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 금요일

최근 들은 음악 단평 (12)

1. Goatmoon – Voitto Tai Valhalla, Stella Polaris

 

 이전에 Goatmoon의 Death Before Dishonour에 대해 심드렁한 평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2014년 작업과 2017년 작업을 들으며 크게 반성했다. BlackGoat Gravedesecrator는 제법 독창적인 음악을 하며, 인종주의 문제만 아니면 벌써 대성했을 것 같다는 게 현재 의견이다.

 두 앨범 중 좀 더 마음에 드는 것은 2014년작인 Voitto Tai Valhalla다. 세컨드 웨이브 블랙 메탈, 스래시, 펑크(사실 이 두 가지는 RAC에서 왔겠지만), 헤비 메탈, 민요 같은 멜로디들이 섞인, 실로 근사한 음악을 들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밴드가 보여주는 90년대 세컨드 웨이브 블랙 메탈 밴드들의 작법에 대한 헌사인데,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주제를 반복해서 소환하며 곡에 통일성을 주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앨범은 (물론 내가 라이트 리스너라서 예시를 잘 못 드는 것일 수 있으나) 묘하게 Burzum이 썼던 트릭들이 좀 드러나는 편이라는 감상인데, Way of the Holocaust Winds 같은 곡에서 키보드 주제 하나로 곡을 끌고 가는 부분이나, And the Tears of Our Fatherland Fall의 단순한 주제 하나를 계속 다시 소환해서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점이 특히 그렇다. Race of Heroes 같은 곡도 중반에 아예 다른 주제들로 갔다가 다시 초반부와 비슷한 주제로 돌아온 뒤, 보컬로 멜로디를 넣어주고 말이다.

 2017년작인 Stella Polaris는 더 노골적으로, 6~8번 트랙은 아예 어느 정도는 Emperor와 Gorgoroth 흉내내기로 느껴질 정도이다. 전반부도 전형적인 트레몰로 리프로 긴장감을 주다가 멜로딕한 헤비메탈 리드로 해소하든지 하는, 뻔하지만 싫어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차있다. 9번 트랙은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안 들으면 그만이다.


2. Lucifugum - On the Sortilage of Christianity(원제: Нахристихрящях), Клеймо эгоизма

 

 Devildom이 망한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망했고, Lucifugum 초기작들을 싼 가격에 팔고 있기에 구입했다. 1~4집 모두 구했고, 전부 즐겁게 들었지만, 기록은 1집과 4집만 하려 한다(이 두 앨범이 다른 두 앨범보다 더 좋다는/낫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으론 메탈과 클래식 음악이 무언가 연관 있는 양 하는 태도에 닭살부터 돋는 인간인지라, 소위 심포닉 블랙 메탈이니 하는 것에 대해 ‘심포니’보다는 영화 음악적인 영향이 크게 느껴지면서 키보드/신스로 락 밴드의 일반적 구성에서 낼 수 있는 성부를 초과한 다성부 메탈을 하는 것이라고 멋대로 적당히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Lucifugum의 첫번째 앨범은 정말 잘 만든 심포닉 블랙 메탈이다. 

 곡 구조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고, 제한된 수의 주제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멜로디 하나하나는 경쾌하다 못해 경박하고 모독적이고, 충분히 길이도 길어 지루할 틈이 없다. 다성부 음악으로서 여러 멜로디가 동시에 어울리는 부분들도 근사하다(메탈 덕후들은 ‘대위법’이라는 표현을 즐기겠지만, 나는 그런 평가를 할 정도의 음악 관련 교육 배경이 없다). 또 즐거운 점은, 이들이 신스 사용을 숨길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7번 트랙의 관악기처럼 들리는 무언가는 짧게,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긴장을 주는 ‘전자음’ 같은 용도로 쓰인다거나, 9번 트랙의 팀파니와 심벌즈 같이 들리는 무언가는 기타 리프의 피치 하모닉스 같은 용도로 쓰인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기타도 키보드에 밀려 반주만 하는 것도 아니다. 5번 트랙 (제목도 무려 Волки. ‘늑대들’이다! 유치하지만 ‘메탈’답다)은 중반 부분에 아예 심포닉 블랙 스래시(?)라 할 부분까지 나온다. 

 이들의 네번째 앨범인 Клеймо эгоизма은 다른 방향으로 즐겁다. 기본적으로 블랙 스래시인데, 중간중간 포크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에 더해 이들의 음악이 항상 그래왔지만, 보컬이 도드라져서, 마치 Vladimir Vysotsky의 음악 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뭐 ‘월드 뮤직’에 조예가 있어 아는 건 아니고 Vysotsky는 위대한 Vasily Alekseyev에게 헌정하는 노래를 냈기에 아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번역을 보면 전근대적 상징에 집착하는 실존주의적인 내용이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인데, 실로 구소련 출신다운, 그 어떤 거대 담론도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이 묻어나오는 것이 좋다. 원어민이 들으면 훨씬 감상이 깊어질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족으로 Клеймо эгоизма의 보컬은 무려 그 Roman Saenko가 맡았다. 괜히 드는 생각은 Drudkh는 Saenko의 성향에 흐린 눈을 해주는 이들 덕에 나름의 유명세를 누리는 반면, Noktunal Mortum과 이념적 차이 때문에 결별한 Lucifugum은 어째서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인데… 뭐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3. Mooncitadel – Stardawn Usurper

 

 ‘블랙 메탈’이라는 용어와 관련해 Transilvanian Hunger 시절 Darkthrone이나, Burzum의 Jesus’ Tod 같은 트레몰로 리프 중심의 미니멀한 음악이 밈처럼 따라붙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블랙 메탈이 태생부터 가지고 있던 Mercyful Fate나 Venom 등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말이다. 핀란드의 Mooncitadel의 2025년작은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 헤비 메탈의 영향을 숨기다 못해, 그냥 헤비 메탈 리프인 리프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렇게 정리해버리기엔 좀 아까운 앨범이긴 하다. 30분 조금 넘는 길이에, 총 4곡, 그 중 메탈 곡은 2곡에 불과한 구성도 좋다. 첫번째 트랙은 포크 스타일로, 두번째 곡을 위한 인트로이고, 다른 한 곡은 세번째 트랙으로 드럼과 전자음으로 이루어진 던전 신스 트랙이다. 메탈 트랙들도 듣기 좋은 주제들을 다시 들려준다든지, 멜로딕한 부분과 스래시 스타일 리프로 이루어진 부분을 대비 시킨다든지 하는, 블랙 메탈 듣는 이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가득하다. 내 생각에 유일한 결점은 메탈 곡 두 곡 모두 곡 마무리 즈음 곡 제목을 강렬히 외치는 것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점 뿐인데, 그조차 장르에 충실하다는 증거라고 주장 못할 것도 아니다.


4. Opeth – Blackwater Park

 

 이게 25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Radiohead와 Muse, Nirvana, My Bloody Valentine 정도나 듣던 십대 시절에 접했던 생애 최초의 메탈 앨범 중 하나이기에, 새삼스레 당황했다. 시간이 참 속절없이 빠르다고 할지.

 굳이 단평을 적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앨범이고, 다시 들어도 당연히 좋았다(아니, Gojira나 Mastodon은 이제 와서 다시 들으면 별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는 않은가?). 특히 The Funeral Portrait부터 Blackwater Park까지의 후반부는 새삼스레 다시 감명(?!)까지 받았다. 어쿠스틱 부분과 클린 보컬이 아무 맥락 없이 튀어나온다느니, Blackwater Park가 불필요한 반복 때문에 쓸데없이 길어진 곡이라느니 비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그게 좋단 말이다. 

 이에 더해 나이 먹고 느끼는 것 두 가지는, Opeth는 정말 한순간도 ‘데스 메탈’ 밴드였던 적이 없고, 굉장히 Mikael Åkerfeldt의 개인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는 밴드라는 것이다.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락과 사이키델릭, 포크 덕후가, Morbid Angel의 리프 샐러드와 Entombed(및 스웨디시 데스 메탈 밴드들의) 음향적 측면에 영향 받은 것을 더해 프로그레시브 락 복각을 하고 있는 게 Opeth인 것이다.

 그리고 위의 맥락에서 오히려 Opeth가 굉장히 메탈-적이라고 생각도 한다. Opeth의 음악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과거의 락 음악을 복각하면서도 펑크와 관련된 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웨디시 데스 메탈에서도 음향과 Dan Swano의 프로그레시브 덕후 같은 부분만 골라서 가져왔으니 말이다. 이 밴드가 결국 딱 중산층의 지루한 삶을 살 것 같은 이들이 안락의자에 앉아 들을 법한 음악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중음악의 ‘저항’이니, ‘해방’, ‘민중’, ‘공동체’, ‘진보’, 계급’ 등등 같은 멍청한 허례허식 없이 근사한 연주와 과장된 곡들로 그저 상품을 소비하는 청자만 남긴다는 점에서 나름 메타-적이고, 반-반문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요점은 뭐… 나는 Opeth가 좋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Opeth에 대한 감상도 그렇고, Goatmoon 같은 밴드가 펑크와 스래시를 지극히 반동적이고 끔찍한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끔 만드는 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 보면, 내가 그냥 펑크를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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