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잡문 #21 - 무책임

 쇠질 훈련법과 관련하여 가장 무책임한 말은, 적어도 내 생각엔, 이것이다:

 ‘근비대를 해라’

 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근비대는 특이성에 구애를 매우 덜 받는, 매우 ‘관대한’ 적응이니 말이다. 흔히 ‘과학적’으로 밝혀진 근비대 훈련 강도의 범위부터 생각해보면, 무려 5~30RM이다. 효과가 있는 볼륨 구간은 (최적의 볼륨 구간이 아니라, 훈련 효과가 있는) 말 그대로 주 당 부위별 1~2 세트 정도부터 무려 50여 세트 사이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 이런 상황에서 ‘근비대를 해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5~8회 1~2세트부터, 25~30회 50세트 사이 어딘가를 해라 하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결국 훈련 계획은 빈도, 강도, 볼륨, 그리고 특이성이 모두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니(‘FITT’ 원칙이다! 고전 그 자체다!), 그저 근비대를 하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현재 훈련하는 방식, 그리고 훈련의 목적을 고려해 빈도, 강도, 볼륨, 특이성을 모두 고려하여 그에 따른 근비대 훈련을 계획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근비대를 해라’ 하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말인 것이다.

 그리고 위에 기초해 다른 무책임한 말들도 더 생각해볼 수 있다:

 ‘볼륨을 늘려라’

 ‘빈도를 늘려라’

 ‘스트렝스를 길러라’

 차라리 재능을 타고났어야 한다고 조언해주는 건 어떤가?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조커: 폴리 아 되』 감상

 우선 나는 영화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임을 밝힌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내 인생 최고의 영화 5편은 『아드레날린24』, 『아드레날린24 2』, 『올드 보이』, 『좋은 친구들』, 그리고 『파이트 클럽』이다. 그저 유명하거나 폭력적이면, 혹은 둘 모두인 경우에 무작정 좋아한다는 뜻이다. 감상, 또는 평론과 관련하여 별도의 고등 교육 학위도 없고, 학부 전공이 사회학과 철학이었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언급할 만한 배경일 것이다.

 길게 썼지만, 사실 변명이다. 이 글이 아무 의미 없는 글이라는 것에 대한 변명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조커: 폴리 아 되』 감상문을 쓰는 이유는 사실 하나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평론가들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니 하는 헛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평범한 영화일 것이고, 주제 넘게 평론가와 일반 소비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장면이 나올 때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완결성을 좋아하며, 『조커: 폴리 아 되』는 전작인 『조커』의 서사를 이어 받아 깔끔하게 완결 시켰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시청자의 실망을 의도하고 있다. 전작은 주인공 아서 플렉의 불행과 불운으로 시청자를 압박하다가, 조커로의 각성과 폭력, 살인을 통한 해방감을 주었다(이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떠나서 말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로서 행동하는 장면들은 망상 속 뮤지컬이 대부분이고, 현실 법정에서도 조커 흉내만 낼 뿐이다. 나는 이 영화가 이를 통해 전작에서의 조커를 그저 망상, 또는 연극으로 만들며(또는, 연극으로 인식 시키며-있어 보이는 말로는 ‘소격 효과’일 것이다) 전작의 해방감을 기대한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실망 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실망감을 통해 얻는 효과는 전작과 이 영화를 연결해서 보았을 때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수미상관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의 구성이 클라이맥스의 해방감까지 시청자를 고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었다면,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의 허탈함까지 시청자를 하강 시킨다. 즉, 전작의 시작 지점, 아서 플렉이 바닥을 치던 시점에 시청자가 느끼던 감정까지 다시 되돌린다는 것이다.

 수미상관 이야기가 나와서 언급해야만 할 것이, 이 영화가 전작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전작에서 주인공이 쓰러진 상태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이 영화도 주인공이 쓰러진 상태로 끝난다. 전작에서 조커로의 각성이 3명의 취객들이 가하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가 허상임을 인식하는 것도 3명의 간수들이 가하는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예 전작의 센세이셔널한 장면이었던 화장실에서의 춤 장면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서는 그 후 아서가 분장을 지우는 장면을 보여주고, 조커로 각성하여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는 장면에 대해서는 조커이길 포기하고 리를 찾아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대비되어 제시된다. 전작에서 시청자들을 고양시킨 모든 장면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반대되는 장면을 보여주어 의도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차적인 감정의 침잠, 그리고 수미상관을 고려한 연출(상승과 하강)을 통해 얻는 새삼스러운 재인식이 있었다. 바로 이게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게 실로 걸맞는, 개연성이 있는 서사라는 것이다. 전작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한편, 머릿속에서는 ‘결국 불행과 불운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정신질환자가 미쳐서 사람 죽이고 수감된 것 아닌가? 이게 만화책 속 수퍼 빌런이 될 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는 이를 다시금 상기 시킨다. 이에 더해 이 영화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영화 속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현상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제목부터 그렇고, 아무 맥락 없이 터지는 폭탄 테러,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사건과 이를 주도하는 인물의 존재도 그렇다. 이 영화 속 세상에서는 아서 외에 누구든 조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조커를 소비해주고, 숭배하며, 성적으로 욕망하는 리의 존재는 이 지점을 더더욱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아서 플렉은 그저 외로움과 소외가 개인을 어떻게 만드는가 보여주는 인물이 되며, 전작에서의 상승과 이 영화에서의 추락을 통해 하나의 캐릭터로서 완결된다.

 영화 속 세계에서 아서는 모든 ‘억까’란 ‘억까’는 다 당하니, 이 영화 시리즈는 구체적으로 외로움과 소외를 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전작과 이 영화를 사회 비판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어렵다. 현실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의 원인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고, 사회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될 수도 있으며, 실연의 경험이 될 수도, 거절에 대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그리고 아서는 전작과 이 영화에서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을 다 당한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외로움과 소외는 결국 정신병을 부르고, 폭력과 파괴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말이다. 

 이에 더해 나는 전작과 이 영화에서의 ‘사회 비판’은 현대 미디어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느꼈다. 배경이 198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아서가 출연하게 되는 TV쇼는 마치 현대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매체처럼 그려진다. 애초에 아서가 조그마한 코미디 클럽에서 공연한 영상이 남아 TV쇼에 오르는 것 자체가 영상 촬영과 공유가 쉬운 현대에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아서의 재판은 ‘세기의 재판’으로 명명되어, 적어도 카메라 안에 비춰지는 이 영화 속 세상 사람들이, 현실의 사람들이 유명한 사건에 대한, 또는 유명인이 연루된 재판의 과정, 이를 테면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재판 과정을 소비했던 식으로 아서의 재판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영화 속 세계에는 아서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언급까지 나온다. ‘불특정다수가 (현대의 미디어를 통하여) 그저 쾌락을 위해 누군가의 외로움과 소외에 따른 울분을 소비하는 것 – 이것이 조커를 낳는 단초가 된다’ 라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재미있게도, 만화에서의 조커는 실로 모범적인 극장형 범죄자 아닌가?

 다시 아서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하강의 종착지는 앞서 언급한대로 아서가 쓰러져 죽어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외로움과 소외로 미친 인간의 종착지는 결국 파멸 뿐이라는 뻔한 사실이 다시금 시청자들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비벼진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해하려 노력해주는 타인 없이는 미쳐버린다. 그리고 전작과 이 영화에서 강조된다고 느끼는 것은, 소비는 이해가 아니고, 숭배도 이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라는 캐릭터에서 보이듯 페티시도 이해가 아니다. 아서가 타인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있지만(적어도 아서는 노력한다 – 난쟁이 개리의 존재가 이를 보여준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아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부조리하게도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죽음만이 기다린다. 이해하려는, 이해 받으려는 노력을 해도 실패할 수 있는데, 사람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젠장,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 너야?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잡문 #20 - '로무새'

 개인적으로는 어떤 개인에 대해 소위 ‘로무새’라 불리는 의심을 하는 것의 동기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누군가가 ‘페이크 내티’라고 했을 때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건 결국 취미인데다가, 취미에서 악한이 이기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 아닌가? 마치 영화 속 악역이 이기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도핑을 통해 얻을 경제적 이익이 큰 경우에, 도핑을 저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굳이 이것에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있는가? 도핑과 관련된 기만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월급을 받는 이들, 그러니까 검사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에게 있어 말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경제적 이익을 보지도 못하면서 굳이 ‘페이크 내티’ 짓을 한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내 기준에서 인간으로 취급해 주기도 어렵다. 굳이 사람 취급을 하며 신경을 써주어야 하나?

 이에 더해, 쇠질은, 적어도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한다면, 그저 약물 문화에 불과하다고도 생각한다. ‘내추럴’ 관련 조류가 있긴 하지만, 이게 쇠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중 음악 전체에서 스트레이트 엣지 하드코어 펑크가 차지하는 비중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유비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면, Earth Crisis는 멋진 밴드이지만, 이들이 대중 음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라. 쇠질 전체에서 ‘내추럴’ 관련 문화의 비중이 딱 그 정도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내가 ‘로무새’ 짓을 매우 열심히 하는 대상이 있긴 하다. 바로 쇠질 훈련 시스템과 방법론이 그 대상이다. 이 블로그에서 나는 계속 내추럴 훈련법과 PED 사용자의 훈련법은 다를 게 없다고 적었는데,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 말은 틀린 말이 될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좋은 훈련법이 있고, 좋은 훈련법은 내추럴과 PED 사용자 모두에게 좋다(얼마 전에 적은 파워리프팅 훈련법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덜 좋은, 안 좋은 훈련법도 있으며, 모든 훈련자들에게 딱히 좋지 못하지만, PED 사용자는 사용 약물의 종류와 복용량, 복용 기간을 늘려 어떻게든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덜 좋은 훈련법 중에는 PED 사용자 한정으로는 특정 PED 사용법에 따라 좋은 훈련법이 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로무새’ 짓의 예시 세 가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1. PED 사용에 의해 강제되는 훈련법

 우선, PED를 사용하기 때문에, PED의 효과에 의해 훈련자가 해야 만 하는 훈련들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Westside Barbell이 GPP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AAS는 적혈구용적률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혈압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 약물을 사용하는 파워리프터들이 선호하는 볼데논, 아나드롤 같은 것은 더더욱 그렇다. 장비 파워리프팅이라는 종목의 특이성을 생각해보라. 몸에 수분 보유를 많게 해주며, 파워리프팅 기어 내에 최대한 많은 양의 살(그게 근육이든, 지방이든, 수분이든)을 밀어 넣는 것이 더 많은 무게를 들게 해준다. 그리고 에스트로겐이 충분해야 관절도 덜 아플 것 아닌가? 그 결과, 테스토스테론, 볼데논 등이 더 많이 쓰이고, 어찌 되었든 1RM을 측정하는 일이니 경구제도 더 많이 쓰게 된다. 하물며 Westside Barbell은 매주 Max Effort 워크아웃에서 1RM을 잰다! Westside Barbell의 리프터들이 다른 부류의 리프터들보다 혈압 관련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 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이 위험을 약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더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심혈관계 운동을 하는 것이다. 즉, 유산소 운동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Louie Simmons는 그냥 일상적인 것에도 소련 훈련법 책 번역본에서 찾은 이름을 붙이길 좋아했다. 그냥 모두가 하는 고반복 훈련도 Westside Barbell에서는 Repeated Effort가 되거나, Repetition Method가 된단 말이다. 그렇기에, 혈압 때문에 쓰러져 죽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유산소, 또는 그 외 활동도 GPP가 된 것이다. 당연히 건강해지면, 강해진다. 여기에서 문제는 Westside Barbell의 리프터들이 건강하지 않았던 이유는 PED 오남용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2. PED 사용을 위해 하는 훈련법

 PED의 효과를 최대한 얻기 위해 하는 훈련법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동독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 청소년기 훈련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Broderick Chavez의 인터뷰에서 나온, 2차적인 정보이지만, 동독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 청소년기, 또는 훈련 커리어 초기에 극단적인 볼륨을 통해 오버트레이닝에 가깝게 훈련시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극단적인 훈련량을 버티는, 타고난 선수만 걸러낼 수 있음

 2) 극단적인 훈련량을 버티는 동안, 제한된 양의 내인성 호르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적응으로 선수의 몸에서 수용체와 관련 효소들이 상향 조절됨

 2)에 주목하라. 이를 통해, 극단적인 훈련량을 거친 선수들은 첫번째 ‘사이클’에서 극단적인 훈련량을 소화하지 않는 이들에 비해 더 큰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게 동독 시스템 하에서 코치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라는 것이다.


3. PED 사용을 통해 훨씬 나은 효과를 내는 훈련법

 정확하게 쓰자면, PED 사용을 전제하고, 이를 계획에 반영한 훈련법을 말한다. 모든 훈련법이 PED 사용을 통해 훨씬 나은 효과를 내니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는 Juggernaut Training System에서 한참 밀던 블록 주기화이다. 특히 ‘Accumulation’ 블록과 ‘Transformation’ 블록(정확하게는 ‘피킹’)의 경우 PED 사용을 통해서만 그 효과가 커지며, PED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굳이 추천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Accumulation 블록을 생각해보면, 평균 강도는 낮추고, 반복 횟수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PED를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리프터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도를 낮추고 반복 횟수를 올려 다른 에너지 대사 시스템을 사용할 분명한 이유가 없다. 하지만, PED를 사용하는 리프터의 경우, 사용하는 PED의 종류를 달리 하거나, 양을 줄인 상태라면 강도를 줄일 이유가 있고, 반복 횟수를 늘릴 이유도 있다. 물론 Accumulation 블록이 PED를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리프터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적으로 훈련되도록 마이크로 사이클의 부분으로 짜서 넣으면 될 것을 따로 할 이유를 근사하게 주장할 만한 근거도 없다.

 애초에, 훈련 효과는, 훈련자가 꾸준히 일정 이상 강도와 볼륨으로 운동한다는 전제 하에, Accumulation 블록이 아니더라도 축적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에 더해 피킹은 그 개념상 PED 사용의 필요성을 더 암시한다. Chad Wesley Smith 의 피킹에 대한 강조가 특히 그런데, 약물을 사용하는 리프터의 경우 시합이 다가올 때에 사용하는 약물의 총량이 늘어나고, 직접적으로 단기적 퍼포먼스에 영향을 주는 약물들(경구 AAS와 그 외 향정신성 약물)의 사용이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연히 피킹 블록 이전과 이후의 기록이 많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전체적인 볼륨을 과도하게 줄이는 방식으로 피킹을 계획하는 경우는 PED 사용이 전제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게도 매 세션마다 아나드롤과 암페타민을 사용할 수는 없기에, 90% 이상 강도 사용의 빈도와 볼륨을 매우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피킹 역시 PED를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리프터에게도 적용이 되는 개념일 수 있다. 리프터 개인이 지금까지 특정 강도와 볼륨, 빈도에서 보여준 SRA 커브가 있어, 코치와 상의하여 피로를 줄이기 위한 약간의 볼륨과 강도 조절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CWS가 주장하던 마법 같은 피킹은 PED 없이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상기 세 가지 예시들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PED를 사용하는 경우, 표면적으로는 목적이 되는 스포츠에 있어 보다 특이하지 않은(덜 ‘specific’한) 훈련법이 사용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이성의 부족함이 사실 ‘로무새’적 관점에서 보면 PED 사용과 함께하는 스포츠에의 특이성임을 알 수 있다. PED의 영향 하에 퍼포먼스를 내는 것에 특화된 훈련인 것이다. 그리고, ‘로무새’적 관점을 통해 PED의 영향 하에서 퍼포먼스를 내기 위한 정보들을 걸러내어, 소위 ‘내추럴’ 훈련자들을 위한 훈련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이 과정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대 ‘Tested’ 파워리프팅 씬의 훈련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이런 식으로 걸러낸 결과로서의 ‘내추럴’ 훈련법, 아니 사실 그냥 좋은 훈련법이 아이러니하게도 PED 사용자들에게도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덧붙여야 하겠다. 참가하는 시합의 테스트의 수준에 따라, 주당 300mg이든, 500mg이든, 3,000mg이든 고정된 용량 하에서 일종의 ‘수퍼 내추럴’로서 ‘내추럴’ 훈련자들과 거의 같은 원칙에 따라 운동을 하면 될 테니 말이다. 이를 테면, IFBB 프로 보디빌더인 John Jewett을 보라. 테스토스테론, 마스테론, 성장호르몬, 그리고 인슐린을 중심으로 해서 근성장이 계속 일어나는 수준의 용량을 확인 후 그 용량에서 더 무리하며 늘리지 않고, Dr. Hatfield 때부터 이어진, mg과 볼륨을 함께 늘리는, 고전적으로 PED 사용을 전제한 훈련법을 따르지 않는 대신, 훈련 효과가 있으며 지속 가능한 볼륨을 설정해 훈련한다(볼륨이 늘어날 때도 있지만, 이것은 볼륨을 과부하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지, mg에 따라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두에 든 Earth Crisis의 유비로 다시 돌아가보자. Earth Crisis의 Firestorm EP 이후 하드코어 밴드들과 메탈 밴드들이 브레이크 다운을 더 자주, 잘 쓰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로무새’적 관점을 통해 PED 사용을 전제한 정보들을 제외한 좋은 ‘내추럴’ 훈련법에의 인식이 내추럴 훈련자들은 물론 PED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훈련도 개선 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