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Grenadier – Wolves of Trench
Arghoslent 카피 밴드로 유명해진 Grenadier의 2025년 신작이 나왔다. 이 밴드의 1집은 그저 인종주의 걱정 없이 듣는 Arghoslent의 대체재로서 묘사되는 경우가 잦았는데, 사실 듣다보면 묘하게 Arghoslent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약간 덜 데스 메탈 같다고 해야 할까… 좀 더 모던한 멜로딕 데스 메탈 같은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집은 그런 부분들이 보다 강화되어 있다. 분명히 Arghoslent 스타일의 멜로디가 전체 앨범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긴 한데, 다른 부분들은 2000년대 후반 이후의 Amon Amarth 같은 부분(‘Unmarked Graves of the Autochthonous’의 브레이크 다운과 클린 보컬이 나오는 부분), 블랙 메탈 같은 리프가 나오는 부분 (‘Red Civil Ensign’의 도입부), 펑크와 펑크의 영향을 받은 헤비 메탈 조류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 (‘Wolves of Trench’의 코러스 부분), 유치하게까지 들리는 헤비 메탈 솔로가 나오는 부분(‘Red Civil Ensign’의 후반부)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데스 메탈적인 부분들은 더 줄어들었고, 사실상 데스메탈과 공유하는 건 절-후렴 없이 여러 리프들을 느낌에 따라 이어놓은 곡 구조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 매우 듣기 좋고 편한, 언더그라운드 메탈 씹덕들을 위한 ‘팝’ 메탈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매우 좋다.
주제도 메탈 밴드들이 보다 보편적으로 다루는 주제들에 집중하며, 전쟁과 폭력에 대한 비판과 애수를 담거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하는데, 어찌 보면 Arghoslent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팝 메탈로 만드는 게 이들의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좀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면, 사실 펑크 같이 들리는 부분들도 RAC 영향으로 만들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그 Arghoslent를 참고해 멜로디를 짜는 밴드이니 말이다)… 물론 이건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2. Absurd - Asgardsrei
위 앨범을 들으며 새삼스레 RAC 생각이 나서, 가지고 있는 앨범 중 몇 안 되는 RAC 관련 앨범인 Absurd의 앨범을 굳이 꺼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수집할 때에 2008년 Nebelfee Klangwerke에서 재발매한 것을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순전히 그 유명한 ‘The Original Absurd’의 앨범이라서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RAC와 페이건 블랙 메탈의 선구자 격인 밴드로 유명하니 말이다.
사실 전반적으로는 내게 매우 낯선 장르이니(Absurd 앨범도 이것 밖에 없다 – 굳이 따지면 페이건 블랙 메탈 관련해서 Graveland 정도나 일종의 메탈 역사 교양 수업 과목을 듣는 것처럼 들어본 게 전부다), 크게 적을 글은 없지만, 이 앨범을 청취하는 것이 제법 미학적으로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생각은 한다. 좋지 못한 프로덕션에 펑크와 헤비 메탈에 포크 스타일의 멜로디를 섞은, 단순하고 선동적인 곡들을 펼치는 스타일이, 이후 양산된 밴드들 때문에 소위 ‘똥블랙’이니 하며 폄하 당하긴 하지만(그리고 이는 정당한 비판이지만), 고전으로 유명한 밴드들은 그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제법 창의적으로 들린다. 물론 내 귀가 역사적 권위에 굴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3. Ildjarn – 1992-1995
미학적으로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블랙 메탈을 이야기할 때에, Ildjarn을 빼놓을 순 없다. 이 앨범은 고등학생 때 구해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십대 시절의 허세 덕에, 한동안 Ildjarn, Profanatica, Incriminated 정도만 들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물론 이게 Ildjarn이 유치한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나 듣는, 얕은 밴드라는 것은 아니다.
Ildjarn이 흥미로운 지점은, 한편으로는 Burzum이 Filosofem에서, 그리고 Darkthrone이 Transilvanian Hunger에서 시도했던 미니멀한 전자 음악의 영향에 기초한 블랙 메탈 작법을 어느 정도 선취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Havohej와 Profanatica의 Paul Ledney가 보여주는 – 사악한 데스 메탈과 펑크의 영향 하에서 만든 ‘헤비’한 단순함을 보여주는 부분들이 부분부분 섞여 있다는 점이다. 후자는 그저 베이스가 튀어서 그렇게 느끼는, 피상적 감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블랙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그.. ‘안티 뮤직’ 같은 부분을 잘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그런 방향의 미학을 선호하는 경우엔 그라인드 코어도 있지 않냐고? 지루한 좌파 프로파간다보다는 그저 증오에 찬 비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4. Anhedonia – Irreversible Collapse, Heinous Acts of Terror
Anhedonia는 흥미로운 밴드다. 미시간에서 2024년에 설립된 밴드인 주제에, 1990년대 중반 뉴욕 데스 메탈(특히 Repudilation)과 빗다운 하드코어를 섞어놓은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두 장의 EP 모두 짧은 곡들 안에 올드스쿨 데스메탈 스타일의 멜로디와 90년대 슬램 리프, Repudilation과 Cerebral Hemorrhage 같은 밴드들이 보여준 통통 튀는 스네어 드럼의 변칙적인 박자, 그리고 빗다운 하드코어식의 브레이크다운이 다 들어있다. 데스 코어 밴드들이 이런 음악을 했어야 할텐데, 다들 Dimmu Borgir나 따라하고 있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다.