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는 영화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임을 밝힌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내 인생 최고의 영화 5편은 『아드레날린24』, 『아드레날린24 2』, 『올드 보이』, 『좋은 친구들』, 그리고 『파이트 클럽』이다. 그저 유명하거나 폭력적이면, 혹은 둘 모두인 경우에 무작정 좋아한다는 뜻이다. 감상, 또는 평론과 관련하여 별도의 고등 교육 학위도 없고, 학부 전공이 사회학과 철학이었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언급할 만한 배경일 것이다.
길게 썼지만, 사실 변명이다. 이 글이 아무 의미 없는 글이라는 것에 대한 변명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조커: 폴리 아 되』 감상문을 쓰는 이유는 사실 하나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평론가들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니 하는 헛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평범한 영화일 것이고, 주제 넘게 평론가와 일반 소비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장면이 나올 때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완결성을 좋아하며, 『조커: 폴리 아 되』는 전작인 『조커』의 서사를 이어 받아 깔끔하게 완결 시켰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시청자의 실망을 의도하고 있다. 전작은 주인공 아서 플렉의 불행과 불운으로 시청자를 압박하다가, 조커로의 각성과 폭력, 살인을 통한 해방감을 주었다(이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떠나서 말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로서 행동하는 장면들은 망상 속 뮤지컬이 대부분이고, 현실 법정에서도 조커 흉내만 낼 뿐이다. 나는 이 영화가 이를 통해 전작에서의 조커를 그저 망상, 또는 연극으로 만들며(또는, 연극으로 인식 시키며-있어 보이는 말로는 ‘소격 효과’일 것이다) 전작의 해방감을 기대한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실망 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실망감을 통해 얻는 효과는 전작과 이 영화를 연결해서 보았을 때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수미상관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의 구성이 클라이맥스의 해방감까지 시청자를 고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었다면,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의 허탈함까지 시청자를 하강 시킨다. 즉, 전작의 시작 지점, 아서 플렉이 바닥을 치던 시점에 시청자가 느끼던 감정까지 다시 되돌린다는 것이다.
수미상관 이야기가 나와서 언급해야만 할 것이, 이 영화가 전작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전작에서 주인공이 쓰러진 상태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이 영화도 주인공이 쓰러진 상태로 끝난다. 전작에서 조커로의 각성이 3명의 취객들이 가하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가 허상임을 인식하는 것도 3명의 간수들이 가하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예 전작의 센세이셔널한 장면이었던 화장실에서의 춤 장면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서는 그 후 아서가 분장을 지우는 장면을 보여주고, 조커로 각성하여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는 장면에 대해서는 조커이길 포기하고 리를 찾아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대비되어 제시된다. 전작에서 시청자들을 고양시킨 모든 장면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반대되는 장면을 보여주어 의도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차적인 감정의 침잠, 그리고 수미상관을 고려한 연출(상승과 하강)을 통해 얻는 새삼스러운 재인식이 있었다. 바로 이게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게 실로 걸맞는, 개연성이 있는 서사라는 것이다. 전작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한편, 머릿속에서는 ‘결국 불행과 불운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정신질환자가 미쳐서 사람 죽이고 수감된 것 아닌가? 이게 만화책 속 수퍼 빌런이 될 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는 이를 다시금 상기 시킨다. 이에 더해 이 영화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영화 속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현상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제목부터 그렇고, 아무 맥락 없이 터지는 폭탄 테러,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사건과 이를 주도하는 인물의 존재도 그렇다. 이 영화 속 세상에서는 아서 외에 누구든 조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조커를 소비해주고, 숭배하며, 성적으로 욕망하는 리의 존재는 이 지점을 더더욱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아서 플렉은 그저 외로움과 소외가 개인을 어떻게 만드는가 보여주는 인물이 되며, 전작에서의 상승과 이 영화에서의 추락을 통해 하나의 캐릭터로서 완결된다.
영화 속 세계에서 아서는 모든 ‘억까’란 ‘억까’는 다 당하니, 이 영화 시리즈는 구체적으로 외로움과 소외를 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전작과 이 영화를 사회 비판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어렵다. 현실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의 원인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고, 사회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될 수도 있으며, 실연의 경험이 될 수도, 거절에 대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그리고 아서는 전작과 이 영화에서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을 다 당한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외로움과 소외는 결국 정신병을 부르고, 폭력과 파괴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말이다.
이에 더해 나는 전작과 이 영화에서의 ‘사회 비판’은 현대 미디어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느꼈다. 배경이 198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아서가 출연하게 되는 TV쇼는 마치 현대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매체처럼 그려진다. 애초에 아서가 조그마한 코미디 클럽에서 공연한 영상이 남아 TV쇼에 오르는 것 자체가 영상 촬영과 공유가 쉬운 현대에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아서의 재판은 ‘세기의 재판’으로 명명되어, 적어도 카메라 안에 비춰지는 이 영화 속 세상 사람들이, 현실의 사람들이 유명한 사건에 대한, 또는 유명인이 연루된 재판의 과정, 이를 테면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재판 과정을 소비했던 식으로 아서의 재판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영화 속 세계에는 아서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언급까지 나온다. ‘불특정다수가 (현대의 미디어를 통하여) 그저 쾌락을 위해 누군가의 외로움과 소외에 따른 울분을 소비하는 것 – 이것이 조커를 낳는 단초가 된다’ 라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재미있게도, 만화에서의 조커는 실로 모범적인 극장형 범죄자 아닌가?
다시 아서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하강의 종착지는 앞서 언급한대로 아서가 쓰러져 죽어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외로움과 소외로 미친 인간의 종착지는 결국 파멸 뿐이라는 뻔한 사실이 다시금 시청자들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비벼진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해하려 노력해주는 타인 없이는 미쳐버린다. 그리고 전작과 이 영화에서 강조된다고 느끼는 것은, 소비는 이해가 아니고, 숭배도 이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라는 캐릭터에서 보이듯 페티시도 이해가 아니다. 아서가 타인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있지만(적어도 아서는 노력한다 – 난쟁이 개리의 존재가 이를 보여준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아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부조리하게도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죽음만이 기다린다. 이해하려는, 이해 받으려는 노력을 해도 실패할 수 있는데, 사람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젠장,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 너야?
영화를 보고 감상평까지 남기는 한국의 "시네필"은 두 종류라고 하죠
답글삭제빨간 안경을 의식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않는척 하는 사람
시네필 다시말해 고작 영화를 자주보는 일반인이 영화 보면서 타인의 의견 자신과 1도 관계없는 영화 업계에서 인지도 있다는 권위적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고 감상평을 수정하는것 보면 뭔가 뭔가임
허영심 들어서 본인을 시네필을 넘어선 세미 영화평론가라고 생각한다면 휘둘리지 않는 줏대 고집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냥 보고 본인 취향에 재밌으면 그걸로 되는거고 재미 없었다면 감독 어머니 안부 물으며 쌍욕한번 하고 돈날렸네 하면 되는거 아닌가?하는 그저 일반인인 저는 이해할수 없는 세계인듯(진짜모름)
곁다리로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답글삭제sns에서 "독서광" "독서 애호가"들이 날뛸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어질어질하네요
한강 작가님은 대단하죠. 옛날에 고은 같은 악당이 노벨 문학상 후보네 어쩌네 하던 시절을 기억하던 틀딱으로서는 참 세상 많이 달라졌구나 이런 걸 느낍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문학과 거리가 멀어서 한강 작가님 글은 제대로 안 읽어봤지만 ㅋㅋ… 전 쉽고 재밌는 게 좋아서 딱 박상영 작가 같은 분이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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