 취미 수준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에요 다만 제가 이걸 언급하면서 맥락적인 설명이 좀 부족했던 것 같네요

      역학이나 생체 구조 같은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일반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최적화하느냐"보다는 "얼마나 꾸준히 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근육의 기시나 정지 같은 기본적인 개념만 알아도 충분하다는 거죠 사실 이런 걸 아는 것만으로도 헬스장 다니는 사람들 중에선 꽤 아는 축에 속하고요

      그리고 피트니스 논쟁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저는 이걸 두 가지로 나눠요
      하나는 자신이 믿는 방식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이나 교육 같은 걸 판매하기 위해 벌이는 '상업적 논쟁'인데 전자는 결국 자기 합리화 하느라 시간 낭비하고 별로 얻는 건 없는데 오히려 후자한테 직간접적으로 돈을 쓰게 되는 사람들이죠 반면 후자는 일부러 논쟁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승자들이고요

      마지막으로 약물 패키지 같은 건 이미 상류층 사람들은 다들 하고 있지 않나요? 연예인들만 봐도 외모 관리에 쓰는 돈이 어마어마하고 헐리우드 스타들이 PRP 요법 한다는 뉴스도 나왔던걸로 아는데 얼굴에 그렇게 돈 쓰고 그런 걸 하는데 몸은 안 챙긴다고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한국 시장에서 이런 게 덜한 이유는 아무래도 유교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죠 법적 윤리적으로 약물 사용에 대해 꺼려하는 분위기인데 이번에 나온 식욕억제 주사나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광고하는 콜라겐 비타민 영양제 이런 건 도핑 수준으로 섭취하면서도 괜찮다고 보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기준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 부자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퍼질 거라고 봐요

      사실 뉴스에 잠깐 나온 재벌총수의 립밤이나 등산복이 품절되는 나라인데 누군가 이 흐름에 불을 붙이면 금방 대중화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또 반대로 상류층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전유물로 남기려고 막으려는 움직임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건 약간 음모론적인 얘기지만요 어쨌든 우리나라 의사들도 상류층에겐 그냥 처방전 써주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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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교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팔뚝만으로는 아직 유행이 어려운 걸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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