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he Lion’s Daughter – Bath House
The Lion’s Daughter는 미국 미주리주의 프로그레시브 슬럿지 메탈 밴드이다. 개인적으로는 Mastodon의 성공을 전후해 유행하기 시작한 소위 ‘프로그레시브’ 슬럿지 메탈 전반에 딱히 취미가 없어서 이 밴드도 최근에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내 생각에, 슬럿지 메탈에서 ‘프로그레시브’라는 용어는 그냥 어떤 밴드의 음악이 팝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The Lion’s Daughter도 마찬가지다. 신스팝과 호러 펑크의 영향이 크게 느껴지는 음악을 한다. 슬럿지 밴드이니 당연하게도 Black Sabbath부터 이어져 온 헤비 메탈 리프도 능청스레 나오고, 심지어 블랙 메탈 리프 같은 것도 섞어 놓았다. 이 밴드의 근사한 점은 이런 온갖 요소들이 제법 자연스럽게, 또 듣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게끔 나온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Pet Shop Boys와 Shining, 그리고 Mastodon을 한번에 듣는다고 생각해보라. 중언부언 써놨지만 재미있게 들었다는 소리다.
2. Dissimulator – Lower Form Resistance
Dissimulator는 캐나다의 스래시 메탈 밴드로, 무려 Chthe'ilist의 멤버들이 하는 밴드이다. 메탈 팬들은 보통 올드스쿨에만 천착하는 것으로 악명 높지만, 이것도 결국 2010년 중반 이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010년 중반 이후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을 통해 그 ‘올드스쿨’ 장르들에서도 훌륭한 밴드들과 작품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Vektor가 대표적 예시이다.
Dissimulator도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인간미 없는 테크니컬 스래시로, 동향의 Voivod, 그리고 앞서 언급한 Vektor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어떤 부분은 Cynic이나 Atheist 같은 밴드처럼 들리고, 또, 이게 스래시인가? 헷갈리는 부분들도 있다. 이를 테면 Automoil & Robotoil 같은 곡은 중반부에 심지어 팝 펑크처럼 들리는 리프를 포함해 여러 리프들이 나오다가, 베이스 솔로가 나오고, 그 이후에 제법 긴 브레이크 다운이 이어진 뒤 곡을 마무리하는 리프가 나온다. 그 이전에는 데스 메탈처럼 들리는 리프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여러 요소들이 각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곡마다 응집력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야말로 계승과 발전 그 자체다.
3. Wintersun – Time II
사실 개인적으로는 멜로딕 데스 메탈과 포크 메탈을 섞은 부류 전반을 딱히 좋아하지 않기에, Wintersun의 음악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온갖 이유로 앨범 발매를 10년도 넘게 미루어 온 Jari Mäenpää의 거의 밈적인 행보는 제법 웃긴 것이었기에, 이 앨범도 나오자마자 들어봤다.
확실히, 문외한인 내 귀에도 음향적인 부분, 그러니까 프로덕션이라고 할 부분의 완성도가 매우 높게 들린다. 하지만 딱 그 정도이다. 소품이나 다름 없는 1번, 4번 트랙을 제외하면, 고작 네 곡이 있을 뿐인데, 2번 트랙 The Way of the Fire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기묘한 감성의 멜로디, 한편으로는 유럽 쪽 포크 메탈에서 흔히 쓰는 멜로디 같으면서도 묘하게 동양풍인 멜로디가 드럼의 엇박과 함께 잊을 만하면 나온다. 이게 ‘에픽’이라면 중, 고등학교 음악 시간 중 국악을 배우던 시간들도 ‘에픽’한 시간이 될 것이다.
물론, The Way of the Fire는 매우 좋았다. 그냥 이런 곡만 네 곡 채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4. Arghoslent – Hornets of Pogrom
‘에픽’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김에, Wintersun보다 에픽한 밴드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미국 남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인 Arghoslent조차 Wintersun보다 에픽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도대체 이 밴드의 이름이 (극단적인 인종주의를 주제로 한다는 사실 외에) 어째서 항상 인터넷 세상에서 언급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앨범을 들어야 한다. 도무지 이런 종류의 음악, 이런 종류의 리프를 만드는 밴드가 없기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메탈 역사에 미쳐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에 Deceased가 무려 80년대부터 있었다고 강조하며, Arghoslent가 그렇게까지 독창적인 밴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 헤비 메탈과 컨트리 음악을 섞은, 이 기묘한 리프들과 멜로디를 다른 밴드들이 도무지 따라하지 못 한다. 이를 테면 Manacled Freightage의 2분 20초를 전후하여 나오는 리프와, 그 이후 전개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트랙인 Hornets of the Pogrom과 The Grenadier까지 이어지는, 선동적이며 ‘의기양양함’ 그 자체인 이 느낌을 다른 밴드들의 음악에서 느끼기가 쉽지 않다. Hornets of the Pogrom 같은 곡은 심지어 리프와 솔로, 드럼 비트만으로도 서사시처럼 느껴지며, 전반적으로 컨트리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멜로디는 이들을 매우 ‘포크 메탈’로 만든다고도 생각한다. 문제는 이 밴드가 영화 『국가의 탄생』의 결말 같은 것, 또는 『의지의 승리』 같은 것을 음악으로 재현하려는 미친놈들이라는 것 뿐이다. 이것들은 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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